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갑자기 모두가 전자책 시대를 말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역시 책은 종이책이지.'라고 말하던 평범한 독자부터, '전자책? 그거 돈 안되요.'라고 손사래를 치던 출판사 사장님까지 모두가 변화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각자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있겠지만 하여간 이제 기존 종이책 시장에 피할 수 없는 변화가 왔음은 분명하다.


이것은 한국만이 아니라 전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놀라운 변화다. 세계 최대의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서 전자책 단말기 킨들을 내놓았을 때부터 조금씩 불어온 변화였다. 마침내 애플이 전자책을 위한 본격적인 솔루션 <아이북스>와 연동된 아이패드를 내놓음으로 본격적인 단계에 접어들었다.

아마존과 애플의 결정적 차이점은 그 컨텐츠 전략에 있다.

아마존은 기존의 출판질서 위에서 그저 미디어 만을 전자책으로 옮기길 원한다. 그래서 비교적 차분한 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애플은 달랐다. 애플은 앱스토어와 마찬가지로 기존 작가와 출판사를 포함해서 글을 쓸 수 있는 모든 주체들에게 출판권을 부여했다. 애플은 단지 그 유통을 맡아주고는 수익을 70:30으로 나누자는 제안이었다.

즉 작가 1인출판사가 가능한 이 시스템은 기존 출판사의 모든 관행을 송두리채 흔들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특히 아직 후진적 시스템을 벗어나지 못한 한국 출판계는 충격과 공포에 휩싸여 다가올 변화에 대한 대처법을 고민하고 있다.


위기는 곧 기회다. 사실 이렇게 기존 체제가 흔들리는 건 수십년에 한 번이 있을까 말까한 일이다. 이런 가운데 변화에 적응하는 새로운 강자가 탄생하는가 하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존 업계의 공룡들이 사라지기도 한다.

이에 나는 아이패드가 가져올 놀라운 변화와 그에 따른 국내 출판계의 현명한 대처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아이패드로 인한 변화, 전자책 시대의 전략은?


1. 좋은 원고발굴과 그 프로모션(홍보)에 집중하라.

에전에는 단지 책을 내는 자체가 힘든 시기가 있었다. 연예인 지망생이 데뷔 시켜 주겠다는 유령기획사의 농간에 넘어갔다는 뉴스가 꽤 있다. 작가도 책을 내주겠다는 말에 속아 말도 안되는 계약조건과 형편없는 대우를 감수하기도 했다. 개인이 책을 내는 방법도 모를 뿐더러, 자비 출판이 너무 많은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또한 책을 찍어내도 효과적으로 서점 등에 유통하기도 힘들었다. 이 모든 노하우와 일련의 라인을 출판사가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플의 아이패드에 적용되는 아이북스는 전자책이기에 돈이 거의 들지 않는다. 유통도 애플이 책임지고 해결해준다. 이제 출판사가 출판수단 자체를 독점하는 시대는 끝났다.

그럼 이제 출판사의 차별성은 어디에 있을까?

초기에 좋은 원고를 발굴해서 그 원고의 가능성에 과감히 베팅하고, 기획사처럼 전자출간한 원고에 대해 다방면의 홍보와 마케팅을 해주는 방법이 있다. 전자책 시대가 와도 작가는 그저 작가일 뿐 스스로 마케팅과 자기 책 홍보까지 다 하는 건 불가능하다. 연예인을 성공시키는 것이 기획사의 능력이듯, 앞으로는 작가의 출간 자체보다는 출간된 작품의 프로모션을 얼마나 잘했느냐로 출판사의 수준이 평가받게 될 것이다.



2. 작가에 대한 투명하고 신속한 판매부수 공개와 회계처리를 하라.

기존에도 여러 전자책 출판사가 있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 회사들은 신뢰성에 문제가 있었다. 작가들이 가장 민감한 책 판매량과 인세 문제가 투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느 때부터 어떤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작가는 항상 출판사가 기회만 있으면 판매부수를 속이고 작가몫을 덜 주려 한다고 의심한다. 반면에 출판사는 작가가 현실도 모르면서 돈문제만 걸고 넘어진다고 불평한다.

애플은 이미 앱스토어와 아이튠즈 등을 통해 매우 공정하고 투명한 판매대금 집행 시스템을 구축했고 신뢰를 주었다. 이에 작가들은 전적으로 애플을 믿을 것이다.

국내 출판사도 이제는 작가에게 신뢰를 얻어야 한다. 솔직히 이미 이름이 파다하게 알려진 중견작가들이라면, 해주는 것도 없이 출판사가 전자출판을 제의하면 의도를 의심할 가능성이 높다. 스스로 그냥 1인출판을 해도 될 텐데 굳이 출판사를 거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출판사들은 중간에서 어쨌든 일정한 몫을 챙기려 할 것이다. 뭔가를 보여주고 가져가야 작가들이 납득하지 않을까? 투명한 판매부수 공개와 회계처리 시스템을 보여주지 않으면 작가 개인의 출판보다 나을 것이 없다.


3. 기존 종이책처럼 전자책을 만들려 하지 말라.

솔직히 나도 잠시 배워봤지만 기존의 종이책용 원고를 가지고 변환툴을 사용해 PDF나, 아이북스용 파일로 변환시키는 건 매우 쉽다. 컴맹 수준이 아니라면 단 30분 정도만 배우면 누구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작가의 원고를 받아가지고 성의없이 변환툴로 만들어 바로 아이북스에 올려서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돈을 벌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다.

작가들과 독자는 바보가 아니다. 변환법만 익히면 되는 그런 과정에 수수료를 주며 출판사를 통할려는 작가는 별로 없을 것이다. 하물며 전자책이라고 해서 잔뜩 기대하고 책값을 지불하며 다운로드했는데 아무런 변화도 없이 글만 읽으라는 원고면 독자도 그다지 끌리지 않을 것이다. 종이책처럼 소장하는 느낌도 없는데 말이다.

물론 전자잡지와 전자책은 약간 다른 특성이 있긴 하다. 세계적으로 아직은 종이책 같은 클래식 전자책도 잘 팔리고 있다. 그러나 매체의 특성을 잘 사용한 책이 장기적으로는 승리한다. 라디오에서 티비로 발전했는데 정지화면에 음성만 나오면 그게 잘 된 컨텐츠 일리는 없다.

요즘 아이패드의 전자책 가운데 가장 잘 팔리는 잡지 <Wired> 의 전자책 판본은 종이책과 다르다. 단지 그림이나 사진이 컬러라는 것 말고, 클릭하면 관련 비디오가 플레이 되기도 하고, 특정 단어를 터치하면 상세한 주석이 바로 뜬다. 인터액티브하게 사용자의 손가락 움직임에 따라 다양한 반응으로 즐거움을 준다. 바로 이런 제대로 된 전자책이어야 인기를 끌 수 있다.



4. 판매가와 각종 가격행사를 잘 이용하라.

전자책은 그 특성상 일반적인 정가가 잘 정해져 있지 않다. 종이책은 최소의 종이값과 인쇄비란 원가에 서점유통마진등 다양한 요소가 관련되어 있지만 전자책은 그런 제작과 유통비용이 적거나 없다.

따라서 전자책은 독자를 유인할 수 있는 매력적인 가격책정이나 각종 시한부 할인행사 등이 가능하다. 그런 특성을 잘 이해하고 판매책을 구상하지 않고, 종이책처럼 구태의연한 가격정책을 펼치면 성공할 수 없다.

종이책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마치 텔레비전이 있어도 라디오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전자책이 주류가 되는 시대는 성큼 다가오고 있다. 이런 추세에 발맞추어 기존의 패러다임과 고정관념을 혁신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 밖에 없다.


부디 작가와 독자, 그리고 출판사 등이 보다 현명하고 매력적인 전략을 통해 전자책 시장을 보다 발전시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