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와 시장경제 제도가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어떤 것에도 항상 부작용이 있다.때로는 과열된 경쟁이나 왜곡된 시장이 더 좋은 기회나 발전의 여지를 없애고 모두에게 피해를 입히는 나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 경제 대공황과 이어진 전쟁은 모두가 지나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제도의 잘못 때문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종이로 만든 책이 유통되는 현재의 도서시장과 인터넷을 이용해서 책을 사고 파는 온라인 서점시장, 나아가서 아예 디지털 파일로 변한 전자책을 거래하는 전자책 시장은 각자 시장특성과 장단점이 다르다. 따라서 이들은 상호보완 관계면서 동시에 경쟁관계다. 책을 사서 보는 수요는 파격적으로 늘지 않지만 이들은 그 한정된 수요를 갈라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책 내용을 종이책으로 이미 구입한 사람이 전자책을 일부러 따로 구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그럴까. 한국정부의 규제는 이런 한정된 수요를 가지고 어떻게든 관련산업을 지키는 데만 머물러있다. 이번에 새로 나온 뉴스에 의하면 정부는 곧 전자책에도 '도서정가제'를 추진할 모양이다. 관련뉴스는 다음과 같다. (출처)


4월 6일 문화체육관광부의 조상준 사무관은 <디지털데일리>와의 전화통화에서 “지난해부터 도서정가제를 전자책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이하 출판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이제 입법 절차만 밟으면 된다”라며 “입법 방식은 의원입법을 할 것으로 검토하고 있는데, 최대한 빨리 진행해 이달 중 입법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도서정가제는 오프라인·온라인 서점들이 출판사가 정한 도서의 가격보다 싸게 팔 수 없도록 정부가 강제하는 제도다. 현행법상으로 전자책은 ‘간행물’로 취급돼 도서정가제의 적용대상이었으나, 시장의 확대를 위해 적용을 보류해왔다.

문화부는 지난해 전자책의 도서정가제 적용 방안에 대한 협의체(TF)를 구성했으며 TF에는 출판·유통·학계 등 전문가와 문화부 담당자 등 총 9인이 참여했다.

출판법 개정안의 주된 골자는 ‘전자책도 종이책과 동일하게 도서정가제를 적용한다’이다. 출판법 개정안이 입법되면 최근 인터넷서점들이 시행하는 ‘전자책 50% 할인’, ‘종이책을 구입할 경우 전자책 무료 증정’ 등의 프로모션이 금지된다.

조 사무관은 “다만 전자책과 종이책은 특성이 상이하기 때문에 종이책보다는 도서정가제가 완화돼 적용될 예정”이라며 “특히 구간(출간된지 18개월이 지난)을 전자책으로 다시 출판한 경우에는 도서정가제를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라고 전했다.


단서 조항이 있긴 하지만 일단 전자책의 가격을 종이책보다 파격적으로 싸게 하는 것을 금지한다. 다만 옛날에 이미 나온 책의 경우에만 예외로 하게 될 듯 싶다. 이 뉴스에 이미 상당수의 블로거와 네티즌들이 아직 제대로 성장하지도 못한 전자책의 성장을 막는 것이 아닌가 우려했다. 일부는 상당히 격렬하게 정부와 관련부서를성토하기도 했다.


나 역시 처음 들었을 때는 정말 어리석은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전자책이란 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가 따르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성급히 가격부터 제한하고 보자는 행정편의주의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 땜문이다. 이후 다시 나온 뉴스는 이런 반발과 의견 때문인지 도서정가제의 적용범위와 시기에 대해 좀더 논의가 된다고 전한다.(출처)

문화부 관계자는 “전자책 시장이 점차 성장함에 따라 도서정가제 등 관련 법규의 적용 범위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며 “업계 실무자들이 모여 전자책에 도서정가제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논의하기 위해 TF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문화부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전자책에 도서정가제를 적용하는 것이 맞다”면서도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해 바로 단속에 나서기보다 산업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는 게 우선인 만큼 업계의 의견을 두루 모아 합리적인 안을 도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사안이라는 뜻이다. 이 뉴스를 접하면서 문득 단순히 피상적인 비판이 문제가 아니라, 좀더 본질적인 생각을 해보고 싶었다. 과연 도서정가제는 왜 있으며 전자책과는 어떤 관계를 가지는 것일까?

전자책과 도서정가제, 그 속에 숨겨진 의미는?


위에서도 말했지만 도서정가제는 새로 나온 신간도서-종이책을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일정 이하로 싸게 팔지 못하게 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 제도가 본래 만들어진 이유는 인터넷 서점 때문이었다.

도서의 유통과정에 따르면 보통 책은 대형서점 등에 50퍼센트의 가격으로 들어간다. 책이 팔리면 서점이 50프로를 이윤으로 가져가고, 운송이나 제작에 30퍼센트 정도가 들어가며, 출판사가 20프로, 작가가 10프로 정도를 가져간다고 한다.(이 숫자는 다소 변동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진열이나 점포임대비가 필요없는 인터넷 서점들이 새 책을 오프라인 서점 보다 훨씬 싸게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위기를 느낀 대형 서점들이 정부에 요청해서 만들어진 것이 도서정가제이다. 따라서 이 제도의 주요목적은 단 하나다. 교보문고를 위시한 국내 대형 오프라인 서점을 보호해주기 위한 것이다. 나름의 문화공간과 상권의 역할을 하는 이 서점을 위해 시장기능을 제한해버린 조치다.

이 조치가 과연 옳은가하는 점은 제쳐두자. 어쨌든 이 조치로 인해 인터넷 서점들과의 경쟁에서 대형서점들은 나름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런데 겨우 한고비 넘긴 이들에게 이번에는 국경을 넘어 형체조차 없이 거래되는 전자책이란 매체가 태블릿과 스마트폰을 타고 등장했다.


이번에는 제작비와 출판사 비용조차 없이 작가가 자비로 낼 수 있으니 이론상으로는 90퍼센트 할인까지도 가능하다. 1만원 짜리 책을 권당 1천원에 팔아도 된다. 마켓에 주는 30프로를 제하더라도 1천 4백원에만 팔아도 예전에 책 한권 만큼 수입이 들어온다. 이러니 경쟁이 안되고 따라서 다시 도서정가제가 등장한 것이다.

도서정가제와 전자책에 숨겨진 의미는 '가격파괴로부터 경쟁력이 떨어지는 대형서점' 을 문화공간으로서 이윤을 유지시키고 살려두자는 데 있다. '파격적인 가격을 내세울 수 있는 전자책' 으로 부터 말이다. 어차피 시대가 전자책으로 간다는 걸 정부관계자라고 모를 리 없다.

종이책을 직접 보고 고르며 살 수 있는 클래식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면 나름 도서정가제는 필요악이다. 반면 그런 건 다 쓸데없는 비효율이며, 소비자는 싼 물건을 적시에 공급받을 공급받을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도서정가제는 악법이 될 것이다. 당신은 어느쪽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