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 위에서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서양의 오래된 격언이다. 이 말은 스스로 적극적인 자기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자에게는 잠재적으로 그 권리를 포기한 것으로 간주하여 법도 적극적으로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의미다.

기업과 소비자 사이는 매우 묘한 긴장감이 있다. 기업을 먹여살려주고 번영하게 하는 것은 소비자다. 따라서 기업은 항상 고객에게 감사한다. 고객 덕분이다. 고객은 왕이다. 이런 식으로 말한다. 그러나 실은 기업의 이익은 소비자가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순간 이미 전부 실현된다. 그 뒤에 따라붙은 사후 서비스나 고장수리 등은 순전히 손실 내지는 비용으로 간주되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기업은 할 수만 있다면 제품판매 후 어떤 서비스도 해주지 않고 축소하고 싶어한다. 그게 기업측의 본능이다. 그러나 소비자는 반대의 입장이다. 소비자로서는 제품을 사기 위해 지갑을 열고 돈을 내는 순간이 바로 비용이고 손실이다. 대신에 그 제품을 사고 쓰고, 서비스를 받고 고장나면 무상으로 수리받는 것이 이익의 실현이다.


소비자는 따라서 끊임없이 기업에게 좋은 사후 서비스와 제품성능, 품질의 향상을 요구하게 된다. 그것이 소비자의 권리다. 그리고 이것이 좋지 못한 기업의 제품을 사지 않으려 한다. 따라서 이런 움직임이 기업의 입장과 균형을 이뤄서 현재 기업들의 의무와 소비자의 권리, 애프터서비스 약관 등을 만들었다.

서두가 너무 길었다. 그럼 먼저 한가지 뉴스로 오늘의 주제를 시작해보자.(출처: 애플인사이더)

애플 지원 사이트의 수 개 스레드들에서는 약간의 새 맥북 에어들의 로직 보드와 디스플레이에 문제들이 생긴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한 쓰레드에서 새 11 인치 모델들과 13 인치 모델들의 얼리 아답터들은 깜빡거림과 얼어붙는 것, 그리고 세로 줄들과 뜻밖의 컬러들이 생기는 문제들을 보고했다. 다른 쓰레드는 새 인스턴트-온 기능의 문제를 거론했다.
애플은 새 맥북 에어 출시일에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배포했지만, 애플 지원 포럼에서 소수의 사용자들은 업데이트를 설치한 후에도 문제가 계속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컬트 오브 맥 편집자들도 비디오 문제와 더 심각한 커널 패닉을 경험했다고 전했다. 이 보고에 의하면, 11 인치와 13 인치 맥북 에어 모델들이 다 슬립 모드에서 깨어날 때 커널 패닉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맥 월드의 서레니티 칼드웰도 또한 맥북 에어의 디스플레이가 그레이, 탠, 그레이-블랙, 블루 등 다양한 컬러들로 변하는 것을 경험했고, 애플 지니어스와 상담한 결과 로직 보드에 결함이 있을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말했다.


요약하면 새 맥북 에어 제품 일부에서 심각한 고장이 발생했다. 그런데 이것이 소수 제품의 단순불량인지, 맥북 제품군 자체의 설계결함인지는 아직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원칙적으로 어느 편도 아니다. 나에게는 애플이든 삼성이든 MS 든 같다. 후진국의 이름없는 기업이라도 상관없다. 장점이 있으면 끄집어내서 언급해주고, 단점이 있으면 비판한다. 나는 특정 기업편이 아니다. 오히려 굳이 편을 따진다면 나는 소비자의 편에 서려고 한다. 기업은 대체로 돈과 인력이 넉넉하기에 스스로의 이익을 충분히 지킬 수 있지만 결속되지 않는 소비자 개인은 기업 앞에 힘이 없기 때문이다.

애플 제품의 결함이나 단점에 대한 댓글반응을 접하면서 나는 문득 답답함을 느끼곤 한다.
애플이 훌륭한 혁신을 이룬 기업이지만 무상으로 베푸는 것이 아니다. 혁신의 대가로 당당히 요구하는 고가에 우리는 그 물건을 산다. 충분히 값을 치르고 사는 물건임에도 온전히 소비자의 입장에 서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목소리가 많다. 엄청난 변호사 군단과 돈, 언론에 대한 영향력으로 무장한 강자 애플을 굳이 편들어서 더 얻을 수 있는 스스로의 권리를 얻지 못하는 소비자가 너무도 안타깝다.


위의 맥북에어의 케이스는 초기에 구입한 열성적인 소비자 일부가 실망했다는 내용이다. 미국이니 무상환불도 가능할 테니 금전적 피해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이것이 설계 자체의 결함 혹은 생산공정에서 나오는 구조적인 결함이라면 애플은 비판을 받아야 한다. 제품을 빠른 기간에 세상에 내놓으려는 욕심이 앞서 충분한 테스트나 품질관리 없이 최종제품을 팔았다는 이야기니 말이다.


물론 우리는 이것을 단순히 헤프닝으로 생각하고 관대하게 넘어갈 수도 있다. 다른 회사였더라도 이런 건 그냥 해당제품 불량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소비자의 권리를 이런 데서 굳이 찾으려 애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때로는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말고 유연성을 발휘하고 소비자로서 애플을 믿고 사랑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렇다. 우리는 애플을 믿고 사랑한다! 우리는 소비자가 아닌 애플의 팬이기 때문이다!

자, 그러면 우리의 이런 믿음과 사랑에 대해 애플은 어떤 애정어린 보답을 해주고 있는가? 똑같은 제품인 새 맥북에어를 통해서 소비자에 대한 애플의 생각을 한번 읽어 보자.
(출처: http://iphoneblog.co.kr/772)

이번에 새로이 발매된 뉴 맥북 에어에는 최소한 9개 이상의 Liquid Contact Indicator 이 설치 된것으로 확인 되었습니다.
원래 이름은 Liquid Submersion Indicator: 액체 침수 표기 장치 였는데 이름의 모호함과 "침수"라는 것이 "물에 푹 담갔다 나온다" 라는 의미가 강해서 이제는 Liquid Contact Indicator: 액체 접촉 표기 장치로 그 의미를 대폭 축소했습니다. 접촉과 침수는 분명 그의미가 많이 다르고 그리고 단어 하나에 달라지는 워런티와 소송 관련 문제를 애플이 의식한 조치 같습니다.
http://www.hardmac.com/news/2010/09/14/liquid-submersion-indicator-apple-changes-the-name

물론 하나 정도의 표기 장치가 빨간색이라고 해도 대부분의 경우 무료 워런티 조치를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만 이 역시 복불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너무도 친절하다. 소비자가 혹시라도 맥북에어를 화장실 변기에 한 모서리라도 빠뜨린 후 가져와서는 <저, 이거 물에 빠뜨린 적이 없거든요?>라고 발뺌할까봐 참으로 빈틈없이 침수라벨을 심었다. 저것도 전부 제조원가에 포함될 텐데 침수라벨에 드는 부품가격은 별로 아끼고 싶지 않은가보다. 하긴 저것으로 인해 <아쉽게도 침수라벨이 변색되었군요. 유상수리 되시겠습니다.>라면서 아낄 수 있는 무상 서비스 비용에 비하면야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무슨 부모가 자식을 보는 내리 사랑인가? 소비자는 애플의 결함을 열심히 감싸주는데 반대로 애플은 소비자를 무슨 잠재적 AS사기꾼 취급을 하고 있다. 외관이 찌그러지거나 조금이라도 손상이 있으면 당연히 무상수리가 안되는 거고, 저렇게 빈틈없이 심어놓은 침수라벨이 변색되면 그걸로 다시 무상수비를 거부한다. 소비자의 말 따위보다는 기계적 부품인 라벨을 신뢰하겠다는 게 애플이 우리에게 돌려준 보답이다. 우리는 어차피 그래도 앞으로 애플을 사랑하고 옹호해주며 신뢰할 테니까 말이다. 여기다가 예전에 내가 포스팅에서 언급한 가속도 센서를 이용한 충격기록 특허까지 결합하면 완벽하다. 한마디로 애플은 고장수리하러온 소비자의 말은 전혀 믿지 않는다. 이게 사실이다.

맥북에어에서 찾아야 할 소비자 권리는?



그럼 우리는 이런 현실에 그저 체념하거나 싫으면 다른 회사 제품 사지. 이래야 하는가? 물론 그것도 선택이다. 그러나 말했듯이 세상에는 권리라는 게 있다. 소비자의 권리는 법으로 보호된다. 더구나 우리는 인간이다. 매트릭스의 세계도 아닌데 기계의 부정확성에 모든 인간이 운명을 걸어야 할 필요는 없다. 다음 뉴스를 보자. (출처: 네이버)

국내에서 처음으로 아이폰 침수라벨과 관련된 소송이 제기되었습니다.
아이폰이 물에 빠지지 않았는데도 침수라벨이 변했다는 이유로 무상수리를 거부당해서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아이폰과 아이팟터치의 침수라벨은 독 커넥터와 이어폰단자에 외부로 노출되어있어 습한 환경에서는 쉽게 변색되곤 해 과거에도 침수라벨때문에 무상수리가 거부된 사례가 많았으나, 실제 소송으로 이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는 제품을 사고 나서도 보호받을 수 있는 소비자의 권리라는 게 있다. 그것은 애플이 아무리 정확한 가속도센서와 특허를 가져도, 맥북에어가 침수라벨로 아예 전체를 뒤덮더라도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다. 부디 소비자의 권리를 자진해서 포기하지는 말자. 우리도 애플의 결함이나 제품불량에 대해서는 철저히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요구해야 한다.

권리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그 상대가 애플이라도 마찬가지다. 잊지 말자. 애플 역시 AS 분야서는 소비자의 이익 반대편에 선 하나의 기업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