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조는 재미있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무서운 상대가 나타나면 일단 도망가지만 도저히 도망갈 수 없다고 생각되면 갑자기 자기 머리를 땅속에 푹 파묻는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상대가 전혀 보이지 않으니 두려움을 견딜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단지 타조에게 보이지 않는 것일 뿐이다. 공포를 주고 위협해오는 상대 그 자체가 사라진 게 아니다. 따라서 그대로 있으면 타조는 결국 상대에게 잡아먹히고 만다.



그동안 국내 이동통신사는 소비자의 요구 가운데 수익에 관련된 부분은 줄기차게 무시했다. 특히 선진국에서는 무료인 경우가 많은 문자메시지에 대해 절대 무료화를 하지 않았다. 초기에는 통신망 확충비용이라는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그것까지 사라진 후에도 절대로 무료화하지 않았다. 본래 건당 30원이었던 요금을 20원으로 낮추고 무료문자 서비스를 약간 준 것이 고작이었다.

통화를 안해도 내야하는 기본료 자체도 매우 비싼 편인데, 문자까지 비싸게 받으면서 명분은 '문자가 무료화 되면 음성수요가 문자로 몰린다.' 는 것이었다. 이후 한국 통신시장이 어떻게 되었는가? 이통사는 해마다 기록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다. 무료문자 서비스가 웹상에 범람한다. 이통사의 웹페이지는 무료문자제공을 무슨 선심쓰듯이 하면서 인증까지 받아가며 제한하고 있다. 말로는 스팸문자 방지라지만 결국 불편하게 만들어 유료문자를 보내게 하려는 의도다.

결국 스마트폰 시대에 와서 카카오톡이라는 복병을 만나 유료 문자메시지 수익이 감소하자, 이통사는 문자 메시지를 무료화하는 대신 카카오톡에 차단 혹은 유료화를 선택하라는 압력을 넣고 있다. 사용자들의 강력한 반발이 있어 주춤하긴 하지만 거의 카카오톡 측이 이통사에 돈을 주는 것으로 해결될 상황이었다.


(사진출처: 인가젯)

그런데 이런 상황에 대해 강력한 복병이 나타났다. 바로 애플이 이번에 발표한 새로운 서비스- 아이메시지다. 이것은 애플의 iOS5를 채택한 모든 기기에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메신저인데 바로 애플판 카카오톡인 셈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 서비스에 대해 국내 이통사들은 충격을 받고 있다. (출처)

애플발(發) 무료 문자 서비스가 국내 통신시장에 변화를 강요하고 있다. 그동안 문자 메시지로 돈을 벌어온 통신사들은 이용자들의 문자 무료화 압박이 심해지자 대책 마련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애플은 7일 세계개발자대회(WWDC) 기조연설에서 새 운영체제(iOS5) 기반의 모바일 메신저 '아이메시지(iMessage)'를 공개했다. 아이메시지는 아이폰과 아이패드 사용자끼리 무료로 메시지를 무한정 주고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문자는 물론 동영상을 주고받는 것도 가능하다. 기존 애플 아이폰과 아이패드도 운영체제를 iOS5로 업그레이드하면 자동으로 설치된다. 카카오톡처럼 그룹 채팅도 가능하다. 상대방이 메시지를 받은 시각과 읽은 시각을 보낸 이에게 알려주는 기능도 들어 있다. 모든 메시지를 암호화해 보안성도 높였다.

통신업계는 애플의 무료 문자 메시지 등장으로 비상이 걸렸다. 가뜩이나 카카오톡의 등장으로 단문메시지(SMS) 사용료 수익이 쪼그라든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5월 현재 가입자 1500만명인 카카오톡의 경우 하루 오가는 문자 메시지 수가 4억건에 이른다. 건당 20원으로만 따져도 한달이면 2400억원에 이르는 통신사 매출이 줄어드는 셈이다.

통신업계의 고민은 뾰족한 수단이 없다는 데 있다. 애플은 통신사의 문자 메시지를 이용할 수 없는 아이패드와 아이팟 터치 사용자들을 겨냥한 것으로 포장했다. 또 애플 제품에서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카카오톡과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애플만 규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통신사의 한 관계자는 "아이폰 차기 모델을 들여오기 위한 통신사 간 경쟁이 치열한데 애플에 이 같은 불만을 토로할 수나 있겠느냐"고 말했다.

국내 이통사가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태도를 보인다는 건 이미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기사에서도 나왔듯이 애플에 대고 감히 누가 아이메시지를 제거하라거나, 유료화 하라는 요구를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차단을 할 수도 없고, 애플에 돈을 내라고 손을 벌릴 수도 없다. 아무런 대책도 없는 것이다.



문제는 카카오톡이다. 만만한(?) 국내 중소업체인 카카오톡에게는 차단이나 배제란 강경수단을 언급해가며 압력을 넣었다. 이건 단순한 큰소리가 아니다. (출처)

수익 감소를 우려한 국내 통신사들이 앞 다퉈 모바일인터넷전화(M-VoIP, 잠깐용어 참조) 서비스를 차단했지만, 앱에 따라 차단 여부가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글로벌 인터넷전화업체인 스카이프는 국내에서 요금제에 관계없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국내 통신사들이 M-VoIP를 차단한다는 방침이 발표되고 다음 마이피플, 수다폰, 올리브폰 등 국내 서비스는 대부분 차단되거나 통화 품질이 나빠졌다. 매경이코노미가 직접 4만5000원 요금제를 사용하는 스마트폰으로 실험을 해본 결과 마이피플은 와이파이망을 제외하고는 통화 자체가 되지 않았고, 올리브폰과 수다폰은 두 번에 한 번 꼴로 3G망에서 통화가 가능했지만 통화 품질이 일정치 않았다. 반면 스카이프는 3000원 선불결제를 하고 5번 시도한 결과 모두 통화가 이뤄졌다.

기사에서 보다시피 무료통화 앱조차 기술력의 차이와 외국업체라는 이유로 인해 스카이프는 차단되지 않았다. 더욱이 과연 국내 이통사가 스카이프를 상대로 돈을 내거나 서비스를 내리라는 요구라도 해본 적이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강자에게 그런 요구를 대놓고 할만큼 배짱좋은 이통사를 본 적이 없다.



애플은 스카이프조차 상대가 안되는 강자다. 이통사가 무리해서 요구해봐야 무시할 게 뻔하고, 강력하게 요구하면 '아이폰 안 팔아.' 해버리면 끝이다. 아이폰의 인기가 열광적인 지금, 그런 결과를 바랄 이통사는 없다.

문제는 형평성이다. 같은 서비스인데 국내 회사 카카오톡은 압박도 받고 돈도 내야하고, 외국회사 애플은 아무런 요구도 받지 않는다? 이건 공정거래위원회라도 제소해야 할 역차별이 된다. 또한 망중립성에 대한 위반이기도 하다. 이제는 카카오톡도 죄인이 될 필요가 없다. 애플처럼 당당해질 근거가 생겼다.

문자메시지 무료화,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까?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런 게 아니다. 설령 이통사가 바라는 대로 망중립성의 예외로 인정받고, 국내 회사 역차별이 합법이라 인정받는다고 해도 그걸로 끝이 아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무서운 적이 다가오는 데 타조처럼 머리를 땅에 처박는고 자기 눈을 가린다고 해서 위협 자체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애플을 위시한 세계적 회사들이 주도하는 흐름은 이미 스마트폰과 모바일 기기의 메신저를 전면적으로 무료 서비스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 가운데서 더 큰 소셜 산업을 일으키자는 것이다.



눈 앞에서 메시지 하나 둘에 20원, 40원 받아 챙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란 뜻이다. 10억, 20억의 세계인들이 메시지를 통해 소통하고 그 가운데서 비즈니스를 하면서 생기는 엄청난 수익과 기회를 생각해보라. 눈앞의 몇 십원에 목숨을 거는 국내 이통사의 행동이 이처럼 한심해 보일 수가 없다. 오죽하면 이제는 기사 자체가 문자메시지 무료화를 받아들이라고 촉구하고 있을까.

문자메시지는 이제 그만 무료화해야 한다. 차라리 무료화하는 대신 광고를 삽입하든, 소셜 서비스로 끌어들이든 그건 이통사가 머리를 써서 해야될 일이다. 제발 아무런 머리도 비용도 쓰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20원, 40원... 받는 것에 목숨걸지 말자. 그러다 애플을 위시한 외국 회사에게 통째로 국내시장을 잡아먹히는 타조가 되지 말자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