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얼마후 애플이 새로운 아이패드2를 내놓을 예정이다. 늘 전세계 사용자를 설레게 하고, 타오르는 듯한 구매욕구를 일으키는 애플의 제품발표가 기다리고 있다. 소식에 따르면 이번에는 아마 스티브 잡스가 건강문제로 인해 직접 발표하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발표가 아이패드를 비롯해 IT기기의 발전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은 틀림없다. 이런 의미에서 애플이 이제까지 펼쳐온 마케팅과 광고전략을 살펴보는 것도 좋은 의미가 될 것이다.


알다시피 미국은 자본주의의 나라다. 모든 것이 엄청난 규모의 돈으로 시작되고 전개되며 끝난다. 얼핏 봐서는 별 것 아닌 듯한 광고나 대충 만든 듯한 광고 하나에도 특유의 매력이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그런 효과를 내기위해 광고업계 천재들이 투입한 노력이 숨어있다. 그 노력 뒤에는 또한 엄청난 돈이 후광처럼 빛나고 있고 말이다.

애플은 미국 산업계의 전설로서 교과서에까지 실린 기업이다. 8비트 개인용 컴퓨터엣 시작해 16비트, 32비트 컴퓨터를 거치도록 유행을 만들었고, 살아남았다. 또한 아이팟과 아이폰, 아이패드로 다시 거대한 변혁을 일으켰다. 지금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가치가 높은 기업이기도 하다.

애플은 애초에 거의 가진 것이 없이 시작했다. 다른 대기업에서 갈라져 나온 것도 아니고, 백만장자가 다시 자본금을 투입해서 만든 기업도 아니다. 스티브 워즈니악이란 해커와 스티브 잡스란 야심찬 히피청년이 차고에서 조립하던 컴퓨터 작업장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애플2 컴퓨터가 히트하면서 일약 주목받는 존재로 떠올랐고, 얼마후 1위 업체가 되기에 이르렀다. 여기까지는 그야말로 제대로 된 경쟁이 없다시피 했다.



그러나 IBM이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뛰어들면서 문제가 달라졌다. 비유하자면 마치 중학교 야구를 평정한 팀이 일약 메이저리그 최강팀인 양키스를 맞아 싸워야하는 듯한 엄청난 상황에 처했다. 그렇지만 애플에게는 패기가 있었고 자신감에 넘쳤다. 이때 애플이 처음낸 대대적인 광고는 '환영합니다, IBM. 진심으로.' 라는 긍정적인 문구였다.

사실 긍정적이라고는 해도 다소 건방진 문구일 수도 있다. 우스갯소리로 회자되어던 한때의 문희준 개그를 예로 들어보자. 갓 락음악을 시작한 문희준이 신곡을 낸 들국화의 전인권씨에게 '환영합니다. 함께 한국 락 음악계를 이끌어나갑시다.' 라고 하는 말과도 비슷하다. (물론 이 일화는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애플이 개인용 컴퓨터에서 다소 업적이 있다고 해도, 아예 진공관 컴퓨터부터 중대형 컴퓨터에까지 넓은 업적을 이룩한 IBM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애플의 대외홍보와 마케팅을 맡은 스티브 잡스는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애플이 풋내기에 불과하다는 것과 IBM이 너무도 거물이라는 것 말이다. 그러나 어느새 16비트 시장을 거의 빼앗기고 리사와 애플3도 실패한 애플이었다. IBM을 상대로 싸우지 못하면 한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



여기서 바로 광고계의 걸작이라는 애플의 '1984' 광고가 등장하게 된다.

조지오웰의 동명 소설을 배경으로 한 이 광고는 음습한 수용소 같은 곳에서 한 명의 독재자가 스크린 속에서 연설한다. 좀더 빠르고 강한 어떤 것을 역설하는 이 독재자 앞에는 죄수복 같은 것을 입은 생기없는 사람들이 앉아있다. 이들은 은유적으로 IBM과 그 호환기종, 그것을 쓰면서 개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상징한다.

갑자기 건강한 금발 미인이 뛰어든다. 경비병의 제지를 뿌리치며 돌진한 그녀는 곧 해머를 던져 독재자의 스크린을 부숴버린다. 부서지는 스크린과 함께 화면에는 애플이 어떻게 다른 1984년을 만드는지 보여주겠다는 문구가 뜬다. 이 여자는 애플과 신제품을 상징한다. 애플이 표준화된 IBM컴퓨터의 독재를 깨뜨리고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겠다는 메시지다.

이 해의 광고상을 죄다 휩쓴 유명한 광고였다. 충격적이고도 화려한 영상도 좋지만 마무리 멘트를 제외하고 여기에는 특별히 어떤 회사이름도, 제품명도 등장하지 않았다. 심지어 컴퓨터를 연상케 하는 어떤 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이 광고가 의미하는 이미지는 너무도 분명하다. 거대한 독재자와 이에 항거하는 애플이란 이미지다. 하나는 악이고 하나는 선이다.



애플의 독특한 광고전략, 시작은 어떤 것일까?

유명한 영화감독 리들리 스콧이 맡은 이 광고는 IBM을 상대하는 애플의 이후 마케팅 전략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사실 이것은 교묘한 상업적 왜곡과 비교 프레임일뿐 진실이 아니다. 말하자면 70, 80년대 세계를 지배한 반공 이데올로기와도 비슷하다. 좀더 극단적으로 비유하면 어린 시절 내가 본 반공만화 '똘이장군'이 고급화한 형태에 불과하다.

IBM은 위대한 회사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더욱 위대했다. 모든 컴퓨터의 발전역사에 관여했고 기술적 진보를 이뤄냈다. IBM이 진보시킨 기반기술이 없었다면 아마 애플의 8비트 컴퓨터도 없었을 것이다. 또한 16비트에서도 더 빠른 칩을 채용한 사무자동화와 표준화로 인한 기업용 컴퓨터 확산이란 점에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업적이 있다. 그런데 이런 IBM을 단지 죄수를 잡고 최면을 걸고 있는 독재자로 비유한 것이다. 또한 표준화의 혜택으로 좋은 성능의 컴퓨터를 싸게 이용하는 사람들을 무엇엔가 홀린 죄수로 비유했다.



또한 애플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해방자가 아니다. 물론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와 마우스, 사용 편의성이 좋은 매킨토시는 혁신적이고 좋은 제품이다. 하지만 2천달러가 넘는 고가를 요구한다. 또한 확장슬롯이 하나도 없고 개발 초기의 버그도 안고 있다. 세상에 어떤 해방자가 이렇단 말인가?

결국 이것은 광고와 마케팅 전략이다. 이 광고를 부탁한 애플이나 만든 제작사 샤이엇데이는 상대인 IBM이 어떤 회사인지 잘 알고 있다. IBM은 너무도 강한 회사인데다가 훗날 MS처럼 무슨 독과점 비리가 있는 것도 아니며, 모두에게 존경받는 회사다. 세세히 따지고 가면 도무지 흠잡을 데 없는 이 회사를 상대해서 어떻게든 애플의 신제품을 홍보하려면 이 방법이 가장 좋았던 것이다.

영화 스타워즈와 각종 디즈니 애니,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프레임은 강한 어둠의 독재자 제국이 세상을 덮은 가운데 이에 항거하는 밝고 명랑한 레지스탕스다. 1984의 광고에서 애플이 스스로에게 덮어씌운 이미지가 바로 이것이다.



처음부터 애플이 탄압받는 해방자를 자처한 건 아니었다. 내가 언급한 첫번째 애플광고를 다시 보자. '환영합니다, IBM, 진심으로.' 이 문구에 어디가 탄압받는 해방자인가? 이건 그냥 챔피언이 도전자더러 어서 링에 올라오라는 도발멘트다. 그러나 이 광고전략은 실패했다. 입장도 완전히 바뀌었다.

애플은 강한 척 하는 걸 그만뒀다. 1984의 광고가 성공한 후 애플은 줄곧 스스로에게 약자의 이미지를 덧씌우며 그러니가 소비자가 응원해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애플의 독특한 광고전략은 한마디로 규정할 수 있다. '부당하게 탄압받는 해방자가 되라.' 오늘날 아이폰과 아이패드 역시 구글과 MS를 향해 어떤 이미지 전략을 쓰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라. 많은 돈과 노력이 들어간 애플의 광고전략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