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사회는 방송과 각종 매체가 매우 발달했다. 사람들이 그만큼 보고 읽고 들을 수 있는 것들이 풍부해졌다는 의미다. 그런데 사회는 점점 더 여유시간이 없어지고 있다. 경쟁은 격화되고 더 열심히 일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고, 돈은 벌기 더 어렵다. 그에 비해 예나 지금이나 하루는 24시간에서 조금도 늘어나지 않았다.


활기차게 시작해서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달려온 지상파DMB도 마찬가지다.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혹은 길을 걸어가면서, 차를 운전하면서 깨끗한 디지탈 음악을 듣고 텔레비전을 시청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매력적인가? 따라서 방송을 시작하기만 하면 엄청난 사람ㅈ들이 볼 것이고 따라서 광고수입만으로도 충분히 운영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사람의 이동시간은 보통 그렇게 길지 않다. 더구나 그 이동시간에 접할 수 있는 매체도 지하철 무가지에서 책, 휴대폰 인터넷, 휴대용 게임기, 동영상 플레이어에 이제는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이용한 전자책과 앱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많다.

결국 사람들의 한정된 여가시간을 누가 조금이라도 더 잡아먹으며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가 하는 경쟁으로 이어진다. 제품의 시장점유율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시간점유율'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적자를 면치 못하며 생존의 위기를 맞고 있는 지상파 DMB의 위기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아마도 매체가 발전하지 못했던 20년 전에만 나왔어도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을 지 모른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 지상파DMB는 단지 여러 매체 가운데 하나로서 게임이나 인터넷에 비해 별반 매력적이지도 않다.

그나마 지상파DMB는 여태까지 무료로 제공되었다. 그것이 이제는 광고수입으로는 설비비조차 감당하지 못하게 된 경영난으로 바뀌게 될 것 같다. (출처)

방송계와 이동통신 업계에 따르면 방송통신위원회는 누적적자 규모가 832억원에 달할 정도로 경영이 악화된 지상파DMB 사업자를 살리기 위해 지상파DMB를 유료화한다는 정책지원방안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방통위는 현재 지상파DMB 이용자에게 별도의 비용을 받고 방송을 시청할 수 있도록 하거나 지상파DMB 단말기 가격에 미리 일정액을 포함시켜 판매하는 방식 등 유료화 방안을 적극 논의 중이다.

방통위는 "지상파DMB는 모바일TV 기술로는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기술이고, 국내에 이미 4000여만명의 이용자가 있는데 서비스를 중단하도록 하기는 어렵다"며 유료방송 전환정책의 배경을 설명했다.


어쩌면 논의여하에 따라 앞으로 우리는 지상파DMB 기능이 있는 휴대폰이나 각종 단말기를 샀어도 돈을 내지 않으면 방송을 전혀 볼 수 없는 사태를 맞을 지도 모른다. 어차피 모든 걸 단지 자본주의적 논리로 해결한다면 그 길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더구나 요즘은 물소비가 많아지면 '물값이 싸서 그렇다' 라고 하고 겨울철에 전기소비가 많아지면 '전기요금이 싸서 그렇다.' 라며 모든 걸 시장논리에 맡기자는 코미디같은 정책이 유행이다. 지상파DMB도 적자라면 '요금이 무료라서' 그런 것이니 돈을 받으면 그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다른 논의도 있다. 이번 일본 지진과 쓰나미 사태때에 기존의 경보매체들이 제기능을 못한 것을 교훈 삼자는 것이다. 옛날에는 사이렌이 울리고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통해 방송만 내보내도 되었다. 그러나 다매체 시대를 맞아 이제는 사이렌은 소음때문에 크게 울리지 못한다. 지하철이나 터널과 방음시설이 잘된 빌딩이 많아 효과도 줄어들었다. 또한 티비나 라디오도 사람들이 이동중에는 잘 듣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잘 보급된 지상파DMB를 이용해 재난경보를 보내고 재난방송을 보내면 된다는 좋은 아이디어도 나왔다. 나는 이 의견에 찬성한다. 공짜이며 공공 목적이 있는 방송서비스가 이렇게 좋은 목적으로 쓰인다면 충분히 효과도 명분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위의 뉴스는 이런 논의와는 전혀 동떨어진 정책이다. 재난을 위한 공공방송을 하려고 하는 목적인데 거기에 수신료를 받거나 미리 돈을 받을 수 있을까? 그건 마치 국가의 기능을 믿고 세금을 내는 국민들에게 소방서나 경찰서를 유지하기 위한 돈을 따로 걷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지만 이럴 수는 없다.

위기의 지상파DMB, 제대로 된 해법은?

지상파DMB 논의에서 아무래도 하나는 포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돈을 받는 유료모델로서 철저히 시장주의로 간다. 대신 재난방송 같은 건 포기하든가, 아니면 재난방송을 대비한 무료채널로 유지하면서 국가가 일정부분을 책임지는 시스템 말이다.

혹자는 유료로 가면서 일부 채널만 공짜로 가는 절충안은 어쩌냐고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미 유료로 컨셉을 잡을 때부터 사람들은 지상파DMB 자체를 철저히 상업방송으로 인식하게 되며 정말 필요한 사람이 아니면 가입이나 설치, 수신 자체를 기피하게 될 것이 뻔하다. 그런 곳에 재미없는 컨텐츠만 방영할 게 뻔한 채널을 일부러 넣어봤자 얼마나 보겠는가? 지금도 인기없는 데 말이다.


결국 제대로 된 해법은 지상파DMB를 재난이나 비상시를 위한 국민방송시스템으로 정비하고 보급시키는 일이다. 지금 어차피 자본주의적인 이윤추구 미디어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공익을 위한 제대로 된 미디어를 흔치 않다. 생활속의 여러 자잘한 정보를 알뜰하게 제공해주면서 즐거움도 준다는 컨셉으로 운영하다가, 홍수나 태풍, 지진 등의 사고 때 재산과 생명을 지켜주는 용도는 어떨까? 이런 지상파DMB라면 모두가 하루에 단 얼마라도 주의깊게 시청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