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변화하는 속도는 생각처럼 일정하지 않다. 때로는 21세기가 되어도 여전히 자동차는 하늘을 날지 못하고, 기적의 유전공학 농작물이 나오지 않는 것에 실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변화의 폭과 속도에 놀라며 거부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문학계의 일부 문인들은 아직도 원고지에 펜으로 쓴 것만이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일부 사진가들은 필름카메라야 말로 진정한 사진의 미학을 느낄 수 있는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디지탈화되어 가는 예술도구를 받아들일 준비가 덜 된 셈이다.



전자책 역시 마찬가지인지 모른다. 한편에서는 대체 전자책 이야기가 나온지 언제인데 아직 첫걸음이나 떼고 있냐며 한심하게 보기도 한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그래도 역시 종이가 나은데 꼭 전자책으로 가야되겠냐며 부정적인 시각을 취한다.

아이패드를 비롯한 태블릿, 그리고 전자책 단말기가 가야할 방향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분야로 교과서가 있다. 이건 매우 시급하고도 도움이 된다.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무거운 교과서와 참고서, 공책은 정말 고역이었다. 학교와 집을 오갈 때마다 이 책을 옮기느나 커다란 가방을 한짐씩 메고 다녔다. 사물함이 있더라도 교과서는 한권이고 집과 학교에서 봐야 하면 마찬가지다.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건 그 안의 내용이지, 수단인 종이뭉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별 수 없이 우리는 종이를 메는 지게꾼 신세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전자 교과서는 이런 모든 고민을 해결해준다. 무거운 교과서와 참고서가 가벼운 단말기 하나에 전부 들어간다. 심지어 공책도 필요없다. 태블릿 위에 직접 쓰면 되기 때문이다. 교과서를 잃어버릴 걱정도 없다. 실수로 파일이 지워지면 다시 전송받으면 그만이다. 결제도 앱스토어식으로 하면 꼭 그 자리에서 돈이 없어도 상관없다. 너무도 딱 맞는 해결수단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아이패드가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미국 학교에서 교과서로서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뉴스를 보자.(출처)

태블릿PC의 대표주자인 애플의 아이패드가 미국에서 교과서를 밀어내고 있다.

뉴욕타임즈는 4일(현지시간) 미국 학교에서 불고 있는 아이패드 열풍에 대해 심층 보도했다.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에 있는 로슬린 고등학교는 시범사업의 일환으로 지난해 12월20일 2개 학급 학생과 교사에게 교육용으로 아이패드 47대를 지급했다. 이 학교는 궁극적으로 1100명에 달하는 모든 학생에게 학습도구로 아이패드를 지급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들 아이패드는 개당 750달러이며 학기 중에 교실과 집에서 사용된다. 아이패드는 교과서를 대체한다. 학생들은 교사와 아이패드를 통해 소통한다. 숙제 검사도 아이패드로 하게 된다.

수업의 내용도 더욱 풍부해진다. 카프카에 대해 멀티미디어로 배우고 게임을 통해 역사를 배운다. 복잡한 수학 문제도 단계별로 애니메이션을 통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로슬린 고등학교 영어 교사인 래리 리프는 "아이패드는 교실을 확장해준다"며 "특히 학생들이 숙제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핑계를 없애준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과정 전체를 온라인에 올려놓고 있다.

아이패드는 평평하기 때문에 (PC에 비해) 학생과 교사가 마주 대하기 편하고 무엇보다 학생들이 많은 교과서를 가방에 넣고 다니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가볍게 등하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종이 소비를 상당히 줄이는 것도 장점으로 평가된다.



단순히 학교와 학생만 편한 게 아니다. 뉴스 마지막 부분에 나왔듯 종이소비를 줄인다. 따라서 나무를 쓰지 않아 환경보존에도 도움이 된다. 여러모로 편리한 수단인 셈이다. 아이패드는 전자 교과서로서 상당한 장점을 갖춘 기기다.

사실 스티브 잡스는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 교육에는 관심이 많았다. 한창 애플을 운영하느라 바쁠 때조차도 미국의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쳐야 한다는 필요성을 역설했다. 실제로 입기 싫어하는 양복을 입고 의회 연설을 준비하기도 했다. 모두가 학교에 컴퓨터를 보급해서 가르쳐야 한다는 스스로의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이 법안은 결국 무산되었지만 이후에도 잡스는 개인적으로 캠페인을 펼치며 무상으로 많은 미국 학교에 애플 컴퓨터를 기증했다. 지금 아이패드가 미국 학교에 교과서로 보급되는 걸 보면 나름 감개무량할 지도 모른다.



아이패드가 과연 교과서를 대체할 수 있을까?

아이패드는 표준화된 쉽고 가벼운 기기로서 충분히 교과서 역할을 할 수 있다. 배터리도 오래가고, 디자인도 멋있다. 앱과 웹 등에서의 활용성도 뛰어나고, 색감이나 나머지 기능도 훌륭하다. 단순한 교과서 뿐만 아니라 엄청난 창의력을 발휘해줄 도구다.

그러나 과연 이런 아이패드의 교과서용 보급에 장점만 있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의외로 많은 걸림돌이 있다. 대표적인 몇 개를 따져보자.

첫째로 가격문제가 있다. 아이패드가 싼 편이라고 하지만 교과서로서 1인 1대로 보급하기에는 나무 비싸다. 대학이 아닌 의무교육 과정에 투입될 기기로서 와이파이 버전으로 5백달러 남짓한 가격은 부담스럽다. 미국이라고 해도 개별 학교가 그런 충분한 예산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교육예산의 낭비라는 지적도 꽤 있다.

둘째로 전자잉크가 아니기에 오래 보았을 때 눈이 아프거나 시력저하를 초래할 수도 있다. 한창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에게 이런 눈 건강 문제는 꽤 중요하다. 나름 좋은 디스플레이를 쓰긴 했지만 종이처럼 눈이 편안하지는 못하기에 오래 보기에 무리가 있다.

세째로 현재 애플의 까다로운 AS정책만 놓고보면 교과서로서 내구성이나 활용성에 문제가 있다. 물에 약한 속성상 약간만 비를 맞거나 습기가 들어가면 금방 고장 나면서 침수라벨의 색깔이 변한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교과서로서 쓰기에는 이런 점들이 아쉽다.



물론 이 점들은 스티브 잡스와 애플이 결심한다면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는 문제다. 안드로이드 진영에서는 아직 쓸만한 태블릿조차 잘 만들어내지 못하는 중이다. 아이패드가 미국에서 의외로 빨리 교과서로 정착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한국도 정신차리고 빨리 따라가야 한다는 우려를 하게 된다 아이패드가 교과서를 대체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앞으로 차분히 그 전개를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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