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누구나 정해진 수명이 있고, 주어진 시간이 있다. 영원히 살 수 있는 사람이 없기에 누구나 그 주어진 시간을 활용해서 여행을 가고 일도 하며 삶을 즐긴다. 그러기에 누군가가 흔하게 경험할 수 있는 것을 다른 누군가는 평생 한번도 체험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너무도 흔하게 대한민국과 서울, 인터넷이란 것을 누린다. 특별히 이것을 고마워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아프리카나 중동에 있는 어떤 아이는 평생 한국과 서울의 공기를 마셔보지 못할 것이고 인터넷 역시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태어나서 죽을 수 있다.


어린 시절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프랑스 소설 ‘어린 왕자’ 역시 마찬가지다. 단지 따스하고도 심오한 동화로만 읽었던 그 소설은 어른이 된 다음 그 배경지식을 알게 됨으로서 새롭게 다가온다. 프랑스의 비행기 조종사였던 생택쥐베리의 인생과 그 삶의 궤적을 따라 해석되는 어린 왕자와 길들인 여우의 세계는 또다른 차원의 공간과 꿈을 선사한다. 희안하게도 그 소설의 배경이 되었을 공간 역시 앞에서 예로 들었던 아프리카의 어떤 사막이다.



마음으로는 언제든 훌쩍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에 가고 싶지만 여건상 그럴 수가 없다. 하긴 실제로 내가 가서 보고 싶은 건 어쩌면 현실의 프랑스가 아닌지 모른다. 어린 왕자와 따스한 파스텔톤으로 상징되는, 내 마음속에만 있을 프랑스다. 실제의 프랑스는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프랑스를 보기 위해 쁘띠프랑스에 갔다.



쁘띠프랑스는 한국에 있는 가상의 체험공간이다. 어린왕자와 여우가 있고, 생택쥐베리의 기념관이 있다. 작고 고풍스러운 아름다운 건물들이 동화속 모습을 보여준다. 



아직 자동화된 레코드가 나오기 전에 발달한 오르골 문화부터 시작해보자. 언제든 감미로운 음악을 자동으로 듣고 싶다는 생각이 톱니바퀴와 만나서는 아날로그 느낌이 물씬한 자동악기를 만들었다. 손잡이를 돌리고, 태엽을 감으면 새가 울고 여인이 춤을 춘며 악사가 연주한다. 녹음된 소리와는 또다르게 즉석에서 연주되는 소리다.



화창한 늦여름의 광장에는 시원한 분수가 물을 뿜는다. 연인들이 저마다 앉아서 웃는 모습이 상큼하다. 프랑스의 어떤 곳에서도 아마 이런 광경이 흔하게 펼쳐질 듯 하다. 



전망대에 오르면 마치 중세의 성에 오른 것처럼 마을 전체를 볼 수 있다. 성주가 된 듯한 느낌도 드는데 한국이라는 지형과 옛 프랑스 양식이 아무런 위화감없이 섞일 수 있다는 게 묘한 느낌을 준다.



인형은 언제나 아이와 어른 양쪽 모두에게 즐거움을 준다. 아이에게는 현재의 즐거움이지만 어른에게는 잊고 살았던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다. 끈으로 조종하는 인형들이 음악에 맞춰 춤추는 모습에서 떠올리는 것은 옛날 이런 인형극을 보여주고 돈을 받았다는 거리 예술가들이다. 



쁘띠프랑스의 곳곳에는 어린 왕자가 숨어있다. 어린 왕자를 찾으려는 여우를 놀리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어쩌면 둘은 쁘띠프랑스 안에서 숨바꼭질을 하며 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중간에 있는 창조자 생택쥐베리 기념관을 둘러싸고 말이다.



어린 왕자의 별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중세기사의 갑옷과 작고 귀여운 인형들만 있는 동화의 세계를 지나서 이번에는 드라마의 세계로 향해 본다.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지휘자 강마에가 앉았던 방에는 악보와 함께 음율이 흐르고 있다. ‘시크릿가든’의 배경이 되기도 한 쁘띠프랑스에는 아직도 그 여운이 남아있다.



더운 여름이 아직 끝나지 않은 시기다. 쁘띠프랑스 인근에는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곳도 있다. 바나나보트와 플라이피쉬 등을 타며 시원한 경험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지구 반대편에 가까운 먼 프랑스의 정취를 한국에서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쁘띠프랑스는 재미있는 곳이다. 더구나 이 곳은 보다 꿈에 가까운 프랑스의 향기를 풍긴다. 



내 생각에는 이 작은 곳 전체가 어린왕자의 작은 별에 가깝다. 하루 정도 이 곳에서 꿈을 느껴보는 것은 우리의 삶에 있어 좋은 활력소가 될 것이다.



            지원 : 쁘띠프랑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