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 있으면 모든 게 다 되는 세상이라고 흔히 말한다. 세계적으로 이미 돈이 모든 것을 차지해버린 지금, 이 말은 매우 심각하게 들리기도 한다. 하긴 국민소득에 따라 생활수준이 결정되고 국력과 위상이 달라지는 세계에서 이런 말은 매우 합리적으로 보인다. 한국 역시 그런 기준에서 바로 선진국에 도달했다고 말하지 않는가?


하지만 서구로 대표되는 미국, 특히 유럽에서는 완고한 면이 있다. 아무리 돈이 있고 공업력이 있더라도 쉽게 따라올 수 자기들만의 문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기계공업의 꽃이라 불리는 자동차가 그렇다. 영국에서 절찬리에 방영되는 자동차 버라이어티쇼 ‘탑기어‘ 를 예로 들어보자.



역사가 오래된 이 프로그램은 특히 자동차에 관한 독설로 유명하다. 차를 타면서, 운전하면서 여러가지 상황에서 노련한 진행자들이 거침없이 내뱉는 독설은 시청자에게 후련함을 주면서 이 프로그램의 특성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이런 탑기어가 한국에서도 만들어진다. 정식으로 라이센스를 받은 ‘탑기어코리아’는 그래서 출발부터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받고 있다. 영국 프로그램을 미리 본 시청자들에게 과연 어떻게 비칠까하는 부분이 가장 문제다. 특히 사람들이 주목하는 부분은 탑기어코리아가 과연 영국 오리지날처럼 거침없는 독설이 가능할까? 하는 부분이다. 탑기어코리아의 시사회와 기자회견이 열린 날, 바로 이 부분이 가장 관심사였다.




탑기어코리아 - 한국도 자동차쇼가 가능할까?

이제 막 생긴 케이블티비 프로그램에 너무 과도한 주문일 수도 있다. 솔직히 말해보자. 한국의 기업문화에서 제품에 대해 독설을 늘어놓는 프로그램에 제품협찬을 해주겠다고 선뜻 나서는 회사가 있을까? 그것도 현재 독과점에 가까운 한국차 시장에서 말이다.  

영국이 왜 자동차에 대한 독설을 거침없이 할 수 있을까? 그들은 본래 거침없는 독설 자체를 즐기는 문화가 있다. 영화 해리포터를 본 사람이라면 조그만 애들이 육두문자 대신 독설로 서로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탑기어는 아니지만 얼마전 다른 영국 프로그램에서는 한국자동차를 ‘바퀴 달린 냉장고’ 로 비유한 경우도 있었다.


게다가 영국은 이미 자국 제조업이 거의 전멸한 상태다. 자랑스러운 롤스로이스를 비롯해, 로터스 등의 영국차는 이미 자국 것이 아니다. 브랜드는 유지되어도 그 생산지는 영국도 아니며 소유자도 영국회사가 아니다. 영국인들은 단지 소비자일 뿐이다. 그렇다보니 어차피 내 나라 제품이 아무것도 없다면 좋고 나쁨에 편견이 들어갈 리 없다. 그저 쓰고 거침없이 말할 뿐이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르노삼성이나 지엠대우라는 브랜드부터 한국을 생각하게 하며 넘어간 지 얼마되지 않았다. 게다가 현대기아자동차는 엄연한 한국제조업체다. 이런 업체의 차를 다루며 감정을 전혀 배제한 객관적 시선속에 독설이 가능할까? 힘들 것이다.


이에 대해 제작진과 MC들의 대답 역시 간결하고 명료했다. ‘탑기어코리아는 매니아만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다. 또한 반드시 독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였다. 아쉬움은 있어도 정론이기에 반박하기는 어렵다.


사실 탑기어코리아 방송을 보면 알 것이다. 굳이 독설이 없어도 이 프로그램은 재미있다. MC를 맡은 김진표, 김갑수, 연정훈 등이 직접 차를 몰며 멘트를 날린다. 흙먼지 속에 산길을 주파하며 차를 시험하며 빠르고 경쾌한 영상으로 차를 이야기한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를 지닌다. 국산차가 외제차와 나란히 소개되며 장단점을 말하는 광경은 그만큼 한국차의 수준이 올라왔다는 증거도 된다. 이런 점에서 한국도 충분히 재미있는 자동차쇼가 가능하다.


개인적으로 탑기어코리아는 매우 재미있고 바람직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계속 재미있고 도전적인 내용으로 시청자를 끌어들이면서 한국에도 고급 자동차 문화를 만들어주길 바란다. 이 프로그램은 8월 20일부터 시작해 매주 토요일 밤 10시에 XTM에서 방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