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소설 가운데 99년 출간작인 '일본정벌기'란 작품이 있다. 충무공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죽지 않고 살아서는 선조 명을 받고 비밀리에 일본을 정벌한다는 내용이다. 실제 역사는 아니지만 완전히 허무맹랑한 거짓말은 아니다. 이순신이 살아서 은거했다는 일부 학설과 임진왜란 후 조선이 도리어 일본까지 쳐들어가서 왜왕의 항복을 받았다는 민간소설 '임진록'을 근거로 해서 쓴 '가상역사소설'이다.



이렇듯 우리는 가끔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 대해 흥미로운 상상을 해보곤 한다. 마치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듯이 말이다. 거창하게 인류의 역사까지 들먹일 필요 없이 학창시절에 좋아하지만 말도 제대로 못붙여보던 그 여자애에게 제대로 데이트를 한번 신청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상상은 누구나 한번쯤 해볼 것이다.

오늘 내가 다뤄볼 내용은 애플의 미래를 둘러싼 흥미로운 상상이다. 그러니까 실현 가능성이 백프로에 가까운 것도 아니고, 다소의 과장이나 개인적 추측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하는게 재미있다.

얼마전 잡스가 병가로 회사를 쉴 때 많은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일부에서는 시한부 설도 제기했고 나도 잡스가 어떻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또한 아이패드2에서의 건강한 모습을 보고 안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쨌든 잡스의 건강이 안좋은 건 사실이며 애플이 앞으로도 든든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잡스의 후계자로 기반을 가지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에 내가 포스팅 한 적도 있지만 잡스의 일순위 후계자는 관리형 CEO로는 최고인 팀쿡이다. 생산관리와 물류관리에 재능이 있기에 애플이 계속 질좋은 물건을 내놓을 수 있다는 믿음은 든다.



그러나 그 즈음에 나온 몇 가지 뉴스가 약간 의아하게 만든다. 애플의 수석 디자이너인 조나던 아이브가 애플을 떠나려 한다는 뉴스가 첫번째였고, 두번째는 조나던 아이브가 애플의 CEO 자리를 바란다는 뉴스였다. 둘 다 일단은 루머지만 이 엇갈린 뉴스 두 개가 의미하는 바는 의외로 크다.


나는 농담삼아 '결국 조나던 아이브는 자기가 애플 차기 CEO 가 되지 못하면 회사를 나가겠다는 거네?' 라고 주위사람에게 말해보았다. 그런데 사실은 바로 이게 문제다. 만일 잡스 이후 팀쿡이 최고정점에 선 애플이 생기면 수석 디자이너로서의 아이브의 입지는 좁아진다. 잡스는 관리자도 디자이너도 아닌 상위에서 두 사람을 통솔할 수 있어다. 그러나 팀쿡은 유능한 관리자일 뿐이고 조나던 아이브의 자존심이 그 밑에서 일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조나던 아이브가 위에 서면? 이번엔 팀쿡이 그 밑에서 일하기 싫어할 것이다. 애플은 좋든 나쁘든 각분야의 천재인 소위 '잘난 사람'만 모여있다. 확고한 업적과 카리스마를 지난 사람이 아니라면 그들을 성공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 스티브 잡스는 유일하게 그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면 대체 애플에게는 미래가 있는가? 나는 여기서 문득 최근 뉴스 하나를 끄집어내 본다. 바로 잡스와 함께 애플을 창립한 스티브 워즈니악에 관한 뉴스다.(출처)



스티브 워즈니악이 애플에 돌아갈 의향을 밝혔다.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 애플 CEO가 병가 중인데다, 후계자 문제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라 주목된다.

美씨넷은 8일(현지시간) 워즈니악이 "만약 (애플측으로부터) 요청이 온다면 돌아갈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말했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애플이 닫힌 생태계의 폐쇄성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그는 "애플이 조금 더 개방해도 판매량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며 "그들이 애플을 위해서 옳은 결정을 할 것이라고 확신하다"고 말했다.

이 뉴스를 보면서 문득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애플, 잡스의 후계자로 워즈니악은 어떨까?

지금 애플의 양대 축이라고 볼 수 있는 팀쿡과 조나던 아이브는 어느쪽도 상대 아래서 일할 생각이 없을 것이다. 둘다 능력도 있고, 야심도 있다. 더구나 분야가 다르다. 사실 스티브 잡스 정도의 업적과 명성이 아니면 이 둘을 조화롭게 일시키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스티브 워즈니악이라면? 워즈니악은 잡스에 비해 인격적인 면에서 훨씬 훌륭할 뿐 아니라 기술적인 능력이나 업적도 상당하다. 사람들은 단순히 그가 애플2 만 만들고 전혀 애플에 공헌하지 않은 걸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매킨토시에 들어가는 여러 부품과 규격에 적지않게 공헌했다. 다만 잡스처럼 앞에 나서길 좋아하지 않고 겸손하기에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물론 워즈니악에게는 잡스같은 마케팅 , 프리젠테이션 능력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는 야심많고 능력있는 애플의 인재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업적과 명성이 있다. 잡스는 애플 그 자체지만, 워즈니악도 애플의 커다란 한 부분이다. 잡스가 없는 애플에서 워즈니악은 자연스럽게 구심점이 될 수 있다. 이번에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 것도 그런 맥락이 아닐까?

더구나 워즈니악이 아무런 생각이 없거나 애플에 애정이 없는 게 아니다. 그는 초기 해커로서 아직도 기술과 미래에 대한 나름의 비전을 가지고 있다. 기사의 나머지를 보자.

워즈니악이 애플의 폐쇄성을 지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지난해 연말 네덜란드 언론과 인터뷰에서 "윈도가 결국 PC 세계를 지배한 것처럼 구글 운영체제(OS)가 경쟁에서 이길 것 같다"며 "결국 아이폰이 아닌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이날 로이터와 인터뷰에서도 유사한 취지의 발언을 이어갔다. 콘텐츠 구매와 소비 면에서 애플 제품이 뛰어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사랑을 받고 있지만, 닫힌 생태계(시스템)은 소비자 뿐만 아니라 미디어, 소프트웨어(SW) 개발자 등 구성원들을 애플의 아이튠스 온라인 스토어와 iOS 체제 안에 가두어 두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워즈니악이 지휘하는 애플은 아마도 보다 개방된 운영체제로서 기술적인 요소가 더 강해지게 될 것이다. 동시에 지금보다 공개된 표준기술을 더 많이 수용하게 될 것 같다. 과연 그런 미래의 애플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가슴이 두근거리는 건 사실이다.


과연 애플2를 전부 설계하고 만든 워즈니악이 주도해서 만드는 미래 아이폰과 아이패드, 매킨토시는 어떤 형태가 될까? 기대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