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PC 부품 가운데 CPU는 의도하지 않은 독과점 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거의 흔들림없는 선두업체인 인텔의 독주와 함께 AMD가 힘겨운 경쟁을 하고 있다. 솔직히 인지도나 성능면에서 인텔은 너무도 굳건한 위치에 있다. 이러다 AMD가 쓰러진다면 자연스럽게 인텔의 독점시대가 시작될 판이다.

지금 이와 비슷한 시장이 또 하나 있으니 바로 하드디스크다. 우리가 쓰는 데스크탑과 노트북에 필수적인 보조 기억장치인 하드디스크는 매우 중요한 부품이다. 매우 빠르게 회전하는 원판인 플래터에 자성을 띈 헤드가 움직이며 기록과 읽기를 수행한다. 비록 낸드플래시 메모리로 된 기억장치 SSD가 무섭게 진보하고 있다지만 아직 대용량 데이터의 입출력에는 하드디스크를 따를 매체가 없다.



이 하드디스크를 제일 처음 상용화해서 만든 기업이 바로 시게이트다. 커다란 메인프레임 컴퓨터를 위해 만들어진 금속 원통에서 시작된 이 장치는 곧 세계를 휩쓸었다. 필수 부품이 된 이 장치의 생산업체는 IBM, 퀀텀, 후지쯔, 삼성, 웨스턴디지털(WD) 등 매우 다양했다.

그러나 최신기술을 이용해 매년 집적도와 회전속도를 향상시키면서도 가격을 낮춰야 하는 부품 특성상 이 많은 업체드리 치열한 경쟁끝에 하나씩 사라졌다. 어떤 업체는 문을 닫았고, 어떤 업체는 다른 업체에 기술과 특허를 넘기고 인수되어 사라졌다.

자연스러운 기업활동의 결과라지만 우려되는 것이 있으니 바로 독점이다. 너무도 명백한 거대 업체가 생겨나 그 업체가 거의 유일한 생산, 공급업체가 되고 나면 소비자는 선택의 기회를 빼앗기고, 기술은 정체한다. 그러기에 독점은 나쁘다.



지금 전세계 하드디스크 시장에서는 두 명의 강자가 있다. 바로 시게이트와 웨스턴디지털이다. 두 회사는 서로 비슷한 성능의 제품을 비슷한 가격에 내놓아 좋은 경쟁을 한다. 예전에 시게이트가 속도와 데이터 정확성에서 약간 앞섰다면, 지금은 웨스턴 디지털이 데이터의 안정성과 내구성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 두 회사의 하드디스크는 각기 특성이 있어 골라쓰는 재미가 있다. 아직도 삼성 등이 남아있지만 기술력이나 시장의 주류로 인정받고 있지는 못하다.

그런데 다소 뜨끔한 기사가 올러왔다.(출처)



불룸버그는 시게이트가 웨스턴 디지털로부터 인수 제의를 거부했다고 전했다. 최근에 시게이트는 TPG 캐피털의 75억 달러 인수 제의도 거부한 바 있다.
웨스턴 디지털은 TPG보다 10%에서 50% 정도 더 지불할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게이트는 시장 가치가 69억 달러이고, 웨스턴 디지털은 시게이트보다 매출은 작지만 시장가치는 80억 달러에 달한다. 웨스턴 디지털은 10월 1일 자로 현찰 29억 달러를 확보하고 있고, 부채는 3억7,500만 달러이다.


하드디스크를 처음 만든 시게이트가 경쟁사인 웨스턴디지털에 인수될 지 모른다. 사실 나는 웨스턴 디지털의 팬이다. 요즘 컴퓨터를 조립할 때는 가급적 WD의 제품을 쓴다. 오래 써본 하드디스크 가운데 가장 오래 쓰는 제품이 이 회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까지 WD는 내 이런 바램에 실망을 준 적이 없다.

그에 비해 시게이트는 원조라는 자부심을 날려버릴 만큼 최근 불안정한 모습과 작동오류를 보여주었다. 때문에 점차 판매량이 줄어들어서 이젠 웨스턴디지털에 인수당할 지 모른다는 말까지 돌고 있다.



사실 하드디스크 자체가 이제 더이상의 성장이 힘든 산업이다. 텔레비전 안에 탑재되는 기록장치 등으로 판로를 넓혀보긴 하지만 점차 기록속도나 내구성에서 압도적인 SSD에 밀리고 있다. 최근 맥북에어는 아예 기본으로 하드디스크를 배제한 SSD모델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재편이 이뤄지는 것이지만 그 움직임은 아직 너무 빨라서 가슴을 철렁하게 한다.

하드디스크, 독점시대가 오려고 하는가?

문제는 하드디스크 시장에서 독점이 이뤄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웨스턴디지털이 시게이트를 인수하면 시장점유율이 압도적인 기업이 탄생하게 된다. 더구나 기술적으로도 상당한 수준에 와 있다. 삼성이 나름 견제가 될 지 모르지만 만일 이 둘의 거대함에 눌려 삼성마저 포기하면 완벽에 가까운 독점체제가 완성되는 셈이다.



아무리 미래전망이 좋지 않다고 해도 하드디스크는 아직 대용량 저장장치의 필수부품이다. 이런 부품이 독점상태에 올 수 있다는 건 안타까운 느낌이다. 돈이 회전하며 확장하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시장에는 너도나도 뛰어들지만, 하드디스크 등 PC관련 부품산업은 사양길에 들며 독점시대가 온다. 그렇게 되면 기술의 진보가 늦어지며 소비자가 좋운 제품을 싼 가격에 얻을 기회를 잃게 된다.

하드디스크 시장은 이렇듯 커다란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그 변화가 어디로 향하듯 우리는 차분히 상황을 주시해야 한다. 그리고 제품을 살 때 보다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