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정치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단체 가운데 '녹색당' 이라는 정당이 있다. 보통 정치적 의미의 정당이 주된 테마를 거창한 이데올로기로 삼는데 비해 녹색당은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이 환경이다. 깨끗하고 맑은 환경에서 살 자유를 누리기 위한 모든 활동이 이 단체의 목표다. 국가가 먼저냐, 국민이 먼저냐 하는 엄청난 스케일의 정당 사이에서 이 녹색당은 오히려 신선한 돌풍을 몰고 오며 유럽 정치에서 의미있는 세력으로 존재한다.



종이책을 부분적으로, 혹은 전면적으로 대체하고 있는 전자책의 대두에 대해서 많은 의견이 있다. 저마다 바라보는 관점과 이익이 다르니 여러 측면의 생각이 나온다. 그런데 그런 의견 사이에서 '전자책이 지구의 환경을 보호해준다.'는 의견이 있어 눈길을 끈다.



어째서 이런 논리가 나오는 것일까.
우선 우리가 쓰는 종이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 생각해보자. 종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원재료인 펄프가 있어야 하고, 그것은 나무로 만들어진다. 나무는 숲에서 베어내는 천연자원인데, 그 자체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만드는 중요한 생물이기도 하다. 더구나 몇 개월로 금방 키워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산업적으로 의미가 있는 펄프를 얻을 나무는 몇 년 이상은 키워야 한다.


그렇게 얻어진 나무를 가지고 펄프를 만드는 데는 또다시 석유나 석탄, 전기와 같은 에너지가 소비되며, 이산화탄소를 내뿜는다.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끼친다는 그 이산화탄소 말이다. 종이가 완성되면 끝일까? 아니다. 그것이 다시 책으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인쇄, 제본, 유통, 판매를 거치는 데 모두가 그 과정에서 다시 전기와 석유 등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러니 한권의 책이 제작되어 우리 손에 들어오기 위해서 소비되는 자원과 에너지는 매우 크다.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체하게 되면 이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대폭 생략된다. 종이가 필요없으니 애초에 나무를 베어낼 필요가 없다. 또한 인쇄과정이 필요없으니 에너지가 소모되지 않으며, 유통과 판매 과정에서도 인터넷을 이용하니 에너지를 소모할 일이 거의 없다. 이것만 봐서는 분명 전자책은 획기적으로 자원과 에너지를 적게 쓰며 지구 환경에 도움이 된다.

전자책은 과연 환경보호에 도움이 될까?

그러나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전자책이라고 해서 무조건 자원을 적게 쓰는 것이 아니다.

첫째로 전자책은 그 자체로는 가독성을 가지지 못한다. 무슨 말이냐하면 인쇄된 종이와 달리 단말기와 거기에 공급되는 전기가 없이는 볼 수가 없다는 말이다. 전자잉크는 그나마 전력소모가 적겠지만 아이패드같은 태블릿은 상대적으로 많다. 그리고 그 전기는 공짜로 주어지는 게 아니다. 역시 환경을 파괴하며 만드는 에너지다.



둘째로 전자책의 유통과 저장을 위해서는 개인이 아닌 기업의 대규모 저장공간이 필요하게 된다. 이른바 클라우드 시스템을 위한 데이터 센터다. 초고속 인터넷과 고용량 하드디스크가 빽빽하게 들어차 데이터를 주고 받아야 한다. 거기서 필요한 건 전기다.

해외 뉴스에 의하면 구글과 MS등의 데이터 센터는 그래도 태양열이나 풍력 등의 친환경 에너지를 이용하려고 애썼지만, 애플은 전혀 그런 것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석유와 원자력 발전소의 전기를 그냥 가져다 쓴다. 덕분에 애플은 환경단체로부터 가장 환경에 해로운 기업으로 뽑히는 영예(?)를 얻었다.

전자책의 확산은 결국 나무와 석유를 쓰지 않는 대신 전기를 더 많이 필요로 한다는 모순이 있다. 수력발전이라고 해도 강을 가로막아 댐을 지어야 하는 환경파괴가 따른다. 화력은 석탄이나 석유니 말할 것도 없고, 풍력이나 태양열은 아직 발전량이 너무 작다. 그나마 강력한 에너지원이던 원자력은 지금 일본지진 사태에서 보듯 만일의 경우 지구 환경에 더 해롭다.



전자책으로 인해 전력 수요가 더 증가한다는 건 환경보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장의 종이나 석유 절약도 좋지만 전기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거나 친환경 발전시설에 대한 고민이 없으면 안된다. 그런 것이 없이 그저 전자책이 저절로 환경을 보호해줄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건 아랫돌 빼서 윗돌에 올려놓는 상황 밖에 되지 않는다.

앞으로 우리 모두 전자책과 함께 환경보호에 대한 보다 진지한 고민을 해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