역사를 보면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인간과 제도에 대한 부분은 거의 예외없이 역사속에서 일정한 법칙을 유지해왔다. 예를 들어 왕조가 바뀐다든가, 왕이 바뀌게 되면 반드시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국가의 정책기조가 바뀌었다. 그 전의 왕이 폭군이든 현군이든 그런 건 상관없었다. 새로운 왕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보하기위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애플의 상징이자 CEO인 스티브 잡스가 사임했다. 이전에 이사회에서 축출에 가깝게 쫓겨난 그런 사임이 아니다.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스스로 사임한 것이다. 나는 잡스가 다시 돌아오길 바라지만 아마도 그건 힘들 것 같다.

중요한 문제를 하나 분석해보자. 바로 그 잡스가 아이패드와 함께 개척하던 전자책 분야에서 애플이 이제부터 어떻게 될까? 팀쿡이 운영하는 애플은 과연 잡스의 애플에 비해 어떤 점이 달라질까? 

애플 전자책 정책, 잡스 사임으로 변화할까?

1) 커다란 변화를 선언하지는 않을 것이다.

팀쿡은 잡스가 인정하고 추천한 후계자다. 그것으로 인해 분명 힘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반대로 해석해보자. 팀쿡은 온전히 자력으로 애플을 장악한 것이 아니다. 그 뒤에는 잡스의 후광이 상당부분 미치고 있다. 따라서 당분간 팀쿡은 잡스가 닦아놓는 전자책 정책을 고수할 것이다. 3대 7의 수익배분과 아이북스의 운영, 컨텐츠를 쥔 출판사와의 기존 관계를 고스란히 승계할 것이다.



2) 조용한 방향전환과 새로운 시도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저 잡스의 방향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애플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고, 또 해야하는 회사다. 전자책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팀쿡은 잡스의 재산을 물려받았지만 그 재산 속에는 해결해야 할 갈등이나 부채도 숨어있다.

아마존과의 관계를 보자. 아이북스와 아이패드는 아마존 북스토어과 킨들을 향해 정면으로 충돌했다. 거기에는 일체의 타협이나 공존 노력이 없다시피했다. 아마존이 아이패드와 맥용으로 킨들앱을 내놓은 것이 전부였다.

애플은 아마존을 향해서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사 플랫폼에서 장사하려면 30프로를 내야한다고 주장했다. 아마존을 비롯한 주요 서점들이 일단 굴복하긴 했지만 엄청난 불만이 그 뒤에 숨어있다. 팀쿡은 전자책 업체들과 어떤 방법으로든 협상을 해야 한다.



3) 공존을 통한 조용한 이익증대가 효과적이다.

스티브 잡스는 거장이지만 그러기에 다소 감정적이기도 하다. 또한 한번 돌아서면 절대로 타협하지 않았다. 하지만 팀쿡은 다르다. 그는 관리형 CEO로서 다른 회사와 비즈니스 모델로 충돌하고 특허로 싸우는 전면전에 밝지 않다. 또한 그것은 장기적으로 애플의 번영에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그는 ‘애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했다. 맞다. 애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다는 그 핵심은 ‘이익증대’ 라는 가치일 가능성이 높다. 소비자와 애플 둘 다 이득이라면 전자책에서 충돌하는 경쟁업체들을 포용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전자컨텐츠 수익배분 문제가 보다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란다.


4) 저가형 아이패드를 통한 압박도 가능하다.

비록 잡스의 재능을 가지지 못했지만 팀쿡만이 가진 재능도 있다. 그건 바로 생산과 물류, 재고 관리 능력이다. 지금도 물량이 달려서 주문에 맞추지 못하는 아이패드를 더욱 많이 생산해낼 수 있다. 특히 전자책 단말기로서 아이패드를 지금보다 더 싼 가격에 더 많이 내놓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아마존에 비해 애플이 더욱 우위에 설 기회를 가지게 된다.

역사를 돌아보면 정복왕 뒤를 잇는 새로운 왕은 항상 보다 부드러운 포용정책과 함께 내부를 안정시키는 정책을 썼다. 반대로 말해서 그렇게 하지 않는 왕은 거의 실패했다. 잡스가 위대한 정복왕이라고 해서 팀쿡이 또다른 정복왕이 되려고 해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서로의 성격과 재능이 다르고, 시대가 요구하는 정책이 다르기 때문이다.



팀쿡이 이끄는 애플이 전자책에서 과연 어떤 움직임을 보여줄까? 국내 전자책 업체들이 그 사이에서 어떤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는 또하나의 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