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소설을 주로 쓴다. 그리고 나는 역사를 매우 좋아한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역사를 알고 그 속에서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역사는 바로 인간이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직접 겪은 모든 상황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수많은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일정한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떤 결단을 내렸고, 그것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를 알려준다. 그렇다면 비슷한 상황에 비슷한 인물이 놓였을 때 어떤 상황이 올 것인지에 대해 뻔히 그 전개와 결과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애플과 삼성에 대해 다루면서 내가 가장 중요시하고 있는 건 양쪽 기업의 역사다. 지금 눈앞에 있는 아이폰이나 갤럭시, 아이패드나 보르도 티비 같은 제품은 그다지 많은 걸 말해주지 않는다. 두 회사의 창업자와 경영자가 처했던 상황과 그 가운데 취한 행동이 훨씬 많은 것을 알려줄 수 있다.

한동안 애플과 삼성은 거의 밀월관계였다. 최초에 아이팟을 통해 음악기기를 평정하기로 작정한 애플에게 삼성은 좋은 파트너였다. 낸드 플래시와 메모리의 최강자인 삼성에게 애플은 대량구매를 조건으로 반값에 부품공급을 의뢰했었다. 삼성은 이를 받아들였다. 덕분에 애플은 미국을 넘어 전세계의 거의 모든 MP3플레이어를 제치고 최고의 가격과 품질을 얻을 수 있었다. 그 가운데 몰락한 업체에는 선두주자로서 이 분야를 개척했지만 애플과 삼성의 협력 물량에 당해내지 못한 새한과 아이리버란 한국 업체도 포함되었다.

이어서 매킨토시와 아이폰, 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삼성은 정말 좋은 부품공급업자였다. 애플이 원하는 가격에 원하는 품질의 부품을 적기에 공급해주었다. 지금 전세계를 전부 뒤진다고 해도 삼성만한 능력을 가진 업체는 한손에 꼽기도 힘들 정도이다.



그런데 지금 애플과 삼성은 더이상 밀월관계가 아니다. 삼성의 스마트폰인 갤럭시 시리즈가 아이폰 특허를 침해했다고 애플이 고소장을 제출했다. 삼성 역시 애플이 삼성의 휴대폰 관련특허를 침해했다고 맞고소했다. 이어서 애플은 삼성을 대체하기 위한 부품 공급선을 찾기 위해 게속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얼마전까지 둘도 없이 궁합이 잘 맞던 두 회사가 별안간 적대관계로 변해가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애플이 이 모든 파국을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삼성에게 애플은 여전히 많은 부품을 팔아주는 좋은 고객이기에 작은 사건에는 거의 대응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애플은 드디어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며 연이어 고소와 강경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어째서일까?

애플은 어째서 삼성을 견제하려고 할까?

이 문제는 사실 눈앞의 특허침해같은 건 별 문제가 아니다. 일부 애플 팬보이들이 주장하듯 삼성이 워낙 카피캣이라서 그런 것도 아니다. 차라리 삼성이 구글과 손잡고 안드로이드폰인 갤럭시 단말기를 따로 만들고 있기에 그렇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이것조차도 근본적인 문제는 아니다. 정말 근본적인 문제는 애플 기업 역사상 되풀이 되어온 사건에 기인한다. 핵심 문제는 애플과 스티브 잡스의 뇌리에 뚜렷이 각인되어 있는 '내부의 적에 대한 공포' 에 있다.



애플에게는 자기들이 컴퓨터의 역사에서 혁신을 전부 주도했다는 자부심이 있다. 그런데 정작 그 혁신과정에서 애플은 일부 부문을 맡겨서 함께 커오던 파트너 회사에게 결국 압도당했다는 뼈아픈 과거가 있다. 애플 입장에서 그것은 통렬한 '배신'이고 파트너 회사 입장에서는 언제까지나 남의 밑에서 일할 생각이 없기에 취한 당당한 '독립'일 뿐이다.

1) 애플은 애플2 컴퓨터를 만들었을 때, 그 언어로서 베이직을 기본 지원했다. 하지만 애플 베이직은 정수만 지원할 뿐 수학계산에 필요한 실수를 지원하지 못했다. 다급해진 잡스가 실수 베이직을 사들인 회사는 바로 빌게이트의 마이크로소프트였다. 애플을 통해 프로그램 판매로 힘을 얻은 빌게이츠는 이어서 IBM에 MS-DOS를 공급하면서 순식간에 애플을 넘어서는 기업이 되었다.

2) 혁명적 매킨토시를 개발한 잡스는 그 안에 쓸 업무용 소프트웨어가 필요했다. 때문에 다시 빌게이츠를 끌어들였다. 빌게이츠는 매킨토시용 오피스 개발을 승락하고는 그 과정에서 당연하게도 매킨토시의 그래픽 인터페이스에 대한 일부 기술과 권리를 요구했다. 쓸만한 오피스를 갖추기 위해 이것을 승락한 잡스는 얼마후 그 기술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내놓은 MS윈도우라는 운영체제를 보게 된다. 처음에는 조잡한 카피품이던 윈도우는 3.0부터 쓸만해지며 세계를 휩쓸었고 맥은 점유율에서 한자리수로 떨어져버렸다.



3) 매킨토시를 통해 전자출판과 교육 컴퓨터 시장에 자리잡은 애플은 이것을 통해 그나마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그 가운데는 폰트를 말끔히 다듬어주는 포스트스크립트 기술과 레이저프린터 지원, 사진 가공에 쓰는 포토샵 등을 내준 어도비란 걸출한 회사가 있었다.

그러나 애플은 회사가 어려워 질 즈음 자기들의 맥이 도리어 어도비의 포스트스크립트를 비롯한 모든 특허기술에 포위되어있다는 걸 깨달았다. 애플의 맥이지만 어도비의 소프트웨어와 MS의 오피스가 빠지면 거의 빈껍데기 였던 것이다. 어도비는 결국 윈도우로 포토샵을 비롯한 모든 기술을 포팅하면서 맥을 '배신'했다. 그리고 잡스는 한참후 어도비의 플래시를 아이폰에서 배제함으로서 이 배신에 '복수'했다. 물론 웹표준이나 성능저하 같은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웠다.



4) 잡스를 존경하는 개발자 두 명이 모여서 만든 구글은 애플 아이폰의 든든한 파트너였다. 구글의 CEO 에릭 슈미츠는 애플의 사외이사 자리까지 받았으며 구글은 아이폰의 기본 검색엔진이 되었다. 그러나 스마트폰 시장에서 아이폰이 너무도 월등히 독주하고, MS가 갈팡질팡하자 구글은 스스로가 대안을 내놓아 경쟁자가 되기로 작정한다. '안드로이드'란 개방형 운영체제를 내놓고 스마트폰 경쟁자가 된 구글의 행동은 잡스를 격분시켰다. '애플은 결코 검색시장에 진출하지 않았다. 그런데 구글은 스마트폰에 진출했다.' 이 말 속에서 잡스가 느낀 것은 배신감이다.



5) 삼성의 차례다. 아이팟에서부터 부품공급업체로 이어져오던 좋은 관계는 삼성이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독자적인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갤럭시를 내놓아 히트시키면서 파국을 맞았다. 애플 입장에서는 케사르마냥 '삼성, 너마저도!' 라고 외칠 법한 일이니까 말이다. 그것은 애플과 잡스에게는 이젠 익숙해져버린 파트너 회사의 '배신행위' 로 보였을 것이다. 내부에서 적을 키울 수 는 없다는 의식과 배신에 대한 공포심은 격렬한 행위로 이어지고 있다.

애플로서는 솔직히 삼성이 스마트폰만 만들지 않는다면 그냥 괜찮은 협력업체로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싶을 것이다. 독자적인 공장을 가지지 못한 애플에게 있어 하드웨어 중심에다가 생산효율과 기술, 자금력이 월등한 삼성은 부족한 부분을 딱 채워주는 정말 좋은 구조의 회사이기 때문이다. 지금 급히 대체 부품회사를 물색하면서도 단숨에 공급선을 바꾸지 못하는 게 그 증거다.



하지만 삼성 입장에서 그 말은 체념하고 언제까지나 남의 하청업체로 살아가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완제품을 만들지 못하는 업체는 결코 주도권을 쥘 수 없다. 앞서 말한 모든 회사들이 애플의 입장에서 '배신'으로 보일 행위를 한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애플은 내부에서 적을 키워왔고 그 적이 나중에 거물이 되어 도리어 압박해왔던 역사를 몇 차례 겪어왔다. 그것 때문에 애플은 삼성이 지금 그런 내부의 적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내 생각에 이런 트라우마가 뿌리깊은 잡스가 CEO로 있는 한, 애플은 삼성과 결별하게 될 것이다. 다만 잡스 이후에는 장담할 수 없다. 세계사에서 왕이 바뀌면서 정책이 다시 바뀌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듯 기업 역사도 마찬가지다. 연일 계속되는 특허소송을 보면서도 나는 역사에 주목하고 있다.

P.S : 블로거이신 자그니 님께서 이 글에 대한 다른 생각을 가진 글을 올려놓았습니다.
균형잡힌 시각을 위해 한번 비교해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애플의 삼성 견제, 잡스의 트라우마 때문?

저와는 의견이 다르지만 또한 좋은 분석을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와 사람을 보는 시각에는 여러가지가 있고 팩트가 같더라도, 혹은 거대한 흐름의 분석에서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같은 사료를 가지고도 식민사관이 있고, 민족주의 사관이 있죠. 중국의 중화주의 사관, 이나 서양의 식민주의 사관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애플과 잡스의 시각으로 본 면을 우선 중심으로 제시했습니다. 또한 다른 업체의 측면에서 본 면도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이걸 가지고 다른 시각 우선으로 보고 재구성 한다면 얼마든지 또한 다른 의견이나 해석이 나올 수 있습니다. 역사는 과거의 일이지만 그걸 해석하는 건 현재의 이해관계나 감정에 얽매여있는 현대인이니까요. 어쨌든 좋은 토론거리가 된 것 같아서 기분 좋네요. 어느 것이 옳은지는 글을 읽는 독자분께서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