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나는 블로그를 통해 내가 본 외부의 이야기를 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스스로 본 니자드란 블로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과연 IT평론가의 길을 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 장단점을 써보고자 한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에 강렬한 흥미를 느끼고 그걸 통해 혁신을 만들고 싶었지만 막상 그쪽 방면의 재능이 없었다. 하드웨어를 만들기 위한 전자공학 지식이 없었고,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위한 논리적 추론과 수학적 재능도 없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건 오로지 직관력과 시장, 인간에 대한 통찰력 뿐이었다. 보통 이럴 경우는 굳이 컴퓨터 회사가 아니라 광고회사나, 브랜드 마케팅 회사에 들어가면 딱 좋다. 아니면 학자가 되어 대학에 머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그러나 잡스는 자기가 가진 인문학의 지식을 이용해서 감성이 들어있는 컴퓨터 혁신을 만들어냈다.



나는 컴퓨터를 좋아하지만 수학을 못하며, 전공은 정보통신공학이지만 전자공학은 전혀 재능이 없다. 반면에 문학과 역사, 철학에 비교적 재능이 있다는 말을 들어왔다. 취미로 쓴 소설이 96년에 하이텔에서 큰 인기를 얻어 출간되었으며 그후로 약 15년간 전업 소설가로서 30권이 넘는 책을 출간했다. 이쯤 되면 백수는 아니고 작가라고 직함을 붙여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컴퓨터와 게임을 좋아했으며 기업간의 경쟁과 기술의 발전, 경영자의 역사를 좋아했다. 따라서 나는 소설가가 되었어도 항상 첨단 기기를 구입하고 컴퓨터 잡지를 즐겨보는 얼리아답터였다.

그런 내가 우연히 이웃 블로거인 <주작>에게 애플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냥 심심풀이로 이런 건 어떨까. 라고 한 이야기를 주작은 그러지 말고 블로그에 올려보라고 했다. 나는 올려도 몇 명이나 본다고? 재미있어 하겠어? 라고 반문했지만 일단 올려보기로 하고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솔직히 그다지 많은 기대는 없었다. 백 명 정도만 읽어줘도 만족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처음 올린 글부터 베스트 글이 되고 메인에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방문객과 댓글이 마구 붙었다. 나는 이전에 그냥 심심풀이로 주작에게 하던 이야기에 살을 붙이고 근거를 보강해서 올렸고 그것이 어느새 계속 메인과 베스트를 장식하면서 나는 반응이 오는 것에 너무 재미있어 신나게 계속 글을 썼고 IT전문 블로거가 되었다.


그런데 문득 깨닫고 난 나는 이전의 IT블로거와는 성격이 많이 달랐다. 나는 정보를 그냥 올리는 건 기자들이 올리는 뉴스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월스트리트 저널이나 포브스, 혹은 외국의 테크 잡지에 기고되는 고급 컬럼형식을 동경했다. 최신의 IT 소식을 신랄한 어조와 화려한 필체로 비꼬거나 찬사를 붙여 쓰는 그 컬럼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읽은 뒤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특히 애플과 MS의 오랜 역사에 대해 쓴 고급 컬럼들은 무려 일주일 낮 밤을 새워가며 읽을 정도였다. 너무 재미있고 좋은 글들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런 글은 오로지 외국에만 있었다. 한국에서는 기자들을 포함해 대부분의 블로그는 정보 그 자체만을 그냥 가공해서 올릴 뿐이었다. 의견도 관점도 강하지 않을 뿐더러, 재미있는 비유나 신랄한 풍자, 예리한 통찰 같은 맛을 찾아볼 수 가 없었다. 나는 굳이 한국에 소재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특히 나는 아이폰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해진 애플에 주목했다. 애플과 스티브 잡스를 소재로 한국 블로거가 고급 컬럼을 쓴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점점 내 글은 단순한 이야기에서 외국식 컬럼 형식이 강해졌다.

아니, 굳이 말하면 이건 컬럼 가운데서도 매우 고급스러운 평론 영역에 속한다. 경제학에 미시 경제학과 거시 경제학이 있듯이 말이다. 내가 쓰는 컬럼은 사적인 가벼운 의견을 붙이고 컬럼이라고 하는 블로거와 좀 다르다. 나는 강한 주장과 관점을 가지고 미래비전을 거시적으로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나에게 처음 블로그를 추천해준 이웃블로거 주작의 의견에 따르면 이건 IT평론의 영역이다.
 

그런데 문득 나는 어느새 나와 같은 특성을 가진 블로거가 거의 없다는 걸 발견했다. 약간 비슷한 IT블로거는 있어도 대부분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주목적이거나 개인의 개봉기, 활용기를 올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것도 아니면 대부분은 통계수치를 가지고 특정 회사와 제품을 편드는 블로그 뿐이었다. 어떤 것이든 비판적 시선으로 보면서 거시적인 관점을 제시하는 블로거는 거의 본 적이 없다. 그저 외국의 IT블로거와 주요 잡지에 기고하는 컬럼니스트만 가능한 일인가보다. 그런데 그 원인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답이 나온다.

1. 한국의 블로그에서 IT평론가는 일단 글을 매일 쓰기가 힘들다. 정보를 가지고 관점을 녹여서 글을 쓰는 자체가 일단 힘들다. 그냥 <아이폰4 나옵니다! 디스플레이가 4배나 선명합니다!> 라면 정보블로거로서 합격이다. <아이폰4 나옵니다. 어서 써보고 싶네요! 애플 제품은 역시 디자인이 끝내줘요!> 라고 하면 개인적 컬럼니스트로서 합격이다. 그런데 IT평론가쯤 되려면 <아이폰4 나옵니다. 앞으로 업계에서 이에 대한 대응으로 어떤 움직임이 있을지 제시해보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써야 한다. 어느쪽이 쓰기 쉬울 지는 누구나 알 것이다. 이런 포스팅을 매일 하나 쓰기도 힘든데 정보블로거는 두개 세개도 하루에 올릴 수 있다. 애초에 동등한 게임이 안된다.

2. 그렇게 힘들게 글을 써도 IT평론가는 다른 블로거와 같은 조회수와 추천수를 얻지 못한다. 정보는 그 자체로 중립적이다. 작정하고 덤벼들지 않는한 그냥 <아이패드 11월에 발매됩니다.> 이런 소식에 무슨 악플이 달릴 수 있을까? 누구에게나 도움이 되는 정보이며 최소한 미움받을 건덕지가 없다.
그러나 관점이 있는 평론을 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라고 피하는 활용기나 개봉기 수준이 아니다. 그냥 <써보니 좋은 것 같아요. 여친 하나 사줘야겠어요.> 이런 글이 아니다. 필연적으로 어떤 점은 좋고 나쁘다는 의견이 들어가는 데 아무리 그게 옳더라도 그 회사와 제품을 사랑하는 팬보이 들에게는 쓰레기 같은 글이 되거나, 멍청한 블로거가 된다.
그러니 오히려 오래 활동하고 글을 많이 올릴 수록 악플이 많이 달리거나 추천이 적거나, 조회수가 줄어드는 현상이 생긴다. 노력만 많이 들고 쉬운 정보성 글보다 못한 수확을 거두는 이런 IT평론글을 매일 쓴다? 그걸 오래 할 수 있는 블로거가 있을까?


3. 정보성 블로거를 비롯한 평범한 블로거들은 각종 업체의 협찬이나 리뷰 등을 자연스럽게 쓰는 수익모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IT평론가는 그것을 하기에도 애매하다. 가뜩이나 힘들게 글을 써도 방문객이 그다지 증가하지 않는 상황에서 각 회사에서 내놓는 제품마다 장점뿐 아니라 단점도 지적하고 업계의 비판적 시선도 제시하는 게 보통이다. 그러니 회사에서 그다지 이뻐하지도 않는다. 그나마 외국에서는 이런 평론가가 영향력이 강하고 각 잡지와 매체에서 고급 영역으로 대우해주니 싫어도 평론가를 대접해준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런 기반이 마련되지 않았다. 따라서 따로 출간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돈도 오히려 더 못번다. 다음뷰 순위나 각종 혜택에서도 대등하게 경쟁하면  절대로 정보성 블로거를 따라가지 못한다. 하다못해 대부분의 블로거들이 한다는 구글 애드센스에 맞춘 검색 최적화, 이런 것도 평론가는 하지 못한다. 글의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상이 현재 내가 굉장히 희귀한 부류인 IT평론가의 길을 다음 티스토리에서 걸어간 5달 남짓한 기간 동안 느낀 점이다. 나는 그나마 운이 좋아서 블로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연락도 받고 출간제의도 받아 지금 출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아마도 그런 점 때문에 하루 하나씩 이런 포스팅을 올리고 있는 지 모른다. 그러나 솔직히 나 이외에 다른 누군가 IT평론가의 영역을 들어올까? 오래 할 수는 있을까? 라고 생각하면 회의적이다.



어쩌면 우리는 영원히 한국에서 애플 같은 회사가 나올 수 없듯, 영원히 한국에서 IT평론가로서 활동하는 블로거를 볼 수 없을 지 모른다. 일단 내가 혼자서 외롭고 힘든 영역 개척을 하고 있고, 다른 많은 블로거가 이 영역을 개척해주길 바란다. 하지만 들어가는 노력에 비하면 너무도 보상이 없다. 그저 사명감이나 개인적 취향으로 들어오는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하지만 아직은 요원한 것 같다.

그래도 한국에서 IT평론가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나는 기꺼이 환영하고 조금이라도 내가 도움이 된다면 도울 것이다. 단지 외국의 좋은 컬럼을 부러워할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하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현실의 높은 벽에 부딛치고, 하다하다 지쳐서 포기하며, 이후로 누구도 이 길을 걷지 않는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인생이란 어차피 거대한 도전이지 않는가? 나는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는 방법으로 의미있는 길을 블로그에서 걸을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