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혹은 손 마사요시로 불리는 기업인에 대해 내가 처음 알게 된 건 2천년대 초반이었다. 인터넷 열풍- 일본에서는 닷컴 버블로 불리는 시기에 많은 신흥 인터넷 기업들이 생겨서 주목받았는데 그 가운데 손정의가 세운 소프트뱅크가 일본 야후를 인수하고는 엄청난 주가상승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당시 나온 책에서 손정의는 빌게이츠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의 갑부로 소개되었다.


이름도 없는 무명 사업가에서 빌게이츠에 버금가는 부자가 되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화제거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는 전세계적으로 인터넷 기업의 거품현상이 심하던 시기였다. 이때 주목받은 회사 가운데 상당수가 몇 년뒤에 망하거나 인수되는 등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경우가 많다. 소프트뱅크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이후 시가총액이 100분의 1로 하락하는 아픔을 겪게 된다. 당연히 손정의도 세계에서 두번째 갑부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손정의를 보는 대부분의 시선은 너무 단순하다. 그가 단지 짧은 시간에 인터넷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는 건 중요하지 않다. 또한 그가 한국인의 핏줄을 타고났다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손정의냐 , 손마사요시냐 하는 명칭도 별 의미없는 구분이다. 중요한 건 손정의란 기업가가 어떤 비전을 가지고 사업을 해왔냐는 것이다.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자 근대화에 크게 기여한 인물인 사카모토 료마를 존경한다는 손정의 회장에 대해 나는 사실 그다지 깊은 것을 알고 있지 않다. 나 역시 피상적으로만 보아왔다. 그래서 이번에 그가 한국에서 11년만에 공식 방한과 기자간담회를 연다는 사실이 매우 신기했다. 또한 그 간담회에 초대받았다는 사실이 매우 기뻤다. 그는 일본에서 매우 존경받는 사업가이고 또한 IT역사를 만든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런 자리에 국내외 기자들과 함께 블로거로서 나란히 취재할 수 있다는 건 매우 영광이었다.



6월 20일 오후 2시,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시작된 기자간담회는 매우 진귀한 광경이었다. 그는 한국에 와서 롯데호텔에서 강연을 한 뒤, 이명박 대통령과의 면담 후 곧바로 신라호텔로 왔다. 그리고는 빽빽이 들어찬 기자와 방송 카메라 앞에서 먼저 스스로 걸어온 인생 여정을 소개했다. 말은 기자 간담회였지만 실제로는 두 시간 동안 이어진 강연이었다. 키포인트는 친환경에너지와 소프트뱅크의 300년 계획이었다.

이 가운데 주최측이 보내온 공식 녹취록을 기반으로 이날 강의 핵심 내용을 내 나름대로 정리해서 소개한다

1) 3개월 전, 동북아 대지진 이후 나 손정의는 인생관에 변화가 있었다. 사람과 회사가 살아가는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일본은 지진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으며 아직 쓰나미의 재해가 남아있다. 특히 원전사고로 인해 일본에서는 지금 발전 능력이 34GW에서 16정도로 반으로 줄어들었다.



따라서 정보혁명에만 내 인생을 바치겠다는 창업 후의 비전 및 철학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소프트뱅크는 창업 이후 최대 이익을 내고 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쪽에서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런 대립되는 상황에서 내가 내 기업만 잘 꾸려가면 될 것인가?



2) 그런 고민의 결과로 보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면서 내가 추구하는 인터넷 혁명에서 부합하는 분야를 찾았으니 바로 친환경적인 재생에너지다. 따라서 자연에너지협의회(Renewable Energy Governor’s Alliance)를 설립하기로 결심했다. 일본에 있는 47개 광역자치단체 있는데, 그 중 34개 현 지사들을 설득해서 자연에너지 협의회에 참석 동의 이끌어냈다.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도 친환경에너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3) 먼저 30년 후의 미래를 생각해보자.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 엄청나게 변할 것이다. 거의 무한대의 저장공간이 생기고 무한대의 클라우드와 초고속 네트워크가 생긴다. 오늘날에 비교하면 그야말로 극적인 변화로서 사람들의 생활 양식 자체를 바꿀 것이다. 의료, 교과 정보는 클라우드 속에 있고, 종이 잡지, 교과서를 읽는다는 것은 뒤처진 행동이 될 것이다. 이런 변화를 예상한 가운데 소프트뱅크는 최첨단의 테크놀로지, 비즈니스 모델을 30년 간 진화시켜 나갈 것이다.



4) 300년 후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더욱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것이다. 이런 변화에 맞춰 기업이 존속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 체질부터 달라야 한다. 나는 미래비전으로 소프트뱅크를 중앙집권화가 아닌 자율적으로 서로 협조하는 기업으로 만들겠다. 내부의 많은 회사가 각각 연계하면서도 별도의 회사이름을 쓰고 별도의 리더를 가지는 체계로 구성한다. 그렇게 되면 의사결정과정이 신속해지면서도 서로간에 시너지 효과를 유지할 수 있다.



5) 나는 한국 드라마를 좋아한다. 대장금이라든지 여러 드라마를 보지만, 군주를 중심으로 경쟁하는 구조가 있다. 그처럼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를 세워 내 뒤를 이어 리더가 되기 위한 교육을 하고 있다. 앞으로 300년 동안 소프트뱅크 그룹은 존속할 수 있을 것이고 지속적으로 성장해갈 수 있을 것이다.



6) 30년 뒤와 300년 뒤를 생각하는 이런 것들은 정말 큰 도전이지만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정보혁명을 위해 이뤄나가겠다. 인터넷 혁명의 본질은 무엇인가? 내가 추구하는 철학은 사람들의 행복이다. 나는 내가 추구하는 정보혁명을 통해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겠다.


2시간 동안의 강의였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감동받았다.
손정의는 스티브 잡스처럼 엄청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화려한 쇼맨쉽이나 과정된 연출도 없었다. 하지만 내가 정말 감동받은 것은 준비한 많은 영상과 시각자료를 통해 성의있게 그가 보여주려고 한 철학이다. 기업가로서 자기 회사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광고하지 않고 단지 포부와 철학을 강조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오늘날 세계의 많은 기업가들이 단지 돈을 벌고 명성을 얻기 위해 기업을 운영한다. 말로는 자기도 비전이 있다고 하지만 실상 그들이 하는 일은 눈앞의 이익을 위해 직원을 대량해고한다든가, 원가절감을 위해 외국 노동자의 착취를 무시한다든가하는 일이다. 심지어 단지 특허 몇 개만 가지고 많은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남발해서 돈만 긁어모으는 회사도 있다. 이런 회사에 30년 뒤의 미래 따위가 있을 리 없다.



비교적 건실한 회사라 할 지라도 일관된 철학을 세우고 300년 후의 미래까지 예상하며 나아가는 회사는 거의 없다. 대부분은 그저 한해 한해를 살아가기에 바쁘다. 우리도 굳이 생활고에 찌들지 않더라도 눈앞의 연애나 직장생활만 보고는 30년 후의 내 모습을 보지 못하고 사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는가?

이번 손정의 회장의 철학과 300년 후를 보는 포부를 보며, 문득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도 이런 기업인이 한 명 정도 있어야 하는데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아마도 한국이 아직은 이만한 기업가를 키워낼 만한 환경이 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문득 2000년대 초반의 한가지 헤프닝이 떠오른다. 당시 한국축구가 부진하고 일본 축구가 강세를 보일 때였다. 한국축구에 대한 문제점을 분석하는 프로그램에 나온 누군가가 지적해다. 일본 축구는 무려 100년 대계를 세우고 홈페이지에 공개하면서 일관된 철학으로 운영하고 있다. 한국 축구는 10년 계획이라도 있는가? 라고 말이다. 당시 그 말은 상당한 화제를 몰고 왔다. 그리고 한국축구는 이후 달라졌다.

소프트뱅크 손정의가 보는 300년후 미래는?



마찬가지로 손정의 회장의 300년 계획을 보자. 한국 기업 가운데 300년 정도의 먼 미래까지 보며 비전과 계획을 세워 운영하는 회사가 있는가? 후계자 양성 시스템을 공식적으로 세워놓고 300명을 가르치는 곳은 있는가? 하물며 당당하게 공개석상에서 자기는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사업을 한다고 선언하는 기업인은? 내가 알기로는 없다.

손정의가 보는 300년 후 미래는 인터넷 혁명을 통해 보다 인간이 행복해지는 미래다. 그는 그 미래를 다른 사람이 아닌 스스로와 소프트 뱅크가 앞장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친환경에너지와 인터넷 두 가지를 가지고 말이다. 



나는 바란다. 지금은 없더라도 앞으로 이런 기업 철학과 긴 비전을 가진 기업인이 나와서 크게 성공하는 한국이 되기를. 그래서 우리가 보다 희망차게 미래를 볼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게 되기를 바란다. 아마도 이것이 손정의 회장의 300년 계획이 한국에 던지는 가장 큰 메시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