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나는 감성적이다. 그것도 매우 감성적인 편이다. 예민한 감수성과 감정에 강한 점은 소설가로서는 좋은 재능이지만 평론가로서는 약점이다. 평론가는 어떤 사안이든 감정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해서 좋은 평론을 내놓을 수 있다.



하지만 때로는 냉정을 유지하기 힘든 사안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어제 나온 뉴스다. 애플의 iCEO 스티브 잡스가 사임했다. 그것도 누구에게 밀려나듯 나온 것이 아니고 건강문제 때문에 스스로 사임했으며 후계자까지 추천하기에 이르렀다. (출처)

미국 애플의 전설적인 공동창업주이자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56)가 일상적인 경영 업무에서 손을 떼고 뒷선으로 물러난다. 애플은 24일 오후(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스티브 잡스가 CEO직을 즉각 사임한다고 발표했다. 

잡스의 뒤를 이어 애플의 경영을 맡을 후임 CEO로는 팀 쿡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선임됐다. 잡스는 CEO직에서 물러나지만 이사회 의장직은 유지하게 된다. 

세상의 어떤 영웅도 계속 살 수는 없다. 알렉산더, 케사르, 징기스칸도 결국은 업적을 남기고 죽었다. 또한 어떤 영웅도 계속 건강할 수는 없다. 스티브 잡스의 사임으로 인해 드디어 한 시대가 완전히 끝났다는 아쉬움과 불안감이 든다.



물론 스티브 잡스는 그저 CEO를 사임한 것이지, 죽은 것이 아니다. 이전에도 그랬듯이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해서 다시 돌아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때문에 나는 성급한 추모는 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한마디 하자면 스티브 잡스는 IT업계의 ‘모차르트’ 였다. 완벽하게 한 시대를 만든 거장이자 천재라는 뜻이다. 모차르트가 더이상 음악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전세계가 불행해졌다. 단지 한 사람만 행복했을 뿐이다.

감성은 여기까지다. 그럼 냉정을 되찾고 스티브 잡스 이후 애플의 미래를 예측해보자. 특히 나는 표면적인 후계자 팀쿡이 아닌 진정한 잡스의 후계자를 말해보고자 한다.

스티브 잡스 사임, 진정한 후계자는 누구일까?

1) 애플, 최소 5년은 문제없다.
 
스티브 잡스가 만들어 놓은 미래비전, 선두주자로서의 이미지, 문화현상은 그가 없는 동안에도 애플을 떠받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매킨토시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1984년 개발된 매킨토시는 잡스가 떠난 후에도 상당기간 애플의 혁신성을 보여주며 높은 순이익을 안겨주었다. 관리형 지도자인 존 스컬리의 역량과 합쳐진 맥은 이후 약 10년간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했다. 윈도우 진영이 맥을 거의 따라잡은 건 윈도우 95에 이르러서였다.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벌려놓은 격차는 생각보다 크다. 제품의 품질과 성능 자체로는 안드로이드가 많이 따라잡고 있다. 하지만 선두주자라는 이미지와 사용자 편의성, 팬덤현상까지 따라가려면 최소 5년은 걸릴 것이다. 이는 반대로 애플에게 있어 5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진 셈이다.





2) 애플이 채워야 할 것은 미래예측과 카리스마다.
 
팀 쿡은 관리형 리더로서는 존 스컬리와 비슷하다. 안정적인 운영에는 최고의 인재다. 그리고 팀 쿡 아래에서 남아있을 지는 모르지만 조나단 아이브는 디자인에 있어서 최고수준에 올라있다. 이 둘만으로도 애플의 기초토대는 설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애플은 그저 평범한 일류회사 밖에 되지 못한다. 사람들이 애플에 거는 기대는 그 정도가 아니란 게 문제다. 늘 전교 1등만 하던 학생이 갑자기 전교 10등이 되면 사람들은 잘했다고 칭찬해주지 않는다.

사람들이 애플에 요구하는 건 예측을 몇 단계 뛰어넘는 혁신, 그리고 그 혁신을 건방지고도 자신만만하게 발표회장에서 자랑하는 카리스마다. 유감스럽게도 이 능력은 현재 애플의 지도급 임원 가운데 누구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냥 보기에 평범해보이는 기능이지만 잡스의 손과 말을 거치면 마법처럼 변해버리는 그런 능력을 과연 이후 애플이 가질 수 있을까?



3) 애플의 경쟁자들,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애플의 기적과 성공은 거의 모두가 스티브 잡스의 개인적 능력에 힘입어 이뤄졌다. 물론 스티브 워즈니악을 비롯한 보이지 않는 헌신적 공헌도 있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열광하는 한 사람은 오로지 잡스뿐이다. 약간의 논란이 있긴 해도 잡스가 세운 많은 공로 때문이라는 건 확실하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나란히 한시대에서 절정의 기량을 겨뤘다면 베토벤은 모차르트에 가려졌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후계자와 베토벤이 기량을 겨룬다면 당연히 베토벤이 이길 것이다. 마찬가지로 잡스의 후계자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는 당분간 잡스의 후계자일 뿐이다.

잡스 이후에도 IT계에는 후계자 따위가 아닌 거장들이 있다. 빌게이츠가 자선사업에서 눈을 돌려 MS에 ‘왕의 귀환’을 할 수도 있다. 페이스북의 주커버그가 갑자기 치고 올라와 애플을 위협할 수도 있다. 구글은 여전히 애플의 강력한 라이벌이며 리더들의 건강은 너무도 좋다. 향후 애플을 이끌 ‘잡스의 후계자’는 바로 이런 거장들과 싸워야 한다. 단지 잡스가 남겨준 유산과 5년이라는 시간만 가지고 말이다.



4) 애플은 항상 전진해야 한다.
 
애플은 세계 최고의 기업 가치를 지닌 회사가 되었다. 하지만 급성장을 한만큼 많은 부분에서 사람들은 그것을 잡스의 개인역량이라고 생각한다. 애플이라는 회사의 조직력을 믿는 게 아니라 단지 잡스라는 개인만을 믿은 것이다. 하지만 영웅이 사라졌다고 애플이 함께 몰락해서는 안된다.

애플에게 소비자들이 가지고 있는 기대는 여전히 높다. 그것은 당분간 잡스가 없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애플이 한 두번 실패작을 냈다고 해도 기대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애플은 브랜드 이미지로는 최고로 사랑받는 기업이다.

오히려 소비자가 애플에 등을 돌리게 되는 건 애플이 평범해질 때다. 고만고만한 제품에 사과마크를 찍어 내놓고, 값싸면서도 혁신은 없는 저가품을 만들고, 시장에서 정면승부하기보단 법정다툼에서 배상금으로 돈을 벌려고 하고... 이런 행동이 쌓이면 애플의 몰락이 가까워진다. 즉 애플은 차라리 부서질 지언정 휘어지지 않고 항상 전진해야 하고 그럼으로서 애플일 수 있다.




5) 가장 앞서 전진하는 자가 스티브 잡스의 진정한 후계자다.

한가지를 상기해보자.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라는 회사 자체보다는 회사가 추구하는 정신을 사랑했다. 그는 애플 밖에서도 넥스트와 픽사를  만들고 경영했다. 또한 ‘애플을 넘어서도 혁신은 계속된다.’ 고 말하기도 했다.

분명 잡스의 물리적인 후계자는 애플에 있는 팀쿡이다. 하지만 팀쿡이 제대로 된 혁신을 하지 못할 때, 조나단 아이브나 필 쉴러가 나선다면 그들이 후계자가 될 것이다. 또한 만일 애플 전체가 침체에 빠진다면 후계자가 굳이 애플 직원일 필요도 없다.

소비자인 우리의 입장이 핵심이다. 중요시해야 할 것은 애플이라는 회사 자체가 아니다. 애플이 만들어냈던 혁신과 그 도전정신이다. 그런 의미에서 잡스가 사임하면서 놓게 된 시대정신을 과연 어떤 회사의 누가 이을까? 누가 또다른 문화현상을 가져올 제품과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내놓을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자가 진정한 ‘잡스의 후계자’ 가 될 것이다.

그것은 아무나 될 수 없겠지만, 또한 누구든 될 수 있다. 잡스가 말하던 혁신과 미래, 그리고 인문학과 기술의 만남을 이뤄내는 누구에게나 그 길은 열려있다. 잡스 이후의 새 시대를 열어갈 후계자가 과연 누가 될 지 지켜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