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미국산 쇠고기가 한창 논란의 중심에 있을 때가 있었다. 그때 제품의 원산지 표시에 대해 상식과 다른 결과가 있었다. 예를 들면 외국의 소가 국내에 산 채로 수입되서 3개월 정도만 길러진 후 도축되면 그 고기는 '국내산 쇠고기' 로 표시된다는 것이었다.

오늘날 세계는 매우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원료와 부품, 반제품이 바쁘게 나라를 돌아다니기 때문에 일방적인 국적을 정하기 어렵다. 하다못해 대형 마트에 가서 오렌지 주스에 브라질산 50프로, 미국산 50프로 란 원료 표기를 보았을 때도 매우 복잡한 기분이었다. 과연 내가 이 주스를 마시면 어느 나라 오렌지를 먹는 건지도 구분할 수 없으니 말이다.



베트남산 쥐치가 국내에서 가공되어 쥐포가 되어 나오고, 칠레산 오징어가 국내에서 건조되어 오징어포가 되는 시대다. 이익을 위해 나오는 제품은 이제 국적 따위가 의미없게 되어버린 듯 하다. 중요한 건 그 제품이 좋은가 나쁘냐 하는 것 뿐이니, 국산품 애용 같은 말도 이젠 그리운 옛날의 향수일 수도 있겠다.

이런 가운데 지금도 인터넷에서 가끔 벌어지는 스마트폰의 애국심 논란이 있다. 애플의 아이폰을 쓰는 대신 삼성의 갤럭시S를 사면 애국자라느니 하는 것이다. 물론 애플은 미국회사이니 아이폰은 미국제품이고, 삼성이 한국회사이니 갤럭시S는 한국제품이라고 간단히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아이폰을 둘러싼 최근의 뉴스를 한번 보자.(출처)



최종 생산지를 기준으로 하는 기존의 무역수지 통계가 진실을 왜곡,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를 실제보다 과도하게 부풀리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아시아개발은행연구원(ADBI)의 최근 보고서를 인용, 16일 보도했다.

ADBI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애플의 아이폰 한 품목만으로 연간 19억 달러의 대중(對中) 무역적자가 발생한다. 이는 미국이 무역수지를 개선하려면 첨단 IT 제품 수출을 늘려야 한다는 상식을 뒤엎는 것이다.

이런 결과가 나오는 이유는 아이폰이 중국에서 최종 조립만 이뤄졌을 뿐 개발과설계(미국)와 부품공급(한국 등) 등이 전세계적으로 이뤄졌는데도 통계상으로는 이런 현실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기때문이다.

아이폰 생산 과정에서 각국의 기업에 발생하는 비용은 일본이 34%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며 다음으로 독일 17%, 한국 13%, 중국 3.6% 순이며 그 밖에 27%는 다른 국가에서 발생한다.

라미 사무총장은 지난 10월 프랑스 상원 연설에서 "최종 생산국에 제품의 가격을 모두 반영하는 통계적 쏠림이 무역수지 불균형의 원인에 대한 정치적 논쟁을 왜곡하고, 논의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폰의 원가에서 부품 등으로 일본은 34퍼센트를 가져가고, 독일이 17퍼센트, 한국이 13퍼센트를 가져간다. 그러나 실제 과정에서 최종조립을 맡은 중국이 이 모든 가격을 다 떠안고는 원가의 100퍼센트를 가져가는 것처럼 왜곡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부품만 모아서 생산하는 중국이 아이폰의 원산지가 된다. 거기에 애플은 디자인 by 캘리포니아 란 표시를 찍어서 다시 각국으로 수출한다.


위 기사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건 무역수지의 왜곡이지만 나는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 다른 주제를 던져본다.



애플의 아이폰은 과연 어느나라 제품인가?

제품 속 부품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로 국적을 정하면 아이폰은 일본제다. 무려 34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반면 디스플레이나 메모리, APU등 핵심부품을 차지한 나라로 정한다면 한국제다.

위 기사처럼 최종 조립생산지만 따지면 중국제다. 제품을 생산한 회사의 국적으로만 정하면 미국제다. 거기다 한술 더 떠서 디자인한 곳의 명칭만 따지면 미국제도 아니다. 캘리포니아제품이다. Made in USA 라고 써 있지 않으니 말이다. 미국은 분명 연방제로 주 하나하나가 독립 국가에 준한다. 그러니까 미국제가 아닌 캘리포니아제라 불려도 할 말이 없다.

또다른 견해도 나올 수 있다. 아이폰은 결국 여러나라가 협업해서 만들었으니 '다국적제품' 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냥 아이폰은 애플에서 만든 '애플제품' 일 뿐이라고 시니컬하게 대답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나름대로의 정당성이 있다.



사실 아이폰이 어느 나라 제품인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닌지도 모른다. 나는 그걸 굳이 논쟁하고자 이 문제를 끄집어낸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첨단제품의 글로벌화와 국경을 넘나드는 가운데 펼쳐지는 이런 현상이다.

구글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여러나라를 거치며 복잡하게 돈을 움직이듯, 오늘날 공산품을 생산하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조금이라도 싼값에 좋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바쁘게 여러 나라를 연결해 원료와 부품을 실어나른다. 그러니 최종적으로 어느 회사의 주도인가만 확실할 뿐 대체 어느나라 제품인지 고전적인 의미에서는 해답이 없다. 그러니 아이폰을 쓴다고 매국노가 되는 것도 아니고 갤럭시S를 쓴다고 해서 애국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아이폰과 애플은 현재 미국 산업의 자존심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건 벌어다주는 돈이 아니라 미국회사가 아직도 어떤 공산품 하나를 주도하고 있다는 쾌감 때문이다. 상처입은 미국의 남은 자존심이 깃든 제품이 애플의 아이폰이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애국심조차도 사실은 애플이 디자인 바이 캘리포니아란 표기를 한것에서 보는 것처럼 무의미하다. 잡스의 생각으로는 아이폰에게 미국이란 국적보다는 자사가 위치한 캘리포니아가 더 중요한 지도 모른다.

어쨌든 아이폰이 어느 나라 제품인지 쉽게 판정할 수 없는 것처럼, 앞으로 더 많은 첨단 제품이 국적을 알 수 없는 가운데 생산되어 쓰일 것이다. 애국심을 부르짖는 것조차 무의미해지는 세상에 살게 된다는 뜻이다. 내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하나의 구호인 '국산품 애용'이 시대착오처럼 느껴지는 이런 변화가 새삼 재미있게 느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