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예술이란 무엇일까? 매우 형이상학적인 이 질문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제기되던 명제다. 여기에는 표현수단부터 시작해서 만드는 사람과 향유하는 사람, 그 시대의 흐름 등 모든 요소가 다 들어간다.

중세 유럽에서는 춤이 인간의 영혼을 타락시키는 부정의 상징처럼 매도되던 시기가 있었다. 한번 신으면 죽을 때까지 춤만 추게 된다는 '빨간구두' 이야기는 동화지만 어쩐지 잔혹한 경고문같은 느낌만 받게 된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춤이란 당당한 예술로 자리매김했다.



기술이 발달하고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바뀜에 따라 예술의 수단과 요소도 자꾸만 변화한다. 그러다보니 기존 상식에 사로잡힌 예술가들에게 있어 예술이냐 아니냐를 판정하는 것이 하나의 특권이나 진입장벽을 만드는 논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필자는 직업소설가다. 그렇지만 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이른바 '등단'을 하지도 않았다. 경력으로는 1995년 PC통신에 소설을 올려 데뷔한 이래로 15년간 50여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러니 나름 '중견작가' 소리도 들을 수 있을 듯 하다. 그런데 요즘 전자책을 두고 벌이고 있는 논란을 보면서 새삼 사람의 인식이란 게 얼마나 한계가 있는지 느끼게 된다.

원인은 아이패드와 아이북스로 인해 개인이 전자책을 자유롭게 써서 출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종래에는 어찌되었든 종이책을 출간하면 작가로서 인정해주자는 기준이 있는게 문학계였다. 종이책은 그래도 나름 출판사라는 편집부를 거치기 때문에 선별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선별과정이 없이 나오는 종이책 작가는 작가라고 인정할 수 없지 않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과연 이것이 옳은 관점일까?



수단을 가지고 정체성을 논의하면서 방벽을 쌓는 엘리트 의식은 한국문단의 고질적인 병폐다. 지금도 몇몇 순수문학쪽의 문인들은 컴퓨터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해서 쓰는 글은 문학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역시 문학이란 원고지에 펜으로 정성들여 한 글자씩 써야 한다는 것이다. '숙련된 이탈리아 장인이 한땀한땀 바느질한...' 이란 시크릿 가든의 우스갯 대사가 생각한다.

그렇다면 서양은 양피지에 깃털펜으로라도 써야 문학일까? 천만에! '무기여 잘있어라.'로 유명한 노벨상 작가 헤밍웨이는 모든 작품을 타이프라이터로 썼다. 그의 작품은 기계로 썼으니 문학이 아닌가? 틀림없는 문학이다. 그럼 타이프라이터와 워드프로세서는 대체 뭔 차이가 있단 말인가? 수단이 내용보다 중요하다는 인식에 나는 단호히 반대한다.

전자책을 놓고 벌이는 어리석은 문학성 논란은?



문제는 이런 기술발전을 부정하는 예술계의 인식이 아주 뿌리깊은 것이란 사실이다. 내가 작가활동을 시작했을 때인 97년 경에도 PC통신을 통해 종이책을 출간하고 작가가 되는 사람이 많아지자, 문학계에서는 PC통신을 통한 글은 문학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이 나왔었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전부 문학으로 인정하고 작가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번에는 종이책이 전자책으로 대체되려고 하자, 전자책을 놓고 똑같은 어리석은 논쟁이 되풀이될 참이다.

대체 문학이란 무엇일까? 작가란 문학작품을 만드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니 문학의 정의만 제대로 내리면 이런 논쟁은 없어질 듯 싶다. 문학은 글자란 최종표현 수단으로 전달하는 모든 예술적 작품을 말한다. 글자이기만 하다면 그게 컴퓨터를 통하든 핸드폰을 통하든 종이를 통하든 아무 상관도 없다. 벽에 프로젝터로 비춰서 만든다해도 괜찮다. 요컨대 글자로 감동을 전할 수 있으면 된다.



따라서 종이책이 아니더라도 전자책을 출간하게 되면 그 사람은 작가다. 초등학생이 작가가 될 수 있고 장애인도 작가가 쉽게 될 수 있는 세상이 오게 된다. 전자책이 출간이라는 기존의 어려운 벽 하나를 허물었기 때문이다. 미래에는 종이책이 퇴조하고 전자책이 주류가 될 것이 확실시된다. 그런 가운데 전자책 작가는 편집부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작가로 보기 힘들다는 인식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학이란 단어 자체를 끌어안고 싶다는 독점욕의 표현일 뿐이다.

다만 모두가 문학이고 작가이더라도 여전히 '좋은 문학'이나 '좋은 작가' , '수준 낮은 문학' 과 '수준 낮은 작가'의 구별은 존재한다. 아니, 더욱 강해진다. 기존에 출판사 편집부가 해왔던 선별을 이제는 독자가 직접 하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보다 읽을 만하고 감동적인 글을 읽을 기회와 함께 수준낮은 글을 솎아내고 퇴출해야 하는 의무도 독자에게 주어졌다.



기술발전은 종래 예술가들이나 자본력 있는 사람들이 독점했던 영역을 점점 우리에게 개방하고 있다. 디지탈 카메라의 보급과 함께 프로 사진가들이 위협을 느끼고 있으며, 동영상 편집툴과 촬영수단의 대중화는 영상 감독들에게 보다 높은 발전을 요구한다.

마찬가지로 전자책을 통한 아마추어 작가들의 대량진입은 어떨까. 전문적이고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프로 작가들의 더 확실한 발전을 요구하고 있다. 실력 이외의 어떤 형식도 지위를 보장해주지 않게 되는 전자책 시대, 진정한 문학이 무엇인지 더 치열하게 보여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