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으로 돌아가자> 이벤트에서 마지막을 장식한 맥북에어 이야기를 해보자. 이전 포스팅인 <애플 소비자들은 과연 맥으로 돌아갈 것인가?> 에서 나는 일부러 맥북에어는 다루지 않았다. 오늘 별도의 포스팅으로 심도 있게 논해보기 위해서다.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전세계에는 넷북 열풍이 불었다.
넷북은 네그로폰테 교수가 저개발국 아이들을 위한 100달러짜리 노트북을 만들자는 프로젝트를 제창하며 시작되었다. 본래는 값싸고 전력소모량이 작은 CPU에 가벼운 운영체제인 리눅스를 얹고 최소한의 저장장치를 통해 교육용으로 쓰자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 프로젝트를 둘러싸고 벌어진 IT 대기업들의 욕심이었다. 이들은 이런 작은 움직임에서 행여 자기들이 소외되는 시장이 생길까봐 우려했다. 결국 인텔은 X86코드의 자사 칩을 극도의 저전력과 저가격으로 세팅한 칩을 만들고 이것을 쓸 것을 제안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공짜인 리눅스 대신 윈도우의 파격적인 저가에 공급할 것을 제안했다.

이런 식으로 본래 취지와 다르게 변형된 노트북은 가격도 당초의 100달러보다 훨씬 올라갔고, 교육시장 뿐만 아닌 일반 시장에도 시판되게 되었다. ASUS가 내놓은 이 노트북은 도리어 선진국에서 가볍게 구입해서 들고다니며 웹과 문서작성 정도를 하는 기기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 저가 노트북은 이후 넷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요즘 대중화된 의미의 넷북은 인텔 아톰칩과 MS윈도우의 넷북용 제한버전, 10인치 이하의 화면크기로 이뤄진다. 물론 부분적으로 리눅스를 쓰기도 하고,AMD의 칩을 쓰기도 한다. 어쨌든 넷북의 공통점은 대략 50만원 대의 저가격과 긴 배터리 지속시간, 그리고 본격적인 용도로 쓰기 힘든 저성능이다.

넷북이 인기를 끌자 그때까지 관망하거나 <넷북 제조계획은 없다.> 라고 말하던 기업들이 속속 참여했다. 부품과 구성요소가 너무도 표준화된 까닭에 만들기도 쉬웠다. 삼성과 엘지를 비롯해 독일의 기업과 국내 중소기업까지 너도나도 넷북을 만들었지만 사실상 특색은 없었다. 디자인을 약간 바꾼다든가, 색깔을 칠하는 것 말고는 변화시킬 수 있는 요소가 너무도 적었기 때문이다.

내가 일부러 길게 넷북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애플이 이번에 발표한 새 맥북에어, 그 중에서도 11인치 모델이 묘하게도 넷북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1. 본래 애플에서는 노트북의 화면 사이즈와 크기가 13인치 이하로 내려가는 것을 피해왔다. 답답한 화면느낌과 입력, 조작의 불편함을 준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이번에 드디어 화면 크기가 11인치 대까지 내려갔다. 이것은 10인치가 주류인 넷북 시장을 의식했다고 볼 수 있다.


2. 맥북에어의 핵심칩인 CPU는 진보된 최신칩이 아니다. 전력소모와 가격 등 그 밖의 이유로 인해 1.4GHz의 인텔 코어2듀오를 쓴다. 다른 블로거분인 칫솔님의 추측으로는  아마도 SU9400일 거라고 한다. 이 칩은  2008년 3분기에 발표된 프로세서이다.. 코어2듀오는 여전히 울트라씬 노트북용 프로세서로 쓰이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 SU9400을 쓴 다른 울트라씬 노트북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도 쓰이는 이유는 첫째로 최신 칩이 오히려 가상화기술을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며, 둘째로는 재고가 남는 이 칩을 싸게 처리해주는 조건으로 대량구매했을 가능성이 있다고도 한다. 이것은 전형적인 넷북의 저가부품 구매 전략이다.


3. 역대 맥북에어와 비교해서 파격적으로 낮아진 가격을 들 수 있다. 종래 맥북은 가장 싼 모델이 210만원이 넘는 고가제품으로 거의 명품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번 맥북은 SSD를 써서 성능을 올리면서도 가격은 오히려 최저가 129만원으로 낮췄다. 이것은 여전히 비싸긴 해도 맥북에어가 더이상 고급 명품이 아닌 대중 제품이 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4. 맥북에어의 하드웨어 성능이 처리속도나 메모리 양에서 그렇게 많은 향상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자. 내가 이전 포스팅에서 언급했지만 애플은 다른 하드웨어 업체와 다르다. 한번 신제품을 발표하면 그 하드웨어 수명에 최소 6개월을 넘는다. 그 동안 계속 발전하는 업계의 하드웨어에 대항해 오로지 소프트웨적 향상과 최적화로 대항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맥북에어의 칩은 오히려 2008년의 제품이니 좀 있으면 상대적인 성능저하를 체감할 수 있다. 그럼에도 오로지 싸게 내놓은 이 제품을 밀어붙인다는 건 간단한 이유다가벼운  용도의 넷북과 같이 애플의 OSX를 쓰고 싶은 사용자들에게 구입해 달라는 신호다.

맥북에어, 애플이 제안하는 넷북인가?

자, 이렇듯 꽤 많은 공통점이 맥북에어와 넷북 사이에 흐르고 있다. 그럼에도 결정적 차이점이라면 맥북에어는 50만원대가 될 수 없다는 정도일 것이다. 가격 때문에 넷북과는 다르다. 잡스도 500달러로 쓸만한 노트북을 만들 재주는 애플이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다.

만일 애플이 아이맥 초기처럼 알루미늄이 아닌 플라스틱을 써서 만들고, 모든 마진을 포기하고 순이익을 한 자리 숫자로 해서 판다면 혹시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애플은 항상 자기들이 혁신을 주는 대신 남들과는 다른 월등한 이익률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커다란 모험과 도박에 대한 성공에는 더욱 커다란 대가가 따라야 한다는 지극히 냉정하고도 자본주의적인 주장이다.

따라서 맥북에어는 순전히 가격 때문에 넷북이 아닐 수도 있다. 우수한 디자인과 가벼운 무게도 그런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전에 소니가 내놓은 바이오P라는 요상한 넷북을 본 적이 있다. 무게가 500그램을 약간 넘고, 바지 주머니에 넣을 수 있다는 광고를 한 작은 노트북이었다. 이 제품의 가격은 보통 넷북의 두 배가 넘었다. 순전히 디자인과 무게, 소니라는 브랜드의 가격이었는데 소니는 이것이 넷북이 아니라고 우겼다. 소니는 소비자들이 디자인 만으로 성능 뒤진 노트북을 사지는 않는다는 걸 알았고, 우리는 성능이 뒤지면서 말도 안되게 비싼 넷북도 있을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결론적으로 11인치 맥북에어는 애플이 고심해서 내놓은 넷북 구매자, 구매 예정자에 대한 대답이다. 끝까지 50-60만원짜리를 사야겠다면 타회사의 넷북이나, 자사의 아이패드를 사라. 하지만 돈이 문제가 아니라 가볍게 들고다니며 글도 편하게 쓸 무엇인가를 원하기에 넷북을 사려고 한다면? 그럼 돈 좀 더 쓰면서 넷북의 모든 특성과 아이패드의 장점을 다 가진 맥북에어를 사라.


이것이 바로 애플이 맥북에어를 통해 소비자에게 주장하는 강력한 메시지다. 아이패드가 돈 때문에 넷북을 가려는 가난한 사용자를 흡수한다면, 맥북에어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휴대성이 문제라는 넷북 사용자를 흡수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이런 잡스의 구상에 의해 둘로 갈라져 잠식당할 넷북 시장의 추이를 한번 지켜보자. 맥북에어는 결국 애플이 제안하는 매력적인 의미의 넷북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