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많은 곳에서 우리는 이른바 '하이브리드' 기술을 보게 된다. 하이브리드란 결국 일종의 '짬뽕기술' 이다. 어떤 기술이 특별히 한 가지 만으로는 충분한 효과를 보지 못할 때 다른 가술을 함께 병용해서 원하는 효과를 이끌어내기 위함이다.


대표적인 하이브리드 기술로는 전기, 개솔린 하이브리드 차량이 있다. 전기차는 주행거리가 충분하지 않고, 출력이 강하지 못한 단점이 있다. 반면 개솔린 차량은 기름 소비가 심한 단점이 있다. 이에 전기로 움직이지만 경우에 따라 개솔린(휘발유) 엔진을 함께 써서 주행거리와 출력을 늘리는 것이다. 일본 도요타의 프리우스는 매우 호평을 받은 하이브리드 차량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굳이 자동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스마트폰과 태블릿, 전자책 단말기에서 현재 쓰고 있는 디스플레이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특히 전자책 시장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애플의 아이패드와 아마존의 킨들 사이에는 양쪽 방식의 장단점을 놓고 미래의 주도권을 경쟁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내년에 나올 아이패드의 디스플레이가 하이브리드 방식을 취할 지도 모른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것은 매우 흥미있는 소식이다.(출처)



아이패드2가 공개된지 한달도 지나지 않아 아이패드3 디스플레이 방식에 대한 추측이 제기됐다. 최근 애플이 획득한 특허에 따라 차세대 아이패드에서 보다 편안하게 전자책을 읽을 수 있게 e잉크와 LCD 스크린을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쓴다는 내용이다.

씨 넷영국은 애플인사이더를 인용해 이같이 전하며, 애플이 전자책 디스플레이(Electronic Paper Display)와 비디오 디스플레이(Video Display) 방식을 바꾸어 쓸 수 있는 방법과 시스템에 관한 특허를 받았다고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기술은 버튼을 터치하면 LCD에서 e잉크 모드로 변환한다는 것이 골자다. 아이패드3가 이 방식을 채택하게 되면 전자책을 읽을 때는 e잉크 모드로, 사진이나 영화를 감상하고 게임을 할 때는 LCD(또는 OLED) 모드로 사용할 수 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아주 간단히 전자잉크 방식과 LCD방식을 전환해가며 쓸 수 있다는 뜻이다. 참으로 신기하고도 편리한 기술임에 분명하다. 그렇다면 과연 전자잉크와 LCD방식은 왜 어느 쪽이 이기지 못하고 이렇게 하이브리드 방식까지 나오게 하는 걸까?

전자잉크 스크린은 마치 종이에 잉크로 쓴 것처럼 배경 조명이 필요 없고 빛 반사가 뛰어나다. 자연스럽게 눈의 피로가 덜하며 전력소모도 매우 적다. 매번 신호를 갱신해줄 필요도 없이 한번 바꿔주면 전원을 꺼도 표시된 내용은 그대로 남는다.

그러나 반대로 전자잉크는 화면이 빠르게 전환되는 데 한계가 있고 잔상이 남는다. 고해상도로 만드는 데도 약간의 한계가 있으며 무엇보다 컬러 전자잉크 스크린은 제작비가 높아 단가를 맞추기 힘들다. 그러기에 아이패드는 전자책 역할을 중시하고 있음에도 LCD 방식으로 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전자잉크와 LCD를 버튼 하나로 전환할 수 있는 기술이 나왔고 그것을 차세대 아이패드에 채택한다니 기대되는 게 사실이다.



아이패드3, 전자잉크 변환 모드의 의미는?

전자책 단말기는 점점 싸지고 있다. 아마존의 킨들은 이제 광고를 보는 조건으로 114달러까지 가격을 낮췄다. 모두가 아이패드와 각종 태블릿 때문이다. 다목적 단말기에 맞춰 단 한가지에만 특화된 단말기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량 소형화와 함께 저가격을 유지해야만 한다. 더구나 결정적 이점이자 보호벽이 바로 전자잉크였다. 다목적 단말기는 반응속도 때문에 절대로 전자잉크를 쓰지 못했다. 눈이 편한 전자잉크야 말로 전자책 전용 단말기의 최대 매력이다.

그런데 만일 아이패드3가 정말 전자잉크와 기존의 LCD를 단번에 전환해가며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쓸 수 있다면 아마존의 킨들을 비롯한 각 전자책 단말기는 어떻게 될까? 특유의 이점은 전부 잃어버린 채로 오로지 그저 싼 단말기라는 점 밖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아이패드3를 가지지 못한 사람이나 가질 예정이 없는 사람들만을 위해 파는 제품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더구나 저런 디스플레이 부품이 실용화된다면 그게 굳이 아이패드에만 독점으로 들어갈 리도 없다. 다른 경쟁 안드로이드 태블릿에도 채택될 것이다. 태블릿이 있는 사람은 전자책 단말기가 전혀 필요 없어지는 미래가 오는 것이다.

물론 역발상도 가능하다. 마음만 먹으면 전자책 단말기나 킨들도 이 디스플레이를 채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태블릿을 향해 역공을 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마도 부품 단가가 문제가 될 것이다. 신기술이 들어간 데다가 갓 생산되기 시작한 부품이라면 단가도 비쌀 게 분명하다.

보유 현금도 많고 초기 주문량도 어마어마한 애플은 낮은 단가로 공급받아서 어느 정도의 비싼 가격에 팔아도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전자책 단말기 업체는 다르다. 같은 부품도 비싸게 사야하는 데다가 전자책 단말기를 굳이 고가에 살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애플 같이 매력적인 운영체제나 앱생태계도 없다. 단지 아마존은 이미보유한 수많은 전자책 컨텐츠만이 경쟁력이다. 승부가 뻔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거의 아이패드가 이긴다.


다만 의심은 남아있다. 전자잉크의 특성과 LCD의 특성이 매우 다른데 과연 하이브리드로 버튼 하나로 전환되는 부품이 쉽게 나올 수 있을까? 또한 나온다고 해도 바로 내년에 경제성과 대량생산성을 가질 만큼 안정화된 상태일까? 가능하다고 해도 부품 공급 단가가 매우 비쌀 수도 있다. 즉 난관이 많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일단 애플이 특허만 내놓은 상태인지도 모른다. 이럴 경우 당분간 전자책 단말기 가운데 아마존의 킨들은 여전히 잘 팔릴 것이다.

어쨌든 기술이란 종종 이렇게 재미있는 형태로 우리의 고민을 해결해줄 수도 있다. 어느쪽도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하나로 그 둘을 다 써보면 어떨까? 매우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