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서양>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이것은 영어식으로 하자면 오리엔트(동양)와 반대되는 개념에 가깝다. 중앙 아시아 정도를 기점으로 지구를 나눠 동쪽을 동양으로, 서쪽을 서양으로 구분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그 서양이란 개념속에는 너무도 차이나는 많은 것들이 들어있다. 하다못해 아직도 많은 세계인들이 극동 아시아라고 하면 닌자와 쿵푸, 게이샤, 태권도가 공통문화요소인줄 안다. 그러니 꽤 잘 만든 헐리우드 영화속에서 묘사되는 걸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예를 들어 중국인이 태권도를 하며 게이샤와 술을 마시고, 닌자를 지휘하는 그런 묘사도 있다. 각기 다른 문화와 사고를 모두 지역으로 뭉뚱그리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에게도 그런 면은 없는 걸까. 우리는 흔히 유럽과 미국을 잘 구분하지 않는다. 다 같은 서양일 뿐이니 사고방식이나 문화도 거의 비슷할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많은 차이가 난다. 특히 미국이란 나라는 비록 유럽에서 이주민들이 건너와 만든 나라지만 특유의 <양키문화> 가 있어 유럽인들이 진저리를 치기도 한다.

나는 첨단기술을 다루는 IT뉴스를 보면서도 때로는 그런 미국과 유럽의 방식차이를 실감할 때가 많다. 구글에 관련된 다음 뉴스를 한번 보자. (출처) 번역 : 최완기

구글이 지난주 실시했던 '크롬 기부 탭'의 기부 결과를 공개했다. 크롬 기부 탭은 애드온을 설치한 사용자가 탭 하나를 열 때마다 기부 하나가 추가되는 캠페인이었다.

기간동안 총 60,599,541개의 탭이 열렸으며, 이를 구글이 기부하는 100만 달러로 환산하면 각각의 분야에 다음과 같이 분배되었다.

브라질 아틀란틱 숲에 나무 심기 - $245,278. -> 245,278그루의 나무
개발 도상국에 물 제공 - $232,791. -> 11,640명의 물
라틴아메리카에 피난처 제공 - $112,078. -> 11,208 평방피트의 피난처
아프리카에 백신 제공 - $267,336. -> 106,934개의 백신
지역 작가들에 의한 아시아, 아프리카의 도서관 및 학교에 책 기부 - $142,518. -> 142,518권의 책



이 뉴스 하나만으로 보면 상당히 따뜻한 뉴스다. 글로벌 기업으로 많은 수익을 벌어들이는 구글이 어려운 나라를 위해 사용자와 함께 동참하는 기부 운동을 벌인 결과다. 구글이 미리 백만달러를 책정해놓으면 사용자의 클릭비율에 따라 분야에 나눠서 분배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기부를 보면서 느낀 위화감이 있다. 그것은 이전에 구글이 세금회피를 위해 아일랜드에서 버뮤다까지 경유하며 지능적으로 벌인 일련의 세금절감이다 이와 관련해서 이미 나는 글을 통해 문제점을 지적한바 있다.(구글, 세금을 피하려고 악마가 될 것인가?)

정당하게 내야할 세금은 요리조리 피하면서 반대로 어려운 후진국들에 따스한 인정의 기부를 한다? 뭔가 이상하다. 마치 피도 눈물도 없는 고리대금업자가 뒤로는 고아원 아이들의 따스한 후원자라는 드라마틱한 줄거리를 떠올리게도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냥 세금 낼 것을 내고, 기부를 안 하면 된다. 어차피 각 나라에 구글이 내는 세금이 그 나라 정부에 의해 공공사업에 투입되기도 하고, 국제기금을 거쳐 똑같은 일을 할 수도 있다. 단지 구글이 아니라 아일랜드 정부나 브라질 정부가 하는 것으로 명의만 바뀔 뿐이다. 왜 구글은 그냥 세금만 제대로 내면 될 것을 이렇게 복잡하게 할까?


그런데 사실은 바로 이 점이 미국식 기부방식의 특징이다. 미국은 사회가 아닌 개인이 직접 소득 재분배를 위한 기부를 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일찍부터 사회주의가 발달하고 국가가 개인의 복지를 책임지며 의무를 강조한 유럽은 부자 개인의 기부에 대해 냉담한 편이다. 그들은 정부의 역할을 믿기에 개인이 소득에 따른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 그 쓰임새를 잘 감시한다면, 특별히 누가 선심쓰듯이 거액의 개인자산을 내놓지 않아도 알아서 정부에서 소득의 재분배와 사회를 위한 투자를 해준다는 원리다.


그때문에 유럽에서는 지금 빌게이츠를 비롯한 미국 거부들이 벌이는 재산 기부운동에도 냉담한 평가가 많다. 응당 내야할 세금을 많이 내고, 그것을 통해 정부차원에서 벌이면 될 일이라는 의미다. 개인이 나서면서 기부금의 흐름이 왜곡되고, 원래 정부에 세금으로 내면 그냥 사회적 의무인 것이 부자 개인의 명예를 위한 자랑스러운 기부금으로 바뀌는 게 보기 싫다는 의견이 많다.

구글을 통해서 보는 미국식 기부의 장단점은?



구글의 예로 생각해보면 이것은 극명하다. 구글은 그냥 의무로서 내야할 세금을 회피했다. 세금은 착실하게 내봐야 아무런 자랑거리도 안된다. 아무리 거액을 내도 그저 세무서에서 '수고했네.' 한마디 들으면 끝이다. 그에 비해 같은 돈을 기부금으로 내면? '대단하구나!' 내지는 '존경스럽네요.' 소리를 듣는다. 기왕이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뻔하지 않는가?

이것이 바로 미국식 기부다. 미국의 부자들은 정부의 간섭과 무거운 세금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부에서 복지나 의료혜택을 위해 세금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면 부자들은 차라리 세금을 반대하면서 같은 돈을 복지재단과 의료재단에 기부한다. 그렇게 하면 자기가 원하는 곳에 돈을 줄수 있을 뿐더러, 당연한 의무가 아닌 권리로서 명예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같은 돈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 같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 둘 사이에는 공통점도 있다. 바로 사회와 인간에 대한 통찰이다. 그들은 부자인 스스로가 돈을 번 것이 자기 혼자만 잘나서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기회를 부여했기에 가능했다는 걸 안다.



만일 어떤 방식으로든 기부조차 하지 않고 방치하면 부의 불균형이 사회적 파탄을 가져온다.  프랑스대혁명이나 공산혁명처럼 부자들조차 온전하지 못한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스스로의 부를 지키기 위해 세금을 내거나 기부를 한다.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와 자기 자식을 위해서인 것이다.

미국식 기부의 장점은 원하는 곳에 신속히 자금이 전달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단점은 사회와 국가 전체의 시스템이 아닌 지라 안정성이 떨어지며 개인의 명예욕과 취향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점이다. 유럽식에 비해 단점이 좀 두드러지지만 그래도 선행이라고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저 어느쪽에도 들지 못하는 후진국들, 그리고 욕을 먹고 있는 한국 거부들을 생각해보자. 그들은 어느 쪽인가? 세금을 착실히 내며 그것을 감시하는 유럽식인가? 아니면 세금은 적게 내더라도 스스로 비슷한 액수를 기부하는 미국식인가? 자칫 세금은 적게 내고 개인 기부조차 피해가는 최악의 선택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