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두고 약간 고민하고 있다.
본래 나는 지난 15년간을 소설가로 살아왔다. 장르문학이긴 하지만 예술성을 가진 글을 쓰고 다듬으며,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에 전력을 다했다. 그런데 최근 IT평론가로서 1년 좀 넘게 활동하며 소설을 쓰지 않은 탓에 조금씩 에술적 감각이 둔해져 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나마 전자책에 대해 이렇게 정기적으로 글을 쓰면서 내가 소설가이며 예술에 대해 아직도 뜨거운 열정이 있음을 느끼곤 한다.



지난 며칠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아이클라우드에 대해 발표한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 후에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클라우드란 개념을 언론이 집중보도했다. 경쟁업체는 갑자기 사활을 걸고 클라우드 서비스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스티브 잡스란 인물이 한번 작정하고 달려들었을 때 그 분야에는 거의 문화적 쇼크가 온다는 걸 알게 된 효과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 한국에서는 여전히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는 분야가 있으니 바로 전자책 산업이다. 분명 이것은 미래가 확실한 분야인데다가 이미 많은 잠재 소비자가 대기하고 있다. 또한 한번 주도적인 기술을 쥐게 되면 확고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의 출판계나 관련 업계 가운데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이 없다.



한국의 출판계는 오랜 역사를 가졌다. 또한 한국은 예전부터 아주 발전된 출판문화를 가졌다고 자랑해왔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을 가지고 있고, 최대의 팔만대장경을 가졌으며, 금속활자도 최초로 개발했다고 자랑하는 한국이 아닌가? 어째서 새롭게 바뀔 패러다임인 전자책을 맞아 세계에 내놓고 야심차게 발표할 무엇인가를 만들지 못한단 말인가?

아, 물론 있긴 하다. 얼마전 중소기업에서 아이북스와 애플, 아마존 등을 능가할 3차원 전자책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일단 더이상 보도되지 않는데다가 주목받지도 못하고 있다. 나는 오히려 그런 용기와 야심을 높이 쳐주며 희망적으로 보고 싶지만, 유감스럽게도 해당 중소기업 수준에서 새로운 기술로 단숨에 시장을 바꾸기란 힘든 것 같다.



한국 전자책에도 스티브 잡스가 필요할까?

스티브 잡스는 왜 그럼 이렇게 새로운 영역에 대한 포부를 밝힐 때마다 세계가 주목할까? 어째서 그가 제품 하나, 서비스 하나를 발표하면 업계 전체가 들썩거릴까? 그건 그가 이제까지 그만한 업적을 쌓았기 때문이다. 애플2와 매킨토시, 아이팟과 아이폰, 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스티브 잡스의 제품은 항상 생활을 바꾸고 미래를 향했다.

물론 그도 많은 실패를 했다. 부분적으로는 리사와 애플3의 실패가 있고, 전면적으로는 넥스트 컴퓨터의 실패도 있다. 그럼에도 그 제품들에는 항상 엄청난 도전이 있었고 기술에 대한 가능성을 믿는 꿈이 담겨있었다. 그러기에 누구나 잡스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례를 한번 전자책과 한국 출판계의 현실에 비춰보자.



1) 첫째로 한국에서는 전자책이란 미래기술에 관해 불법복사부터 겁낼 뿐이다.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천문학적인 이윤을 창출해보려는 기업이 없다. 이미 아이패드 등으로 많이 나와있는 전자책 솔루션은 아이북스를 견제해보려는 의도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인터페이스부터 비즈니스 모델까지 아이북스에서 한발짝도 더 진보하지 못했다.

2) 둘째로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발상으로 대번에 상황을 타파해보려는 개인도 없다. 아무리 암울한 상황이라고 해도 그 나름대로 소비자가 있는 한 항상 해답은 있는데 말이다.

스티브 잡스가 대성공한 아이튠스 역시 엄청나게 절망적인 상황에서 나왔다. 음원파일이 MP3로 인터넷에서 대량 복사되고, 음반 업체는 인터넷을 잔뜩 경계하고 몸을 사리는 상황에서 잡스는 오히려 0.99달러의 저렴한 가격으로 확실한 저작권 보호와 질 좋은 음악을 중개해주는 모델을 제시해 대성공을 했다. 한국 전자책 역시 잘 연구해보면 분명 잘 맞는 비즈니스 모델이 있다.

3) 국내 전자책 업계는 그저 내가 아닌 누군가 나서서 뭔가 해주기만 바라고 있을 뿐이다. 스스로는 절대로 적극적인 도전을 하지 않는다. 조용히 다같이 고사할 지언정 창의적인 어떤 사업을 먼저 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누군가 해서 성공하면 그제야 그걸 따라해 볼 생각인데, 모두가 그런 생각이기에 아무도 나서지 않는 상황인 것이다.


결국 이런 교착된 한국 업체의 현실에는 방법이 없다.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나와서 단숨에 무엇인가 번뜩이는 사업모델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서 성공하고 나면 그제야 국내 전자책 업체도 호들갑을 떨며 따라가기 바쁠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그들은 욕을 먹게 될 것이다. 스스로 개척해서 부딪치며 얻어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말이다.

복제인간 기술이라도 빨리 확보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한국 전자책 업계에도 마치 구세주처럼 스티브 잡스가 필요할 테니 말이다. 이렇게 도전정신이 없는 한국 전자책 업계에는 평범하지만 성실한 사람들의 힘보다는 스티브 잡스같은 영웅만이 필요한 것인가? 새삼 고민되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