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역사를 서술하거나, 평론을 쓰는 사람은 냉정해야 한다. 냉정하다고 해서 차갑게 쏘아붙이거나 욕하라는 뜻이 아니다. 한때 한국에 갱스터랩음악이 유행할 때 우스갯소리로 '욕설만 늘어놓는다고 갱스터랩이냐?' 라는 말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요즘 IT평론이 그나마 위치를 차지하자 단지 비판과 욕만 늘어놓으면 평론이라 착각하면서 쓰는 블로거들이 있다. 평론은 그런게 아니다.

외국의 잘 지어진 컬럼을 보면 그 안에 노골적인 욕이나 인신공격은 전혀 없다. 어떨 때는 유머까지 넣어가며 쓴다. 하지만 그 하나하나의 표현속에 공들여 다듬은 비판정신이 있고, 유머 속에 뼈가 있다.



예를 들어 애플이 저장장치인 타임탭슐 안에 저품질의 하드디스를 넣고는 서버급 저장장치라고 광고했을 때를 보자. 외국의 평가에서는 이걸 가지고 스티브 잡스를 욕한다든가 애플을 육두문자로 비난하지 않는다. 단지 '애플이 이 하드디스크를 새로운 아이클라우드를 위한 데이터 센터에 사용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점잖게 한 마디 했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모든 비평은 다했다. 천마디 욕보다 더 핵심을 찌른 지적인 것이다.

나는 지금 삼성과 애플에 대한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비교와 분석이 담긴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블로그 가운데 일부를 연재하고자 한다. 이 글의 목적은 냉정한 해석이 담긴 기업 평론이지, 노골적인 찬양이나 폄하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읽어주기 바란다. 그럼 오늘의 주제를 시작해보자.

삼성과 애플, 두 회사의 명칭에 담긴 의미는?


삼성과 애플의 양 회사가 각각 회사 이름을 어떻게 지었는지를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우리가 흔히 성명학이라 부르는 것처럼 사람의 인생이 그 이름의 뜻대로 살게 된다는 그런 운명론적인 의미는 아니다. 다만 회사를 창업하면서 지은 회사이름이란 곧 회사가 추구하는 정신을 나타낸다는 면에서 주목하는 것이다.

삼성과 애플은 주력분야도 다르고, 구조도 다르지만 이름에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다. 여러가지 주장이 있긴 하지만 그 가운데 가장 신빙성이 높다고 생각되는 해설을 보자.

1) 초기 제품 이름이 곧바로 회사 이름의 기반이 되었다.

애플은 최초 명칭이 '애플 컴퓨터' 였다. 이건 사실 너무도 간단한데 회사를 만든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처음에 만든 개인용 컴퓨터의 이름이 바로 '애플' 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회사, 혹은 컴퓨터 이름을 짓게 되었을 때 바로 스티브 잡스는 왜 애플이란 단어를 떠올렸을까.

잡스가 애플이라는 회사 이름을 떠올린 이유는 청년 시절 아르바이트를 했던 사과농장에서의 즐거운 추억 덕분이라고 한다. 한때 아마도 히피생활을 했던 시절일 것이다. 그렇지만 애플이라는 이름을 확정한 가장 큰 이유는 전화번호 리스트에서 당시 잘 나가는 게임기 회사였던 아타리(Atari)보다 앞에 있다는 점이 더 크다.




즉 실용적인 목적이 강했다. 사람들이 보다 찾기 쉽고 친숙한 단어를 선정했다는 뜻이다. 아마도 아타리를 능가하는 회사가 되겠다는 야심도 작용했던 것 같다.


삼성 역시 마찬가지다. 삼성 그룹을 상징하는 기업 로고의 첫 출발은 국수에서 시작됐다. (출처)

삼성의 캠퍼스 리포터들이 만드는 삼성이야기 신년호(1043호)에 '삼성 로고의 의미와 변천사'(영삼성캠퍼스리포트 8기 상명대 최아영)가 소개돼 관심을 끌고 있다.

이에 따르면 삼성이 처음 제품에 로고를 붙인 것은 1938년 말이다. 당시 대구에서 출발한 삼성상회가 내놓은 '별표 국수'의 로고가 현재 삼성CI의 모태라고 '삼성이야기'는 소개하고 있다.

이 로고는 타원 내에 별 3개와 국수의 원료인 밀을 그려 넣은 것으로 1950년대까지 사용됐고, 1969년말에 첫 변신을 시도했다. 현재 삼성 로고와 비슷한 이미지의 흑백로고로 현재 영문으로 표기된 'SAMSUNG' 로고의 시발점으로 1979년까지 사용됐다.



이처럼 삼성 역시 명칭은 별표 국수란 제품 이름으로부터 유래됐다.

2) 사업영역 확장으로 인한 변경이 가해졌다.

애플 컴퓨터는 말 그대로 컴퓨터만 만드는 회사였다. 애플2, 매킨토시,아이맥과 맥북까지 오늘날도 컴퓨터를 만들고 있다. 그러나 1997년, 잡스가 복귀하면서부터 애플은 컨텐츠에 큰 관심을 보였다. 아이튠스를 만들고 음악을 유통하면서 애플은 컴퓨터가 아닌 아이팟이란 음악이기를 만들었고 아이폰이란 휴대전화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애플은 과감하게 회사 이름에서 '컴퓨터' 란 단어를 떼어버렸다. 하지만 바로 이 점 때문에 소송에 휘말렸다. 비틀스의 존레논이 만든 '애플 레코드'가 기존에 있었기 때문이다. 본래 애플은 컴퓨터만 만들것이며 영원히 음악사업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합의를 보고 상표를 등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만든 아이팟과 아이튠스는 명백한 음악사업이다. 결국 몇 가지 판결을 거친 우여곡절끝에 합의를 볼 수 있었고 결국 최근 아이튠스에는 비틀스의 신곡이 등록되어 팔리고 있다. 애플의 로고 역시 무지개색의 베어문 사과에서 단색으로의 변경되었다.


삼성은 처음에 국수에서 연상되는 밀에서 로고를 시작했지만 핵심 품목이 전자로 이동하면서 별, 혹은 세개의 겹친 프리즘을 상징하는 로고를 사용했다. 보다 현대적이고 추상적인 형태로 변화한 것이다. 그리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신경영'을 선언한 1993년에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형상화됐던 '별 모양'은 로고에서 빠져 현재의 로고로 탈바꿈했다.



3) 보다 아름답고 추상적인 명칭 유래가 따로 전해진다.

삼성과 애플, 두 회사의 명칭은 아마도 제품이름에서의 유래가 가장 맞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꿈보다 해석이라는 말대로 보다 복잡하고도 아름다운 이름의 유래가 따로 있다. 이건 믿거나 말거나 수준이긴 하지만 그래도 무엇인가 양 회사는 이름부터 특출나게 고상한 생각이 있다고 생각하고 싶은 사람에게 알맞는 주장이다.

애플의 명칭에는 컴튜터의 아버지 튜링의 안타까운 죽음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 튜링은 컴퓨터 혁명의 토대를 마련한 수학자로서 튜링 머신이라고 불리는 컴퓨터 개념을 시각적으로 보여준 공로가 있다.
2차대전 승리에도 공헌한 영웅인 튜링은 그러나 대접을 받지 못했다. 어느날 집에 도둑이 들어서 경찰을 불렀는데 집안을 살피던 경찰은 튜링이 동성애자님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를 발견했다. 도리어 체포된 튜링은 법정에 섰고 판사는 그에게 성호르몬 주사를 맞으라고 명령한다. 결국 그는 1954년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를 베어먹고 자살한다. 이 슬픈 스토리를 알고 있는잡스가 애플의 로고인 '한입 베어먹은 사과'를 떠올렸다는 것이다.


삼성의 명칭에는 동양학적인 유래가 있다. (출처: 삼성처럼 경영하라. 이채윤 2004년)

삼은 크고 많고 강하다는 뜻이며, 우리 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지. 성은 밝고 높고 깨끗이 빛나며 또 영원한 그 무엇이야. 이런 바람을 담아 삼성이란 이름을 지었어.
 - 이병철

삼성과 애플에 대해 공부하고 비교하면서 참으로 희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흔히 모든 면에서 전혀 비교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양 회사가 의외로 이렇듯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이 정도면 아주 흔한 공통점이라고 말하기도 힘들다.



아마도 우연의 일치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런 공통점이란 일부에 불과하다. 오히려 두 회사는 차이점이 훨씬 많다. 명칭에서도 애플은 사용자에게 다가서기 쉬운 과일 이름을 골랐다면, 삼성은 별을 강조함으로서 위대한 무엇인가의 권위를 더 강조했다. 이후로 애플이 감성적이고 소비자가 고를 수 있는 제품으로도 나섰고, 삼성은 소비자에게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는 국산화 제품 위주로 나갔다는 점에서도 이름이 가진 묘한 차이점을 찾을 수 있다. 

다음에 이어지는 글부터 두 회사가 가진 본격적인 차이점과 특징에 대해 분석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