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에 보면 재미있는 장면이 있다. 주인공이 하는 일 가운데 하나로서 단어의 의미를 왜곡시키는 일이 수행된다. 단어 자체의 의미를 바꾸면 사람들의 사고방식 자체가 제한되고 왜곡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유'가 말살된 사회에서 사람들을 통제하기 쉽게 하려면 어떻게해야 할까? 가장 근원적이고 쉬운 방법은 '자유' 란 단어 자체의 의미를 바꾸는 것이다. 즉 '자유' 를 '통제를 받으면서 누리는 권한' 으로 바꿔보자. 그러면 사람들이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 고 외칠 수가 없게 된다. 이미 자유란 단어 자체가 통제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카카오톡 제한에 대한 뉴스 기사 하나를 읽으면서 나는 문득 이런 조지오웰의 소설 장면을 연상하고 말았다. (출처)

방통위, 이통사-콘텐트사 간 ‘망 중립’ 방안 고심

트래픽 과부하 원인으로 지목된 카카오톡이 이통사에 일부 요금을 지불하게 될 전망이다.
가입자수 1천400만명을 보유하고 있는 카카오톡은 이통사들의 망을 아무런 대가 없이 사용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통사들도 트래픽 과부하 원인 중 하나로 '카카오톡'을 지목했다. 하지만 고객들 상당수가 가입한 카카오톡측에 비용부과를 요구할 수도 없는 난감한 입장.

방통위는 26일 망중립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이통사와 콘텐츠 네트워크 사의 갈등을 중재를 위해 26일 방통위가 나섰다.
방통위는 이통사와 콘텐츠사의 입장차를 좁히기 위해 망 중립성 원칙을 마련한다고 전했다.
망 중립성이란 이통사의 네트워크 사정에 따라 콘텐츠를 일부 제한하는 법안을 말한다.
이는 콘텐츠의 속도를 늦추거나 콘텐츠 업체에게 망 사용료를 부과하게 하는 등의 방안이다. 구체적인 방안은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사에서 망중립, 망중립성이란 단어의 선택은 명백히 본래의 뜻과는 잘못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망중립 제한, 망중립성 제한 으로 써야 맞는다. 그런데 망중립이라는 단어만 쓰고 보니 마치 중립을 지킨다는 게 규제를 하는 거란 뜻으로 잘못 쓰이고 있다.

본래 망중립성이란 쉽게 풀어쓰면 다음과 같다. 통신망을 이용하는 데이터는 그것이 음성이든 문자든, 인터넷 데이터든 차별받지 않고 공정하게 취급받는다. 망 사업자는 중립적 입장에서 망을 관리해야 한다. 이런 것이다. 그런데 위의 기사는 완전히 다른 뜻으로 쓰고 있다.

참고로 바르게 쓰인 뉴스 기사를 예로 들어본다. (출처)



인터넷업계는 네트워크 개방성이 산업과 경쟁의 기본구도를 결정하고, 산업 혁신을 뒷받침한다며 망 중립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망 폐쇄성과 각종 규제가 인터넷산업의 글로벌화를 막아 결과적으로 인터넷강국 지위를 끌어내렸다는 것이다. 특정기업이나 서비스에 특혜를 주지 않는 망 중립성 정책이야말로 장기적으로 산업 활성화와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한 종호 NHN 이사는 “국내 콘텐츠·인터넷사업자들은 자사의 서비스가 언제 차단될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 비즈니스 예측 가능성과 가시성이 떨어지고 있다”며 “투명성, 접속차단 금지, 불합리한 차별 금지라는 망 중립성의 세 가지 핵심 원칙을 법제화해 인터넷산업의 개방성과 혁신성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래 기사를 보고 나서 다시 위의 기사를 보자. 위의 기사는 기자가 제대로 몰라서 그렇게 쓴 것인지, 일부러 왜곡하기 위해 쓴 것인지 모르겠다. 단 한 부분만이 아니라 작은 타이틀 부터 시작해서 모든 부분에서 망중립이란 의미를 '규제나 제한을 받는 것이 중립이다.' 란 뜻으로 써버렸다. 여기가 지금 조지오웰의 사회인지 착각하게 될 정도다.



카카오톡 제한, 망중립성의 의미는 무엇인가?

문제는 기자가 실수라 하더라도 저 기사를 읽는 일반 독자에게 미칠 영향이다. 솔직히 망중립같은 어려운 단어는 잘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런 독자가 저런 기사를 읽으면 은연중에 망중립이란 규제하는 것이고 그게 당연한 거라고 인식한다. 오히려 규제를 안하면 그게 중립을 지키지 않는 극단론이라고 오해를 하게 된다. 통상 중립 이라는 게 좋은 의미로 쓰이기 때문이다.


카카오톡 이용을 망 사업자가 제한하거나 요금을 물리겠다는 것도 사실은 좀 문제가 있긴 하다. 네이버나 다음, 구글 등의 대형 포털사업자도 트래픽을 많이 유발한다. 그럼에도 망 사업자가 따로 제한하거나 요금을 물리지 않는다. 유독 카카오톡에만 민감하게 문제삼는 것도 우습다.



망중립이란 말 그대로 망은 중립을 지켜서 차별하면 안된다는 뜻이다. 차별을 해도 된다는 게 중립이 아니다! 어쨌든 카카오톡 사태의 해결이야 어떻게 도출되든, 우리는 망중립성이란 단어부터 정확히 알아야 할 것 같다. 안그러면 이런 이상한 기사에 묻혀 사고방식까지도 왜곡되어 버릴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