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비즈니스 만화 가운데 '시마과장' 이란 작품이 있다. 90년대에 연재가 시작된 이 만화는 주인공 시마과장이 하쓰시바 전자(마쓰시다 전자와 대응)안에서 각종 여성편력과 기업활동을 하면서 성취를 이루고 진급해 나간다는 내용이다. 만화이기에 다소 과장이나 변형은 있어도 가능한 현실과 비슷한 직장생활과 기업관계를 다뤘다.

일본에서 열광적 반응을 얻은 이 만화는 주인공 시마의 승진과 함께 '시마 부장' , '시마 이사' 로 제목을 바꾸며 롱런했다. 그리고 지금은 마침내 하츠시바의 사장이 된 '시마 사장' 편이 시작되었다.



시마과장때의 주요 경쟁상대는 사내 파벌이나 미국, 유럽의 기업들이었다. 그때 한국기업은 부품 하청업체나 아직 별 기술도 존재감도 없는 존재였다. 예나 지금이나 일본만화속 한국은 실제보다 한단계 더 낮게 평가된다. 그런데 시마 사장이 되고 2010년이 된 지금 그 내용은 놀랍다. 하츠시바 전자의 무서운 경쟁상대는 섬상(삼성에 대응)전자다.

섬상전자는 만화속에서 하츠시바의 기업가치보다 2배나 높고 순이익은 4배나 많은 엄청난 상대로 그려진다. 처음으로 한국 업체가 제대로 평가받은 것이다. 사실 이것도 약간 낮게 평가된 것이긴 하지만 이 정도는 애교다. 이제 일본만화가 조차도 더이상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보여주게 된 한국이란 나라와 삼성의 역할이 나름 뿌듯하다.




그러나 이것을 마냥 좋아만 할 수가 없다. 다음 뉴스를 보자. (출처:MK뉴스)

SK텔레콤을 통해 시판되는 갤럭시탭의 가격 조건이 전격 공개된 가운데 갤럭시탭의 판매가격이 나라마다 다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갤럭시탭의 국내 출고가는 99만5500원으로 SK텔레콤의 2년 약정을 선택하면 26만~34만원대의 판매가격에 갤럭시탭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텔레콤에 따르면 지난 10일(현지시간) T모바일을 통해 미국 시장에 첫선을 보인 갤럭시탭의 소매가격은 599.99달러다. 2년 약정의 데이터요금제를 선택할 경우 200달러의 보조금이 부여돼 400달러(약 44만원)에 살 수 있다. 이때 월 24.99달러(매달 200MB의 무료 데이터 부과)나 월 39.99달러(5GB) 요금제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영국 이통사인 보다폰은 영국 내에서 499파운드(약 90만원)에 갤럭시탭을 판매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1년 이상 약정이며 월 10파운드(1GB 데이터 무료), 15파운드(3GB), 25파운드(5GB) 등의 요금제를 적용한다.

프랑스 이통사인 오랑주가 영국에서 적용하고 있는 갤럭시탭 가격도 1년 약정 조건에 499파운드로 같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갤럭시탭의 출고가격은 나라마다 거의 같다"면서 "다만 글로벌 이통사들이 적용하는 약정 조건에 따라 소비자들에게 적용되는 판매가격이 각기 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이 야심차게 내놓은 갤럭시탭의 외국 출시가와 한국 출시가가 다르다. 원래 세금이 많이 매겨지는 유럽은 본래 비쌀 수 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미국과 한국의 가격차가 심한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국내의 세금을 합하더라도 운송료도 그다지 들지 않는 한국제품이 이렇게 까지 비쌀 이유가 없다.

사실 이런 경우는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삼성이 유일한 것도 아니다. 그동안 삼성이나 엘지 전자의 컴퓨터 부품이나 컴팩트 디스크 드라이브, 액정 텔레비전, 현대의 승용차 등 한국 제품은 늘 미국이나 유럽에서 한국 국내보다 월등히 싼 값에 팔렸다. 때문에 덤핑판정을 받고 막대한 상계관세를 물기도 했다. 내수가 적어 수출을 우선으로 해야하는 한국의 경제정책이 이런 국내외의 차별적 가격을 용인했기 때문이다. 한동안 그래서 해외에 팔린 제품을 도로 수입해오는 역수입 제품이 판을 친 까닭도 거기에 있다.

하지만 삼성의 이번 갤럭시탭 가격정책은 각별히 씁쓸한 느낌을 준다. 오히려 자국인 미국에 철저히 혜택을 주는 같은 분야의 경쟁자 미국의 애플정책과 비교되기 때문이다.


아이패드는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싼 편이다. 세금이 없는 주에서 사면 최저가에 손에 넣을 수 있다. 때문에 유럽 소비자들이 이메일로 아이패드가 미국에 비해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너무 비싸다고 잡스에게 호소하자 잡스는 단칼에 자르듯 말했다. 그건 유럽의 세금 등 국가정책 때문이라고 말이다.


해당 기사의 아래쪽 삼성 관계자의 언급을 보자. 우선 약정조건에 따라 다르다는 설명부터 말이 안된다. 즉 삼성전자는 일정한 가격에 공급하는데 이통사들이 요금제에 따른 가격차를 둔다는 뜻이다. 하지만 잘 보면 약정과 가격을 감안해서 계산하더라도 미국이 한국보다 월등히 싸다. 경쟁이 치열하고 브랜드 지명도가 뒤지는 미국 시장에서 이기기 위해 삼성이 공세적 가격정책을 폈을 가능성이 높다. 즉 미국 시장에는 거의 이익이 없이 판매하고 다른 나라 시장에서 이익을 얻자는 정책 말이다.

만화 시마 사장에서는 삼성의 성장 요인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90년대 들어서며 일본은 불황기에 돌입했고 생산조정을 시작했습니다. 섬상은 이 시기를 놓치지 않았죠. 이때다, 하고 대규모 투자를 해서 반도체, 액정 패널, 그리고 휴대폰의 점유율을 단숨에 확대해서 가격주도권을 거머쥐었습니다. 절묘한 마케팅과 브랜드 구축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일본기업을 밀어낸 것입니다. 일본이 정리해고를 단행하며 고통에 허덕이고 있을 때에 말이죠.



이처럼 한국 삼성은 고통스러운 시기를 보내던 일본과 세계의 침체에 공세적인 자금투자를 해서 성공했다. 그럴 수 있는 기반은 어디에 있었을까. 한국 정부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의 지원효과와 한국 소비자들이 그간 비슷한 가격정책에서 삼성제품을 많이 사준 것에 있다. 한국에서 얻은 이익을 가지고 미국에서 성공하는 삼성이 자랑스럽기는 해도 씁쓸한 느낌은 바로 여기서 온다.

삼성 갤럭시탭, 한국에 비싸게 팔아야 하나?

애플의 경쟁자가 되겠다는 삼성이지만 그 경쟁에서 삼성이 이기면? 미국인에게 제품을 가장 먼저 가장 싸게 공급하는 애플처럼, 삼성도 한국인에게 가장 좋은 제품을 가장 먼저 싸게 내놓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왜 과연 삼성을 굳이 응원해야 하는가? 애국심이란 건 무조건적으로 강요되는 게 아니다. 최소한 한국이 최고로 혜택받는 나라 대접은 받아야 할 것이 아닌가?


삼성이 갤럭시탭을 굳이 회사 정책상 한국에는 비싸게 팔아야 겠다면? 할 수 없다. 어차피 기업의 가격결정이야 자유다. 싫으면 안사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로서 해외에서 삼성이란 브랜드 간판을 볼 때 우리가 느끼는 자부심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아무리 글로벌 시대의 글로벌 기업이라지만 삼성에게 있어 한국이란 의미가 그저 같은 제품을 다른 나라보다 비싸게 팔 수 있는 나라란 의미 밖에 되지 않는다면, 우리도 삼성을 각별하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 미국인에게 애플이 각별한 회사 이미지를 가졌듯, 삼성도 한국인에게 보다 각별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는 정책을 펼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