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바뀐다는 건 정말로 묘한 기분을 준다. 흔히 패션계에서는 유행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다못해 시차를 두고 반복되기 까지 한다. 어제는 치마 길이를 올렸다가, 오늘은 다시 내린다. 그리고 내일은 다시 치마 길이를 올린다.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매번 패션이 새롭게 바뀐다고 느낀다. 하지만 결국은 그저 반복되는 것 뿐이다.

애플이 현재 컴퓨터와 모바일 업계에 불어넣고 있는 변화는 그래서 어떻게 보면 혁신이지만 어떻게 보면 반복이다. 때로는 과연 기술과 역사의 발전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에 대한 많은 생각을 낳는다. 내가 이번에 말하려는 그것은 바로 하드웨어와 밀착한 소프트웨어 기술의 중요성이다. 




우선 커다란 빅뉴스가 있다. 검색엔진과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거물 구글이 휴대전화 업체인 모토로라를 인수했다. (출처)

8월 15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구글이 모토로라 모빌리티 홀딩스를 125억달러(주당 40달러)에 인수키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인수협상은 내년 초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구글은 모토로라를 인수한 뒤 별도 사업부로 운영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은 그러나 "모토로라를 인수하더라도 개방형 안드로이드 OS는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모토로라는 1983년 세계 최초로 휴대전화 다이나텍을 상용화한 세계적인 휴대전화 업체다. 그러나 스마트폰 등장 이후 삼성전자와 애플에 밀리면서 올 2·4분기 휴대전화 판매 순위가 8위로 떨어졌다.



이제까지 운영체제만 만들어 공개로 풀었을 뿐 절대 직접 제조에 나서지 않았던 구글이었다. 레퍼런스 폰인 넥서스원만 만들었을 뿐 스마트폰 그 자체도 만든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젠 휴대폰의 강자인 모토로라를 인수까지 하다니. 대체 무슨 까닭인지 궁금하다. 전문가들도 놀라면서 딱히 이유를 잘 찝어내지 못했다. 

더구나 안드로이드폰 제조업체들이 서로 축하메시지를 보내주는  일까지 있었다.(출처)

레리페이지 최고경영자(CEO, 사진)는 이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구글플러스를 통해 파트너사 대표들의 축하메시지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최대 파트너인 삼성전자의 모바일커뮤니케이션 사업부장 신종균 사장은 "구글이 안드로이드, 파트너, 생태계를 방어하는 데 깊이 헌신한다는 것을 보여준 오늘의 발표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소니에릭슨의 버트 노드버그 대표는 "안드로이드와 파트너를 보호하려는 구글의 헌신을 환영한다"고 전했고, HTC의 피터 초우 대표는 "구글이 안드로이드, 파트너, 전체 생태계를 보호하는 데 깊이 헌신하다는 것을 보여준 오늘의 인수 발표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LG전자 박종석 모바일사업본부장(부사장)도 "안드로이드와 파트너를 보호하려는 구글의 헌신을 환영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앞서 래리 페이지 CEO는 인수 발표 직후 열린 콘퍼런스에서 인수 하루전날 주요 5개 안드로이드 파트너(OEM)사 대표들에게 모토로라 인수 사실을 통보했으며 이들로부터 열렬한 반응을 얻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다같이 구글에게서 안드로이드를 받아서 쓰는 입장이다. 따라서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는 이들에게 충격일 것이다. 단순히 경쟁자가 늘었다는 정도가 아니라 어느 한곳이 기술적으로 완전히 우월한 입장에 섰다는 소식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축하를 했다는 것은 대체 무슨 의도일까? 대체 구글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 어떤 의미를 가질까?

여러가지 복잡하고 정밀한 관측이 있고 생각이 있지만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앞으로 모바일 업계의 커다란 흐름이 하드웨어 기술과 소프트웨어 기술의 긴밀한 융합으로 간다는 신호다. 

생각해보자.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업계를 리드하는 애플은 스스로 만든 iOS를 직접 모든 걸 관리하며 만든 하드웨어에 얹어서 최고의 사용자경험을 구현한다. 이에 대항하는 또다른 축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폰7을 가지고는 최대의 휴대폰 회사 노키아에 탑재하기로 커다란 빅딜을 맺어서 긴밀한 협력을 하고 있다. 오로지 안드로이드만은 여태까지 운영체제를 만드는 구글이 하드웨어를 만들지 않고 분리된 채 운영해왔을 뿐이다.

즉 패션계로 치면 애플이 만들어낸 롱스커트 유행이 거세자 마이크로소프트가 어설프게나마 치마단을 내려 응수했다. 그러자 아직도 미니스커트만 고집하던 구글이 결국 롱스커트를 생산하려고 준비하는 것이다. 단순히 모토로라의 특허권을 얻으려는 것만으로 볼 수는 없다. 단지 그 목적이라면 특허를 구입하는 것만으로 충분하고 이런 거액의 인수는 필요없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복고풍이기도 하다. 개인용 컴퓨터의 초창기에 애플과 다른 컴퓨터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자체에서 만들었다. 그러나 표준화와 산업화가 진척되며 점차 컴퓨터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분리해가며 발전했다. 호환성이란 게 중시되고, 소프트웨어에서도 추상화 라든가 가상화 란 개념이 등장했다. 애플조차도 호환기종을 허락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모바일로 오면서 다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한 회사에서 관리하면서 밀접한 개발을 해야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리고 애플은 우직하게도 그 모든 시대를 단 하나의 통합 전략으로 뚫고 나갔다. 결국 애플은 변한게 거의 없는데도 새 시대의 리더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번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는 그래서 이런 변화된 시대의 흐름을 상징한다. 앞으로 각자 운영체제와 밀착된 하드웨어 세 종류가 서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 지 기대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로서 당분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업계 가운데 ‘호환성’이나 공통표준’은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앞으로 구글은 모토로라의 휴대폰을 일종의 레퍼런스폰으로 해서 운영체제를 보다 하드웨어에 최적화시키면서 애플의 사용자 편의성을 따라갈 것이다. 그리고 좀 더 대담한 예측을 해 본다면 아트릭스로 대표되는 태블릿, 멀티 플랫폼을 위해 PC 제조사를 인수할 가능성도 있다. 시대의 흐름을 만들어낸 애플과의 경쟁을 위해서라면 일정부분 개방성까지도 포기할 수도 있다. 이것은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가 가진 의미 가운데 많은 사람이 그냥 지나치기 쉬운 부분이다.

물론 첫술에 배부른 법은 없다. 개인적으로 안드로이드의 호환성과 개방성은 아쉽지만 그건 훗날의 과제로 남겨두는 것도 좋을 것이다. 구글과 모토로라의 결합으로 인해 새롭게 시작되는, 혹은 반복되는 시대의 변화를 눈여겨 보아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