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답답한 노릇이다. 미래의 중대한 방향을 쥔 혁신을 가지고 한 업체나 한 개인에게 바래야 한다는 상황은 특히 그렇다. 분명 이것은 모든 업계와 관련된 모든 사람이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인데 말이다.

애플이 세계 개발자 회의에서 야심차게 차세대 아이패드 운영체제인 iOS5를 내놓았을 때를 보자. 이때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열광적은 아니었어도 애플답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경쟁업계가 더 높이 평가하고는 대응을 위해 아이클라우드를 비롯한 각종 서비스를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번 아이패드 새 운영체제 혁신에서 누락된 부분이 있으니 바로 전자책이다. 애플은 아이패드를 처음 내놓았을 때, 아이북스란 전자책 솔루션과 수익모델을 내놓았다. 대성공한 아이튠스의 음악 수익모델을 본딴 이 모델은 아이패드의 결정적인 승부수로서 소개되었다. 아마존이 잔뜩 긴장하고, 당황한 국내 출판계가 이후 줄줄이 아이북스와 비슷한 북스토어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현재 아이북스는 정체된 상태다. 조용히 성장하고는 있지만 초기에 받았던 기대만큼은 아니다. 아마존은 여전히 굳건한 위치를 차지한다. 조심스럽게 아이북스에 각국의 전자책이 올라오고 있지만 아직은 기존 출판계의 주요작품들은 기회만 볼 뿐 나서지 않고 있다.


그래서 안타까운 것이 이번 iOS5의 주요 기능이다. 클라우드가 테마인 이번 발표에 다시 한번 전자책에 관심을 상기시킬 내용이 있었으면 좋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없었다. 이번 시연에서도 애플은 음악과 각종 데이터의 자동 동기화 등을 강조했을 뿐이다. 책에 대한 이야기는 언급이 없었다. 과연 애플은 어떤 생각일까? 전자책에 대해서는 이이상 혁신이 필요없다고 생각한 걸까?

애플 아이북스, 그 이상의 혁신은 없는가?



1) 솔직히 이번 건에 관해서는 애플에 더이상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다. 애플은 전자책 전문 업체가 아니다. 단지 태블릿인 아이패드를 처음 계획하고 발표했을 때 가장 핵심이 되는 장점을 전자책에서 찾았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은 아이패드를 포스트 PC로 키우기 위해 클라우드 시스템과 함께 키우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전자책은 더 주력하지 않느냐고 탓할 수는 없다.

2) 아이북스는 열광적 반응은 아니라도 어느정도 안정적인 상태로 꾸준히 사용자를 늘리고 있다. 충분히 할 일을 다했다. 오히려 경쟁업체들이 이젠 더 좋은 것을 내놓아서 경쟁할 차례다. 그런데 경쟁업체안 아마존이나 구글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공이 다시 애플에게 넘어간다. 아이패드를 통해 다시 한번 전자책 시장에 신선한 자극과 혁신의 활력을 넣어주길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이상 애플에만 기대하는 건 무리다.

3) 아이북스 앱과 7대 3의 수익 모델, 이것으로 애플이 일단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나머지는 아마존과 기타 경쟁 업체의 몫이다. 솔직히 아이북스를 넘어서는 훌륭한 책보기 앱이 못나올 리 없다. 또한 아이북스 수익모델보다 훌륭하고 매력적인 수익모델이 못나올 리 없다.



하지만 애플의 강력한 경쟁업체인 구글은 전자도서관 사업등을 추진하다가 법정에서 패소한 여파로 인해 소극적이 되었다. 아마존은 현상유지만 해도 어차피 1위 업체다. 판이 뒤집어질 수 있는 심한 모험은 할 가능성이 없다.

그럼 국내 전자책 업계는? 내가 이전 포스팅에서 복제인간 이야기까지 하면서 스티브 잡스를 그리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자책 뷰어와 수익모델 양쪽에서 아이북스의 모방품에서 더이상의 진전이 없다.

국내 대형 출판사 한 곳은 오히려 전자책 활성화가 되면 종이책이 안팔리까봐 자기가 막고 있다는 말까지 서슴없이 한다. 그것도 일부러 전자책 업체에 참여해서 그 주체로서 불성실하게 추진함으로서 말이다. 다른 의욕에 찬 업체의 참여 자체를 봉쇄하는 효과까지 있는 대단한 수단이다.

감탄했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정도의 대단한 머리를 정작 전자책 발전과 그로 인한 수익창출에는 못쓰는지 모르겠다. 아이북스가 너무 잘 만들었다고 감탄만 하고 있을 게 아니다. 사람이 만든 것에는 무엇이든 약점이 있다. 그 약점을 잘 분석해서 더 좋은 것을 만들 수 있다.




당장 유효하다고 해서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고 과거의 영광만 붙잡고 있으면 비참해진다. 지금 종이책이 그런대로 팔린다고 해서 그것이 미래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문득 우리가 겪었던 임진왜란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왜군 조총병 수천명이 쏘아대는 근대식 부대의 총탄 앞에 조선의 중세식 기병대가 함성을 지르고 깃발을 날리며 돌격하는 장면이다. 그 후의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굳이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혁신을 미룬 국내 전자책 업계가 자칫 그 기병대는 아닌지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