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에 재미있게 본 영화 가운데 '부시맨'이란 작품이 있었다. 대충 기억을 더듬어보면 아프리카를 날던 비행기에서 떨어진 콜라병 하나를 본 부시맨이 이것을 신의 소행으로 생각하고 돌려놓기 위해 미국으로 가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이 작품의 주요한 재미는 과학을 잘 모르는 순진한 원주민의 모습이다. 그것을 과학을 잘 이해하기에 원리를 아는 현대인이 보니 너무도 우습고 재미있는 것이다.



이처럼 과학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있어 거의 신앙과도 비슷한 위치를 차지한다. 어떤 문제에 있어 먼저 과학적인 분석을 하고, 논쟁에 있어서는 과학적인 근거를 내놓는 것이 중요해졌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보통 과학이라는 정확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막상 과학적 사실 자체가 이리저리 방향을 잃고 흔들리게 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얼마전 휴대폰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치명적인 뇌종양의 원인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었다. 섬뜩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휴대폰을 안 쓸 수도 없는 노릇이라 핸드프리를 많이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또다른 연구결과가 나왔다. (출처)



블룸버그통신을 비롯한 외신들에 따르면 국제비전리방사위원회(ICNIRP)는 3일(현지 시간) 휴대폰을 사용하더라도 뇌종양 발병 비율이 높아진다는 증거를 찾을 수가 없었다고 발표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난 5월말 발표한 연구 결과를 완전히 뒤집는 내용. 당시 IARC는 휴대전화를 사용할 경우 암 발병을 일으킬 위험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으면서 많은 사람을 긴장시켰다.

미국 등 14개국 31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IARC 실무 그룹은 당시 "휴대전화로 통화를 자주 할 경우 악성 뇌종양의 일종인 신경교종 발병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며 "휴대전화에서 나오는 무선 전자기장은 '발암 가능 물질"'이라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ICNIRP가 완전히 상반된 연구 결과를 제시함에 따라 적잖은 논란이 뒤따를 전망이다. 이에 대해 ICNIRP는 "연구에 사용된 데이터가 제한적이었다"면서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휴대폰 전자파와 뇌종양 발병 가능성이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점을 완벽하게 증명하는 건 굉장히 힘든 문제란 설명이다.

별로 시간차도 두지 않고 이런 엇갈린 사실이 발표되면 과학에 대해 잘 모르고 그저 받아들이는 일반인들은 혼란스럽기 마련이다. 일상생활에서 수시로 접할 수 밖에 없는 것을 두고 정말로 해로운지, 그렇지 않은지 과학자들이 판단해주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판단해줄수 없다. 설마 휴대폰 전자파의 유해여부를 유엔사무총장이 판단하겠는가? 아니면 로마 교황청이 판단해 주겠는가?



결국 중요한 건 우리가 중심을 잡고 이런 문제들에 대처해야 한다는 점이다. 과학에 대한 지나친 맹신은 종교에 대한 맹신만큼이나 위험하다. 요즘 현대인들이 각종 언론에 보도되는 과학적 연구결과 하나하나에 너무도 민감하다는 게 문제다.

예를 들어 탄 음식을 비롯해 어떤 음식에 발암물질이 발생된다는 말을 들으면 당장 조금이라도 그것을 덜먹으려 애쓴다. 반대로 김치를 비롯해 몇몇 식품에 항암성분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해당 식품을 마구 사서 먹는다. 원래 우리 몸이란 발암물질도 먹고, 항암물질도 먹어가면서 균형을 취하는 것이 정상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억지로 항암물질만 먹겠다고 하면 반대로 영양의 불균형으로 인해 다른 면에 문제가 생긴다. 이런 식으로 과학적 사실을 극단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문제다.

휴대폰 전자파가 정말 뇌종양을 일으킬까?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더 들어보자. 19세기, 의사와 과학자들은 담배가 몸에 유익하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담배가 고통을 줄여주고, 창의력을 높여주며, 몸의 저항력을 향상시킨다고 발표했으며 임상실험으로 증명되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와서 담배에 대한 과학적 분석은 정반대가 되었다. 이제 담배는 몸에 해로운 것으로 굳어져가고 있지만 여전히 몇몇 예술가, 애연가 들에게는 생활에 절실히 필요한 물질이기도 하다.

휴대폰 역시 마찬가지다. 휴대폰 전자파가 뇌종양을 유발한다는 말을 정확히 뜯어보자. 휴대폰의 어떤 부분이 그런 전자파를 내뿜을까? 아마도 전파를 수신하고 발신하는 통신모듈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게 어디 휴대폰에만 들었을까? 3G 통신이 가능한 태블릿, 와이브로 모뎀, 휴대폰 기지국, 텔레비젼 방송 송출탑 등등 비슷한 전파를 송출하고 수신하는 곳이면 어디든 그럴 가능성이 있다.

즉, 핵심 문제는 휴대폰이란 물건이 아니란 이야기다. 전파의 수신과 발신을 하는 장치가 뇌종양을 유발한다는 건데 이걸 예방하기 위해서는 전파관련 장비들을 전면적으로 전부 점검하고 뜯어고쳐야 한다. 단지 무슨 전자파 차단 스티커 같은 걸 붙인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를 제기하고 반론한 과학자들은 보다 상세한 사실을 공표해야 한다. 정확히 휴대폰의 어떤 부품에서 그런 뇌종양을 유발하며, 유사한 부품은 어떤 것인지 말이다. 단지 임상실험만으로 휴대폰을 많이 쓰는 사람이 뇌종양에 많이 걸리더라 정도로 나온 사실은 어쩐지 담배가 몸에 유익하다는 19세기 연구결과만큼이나 믿음이 가지 않는게 사실이다.


휴대폰 전자파가 뇌종양을 일으킨다? 이건 사실이라 할 지라도 진실이 아니다. 휴대폰이 뇌종양을 일으킨다면 유사한 모든 전파 장치가 전부 위험하다. 아니면 전자파가 뇌종양을 일으킨다? 그렇다면 전파발신을 맡은 안테나와 라디오도 위험하다. 정확히 휴대폰의 어떤 부분, 어떤 주파수의 전자파가 위험한지가 공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위에서 보듯 반대되는 뉴스가 바로 나온다.

이런 사실에 대해 우리는 보다 중심을 잡고 이런 뉴스를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도대체 우리가 영화 '부시맨'에 나오는 원주민보다 나을 게 어디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