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티스토리에 블로그를 처음 개설하면서 TV와 드라마를 다뤄보려고 했다. 일상적으로 보는 매체와 컨텐츠 속에서 무엇인가 다른 면을 보고 느끼며 다른 사람과 그것을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내가 그런 매체를 보는 방식은 그다지 사람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지 못한 것 같다. 오히려 나의 시선은 IT를 보는 데 더 유용한 관점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그래서 아마도 지금 내가 IT전문, 혹은 애플 전문 블로거로서 포스팅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지난 10월 10일 KBS에서 방영된 KBS 스페셜은 이런 의미에서 TV와 IT, 애플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전부 가지고 있었다. 제목부터가 <스티브 잡스의 애플, 혁신을 말하다.>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 방송내용을 다뤄보기로 하겠다.

이 방송의 예고편을 보면서 나는  과연 가벼운 편성을 해야하는 TV가 얼마나 깊이있고도 재미있게 애플과 잡스에 얽힌 모든 것을 분석하고 풀어나갈 수 있을까 생각했다. 기대도 꽤 했다. 그런데 막상 방송을 본 결과는 어느 정도의 만족, 그리고 가벼운 실망이었다. 궁금한 분은 KBS 아이디만 있으면 공짜로 볼 수 있으니 한번 보기 바란다. (KBS 스페셜)


공영방송이란 한계도 있고, 방영시간이나 기대 시청층의 문제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 방송은 상당히 적극적인 접근을 했다. 시작부터 아이폰에 비해 싸게 팔리는 피처폰, 삼성폰에 대한 광경부터 보여준다. 갤럭시S는 한대를 사면 또 한 대를 준다는 판촉부터 인상적이다. 그리고는 아이폰이 만들어낸 새로운 소셜 미디어, 소셜 마케팅을 언급한다.


대학가와 노인들에게도 부는 아이패드 열풍과 함께 애플이 제품에 접근하는 방법도 취재한다. 디자인, 그리고 편의성이 조화된 가운데 사용자를 묶어두는 효과까지도 언급한다. 스티브 잡스의 생애를 약간 언급하면서 서체라든가 아이폰 게임으로 성공한 기업 이야기도 나온다. 전반적으로 깊이는 부족해도 직접 찾아가 만나고 인터뷰하고 보여주는 생동감은 있는 방송이었다.

그런데 막상 이 프로그램은 이런 많은 좋은 시도와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잘 만든 방송이 아니다.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소재인 <애플의 혁신>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심도있게 파고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몇몇 국내 대학교수나 스티브 워즈니악의 한 마디, 혹은 일본의 애플 책 저자 하야시 노부유키, 애플의 전 직원 정도의 언급만 나열했을 뿐이다. 결국 최종적으로 내놓은 것은 <디자인>과 <일관된 사용자 경험> 이것의 기원이 <인문학>에 있다는 잡스의 언급 뿐이다. 게다가 마지막에 <잡스 이후>의 애플이 잘 되어 나갈 지에 대한 걱정을 해준다. 장황할 뿐이지, 어떤 확실한 결론이나 분석도 없이 그냥 스쳐지나갈 뿐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제작진과 필진이 애플의 혁신에 대한 깊이있는 고찰이 부족했다는 이야기다. 무난한 대답을 이끌어 무난한 프로그램을 만들었을뿐, 아! 이거 정말 좋은 거 봤구나. 오늘 새로운 걸 얻었구나. 라는 느낌이 없는 것이다. 부족하나마 이 블로그를 통해 내가 치열한 고찰을 한번 첨가해 보기로 하자.
 
KBS스페셜이 놓친 애플의 혁신은 무엇인가?

애플 혁신의 비결은 집요할 정도로 운영체제와 사용자 통제를 강화하는 데 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 두 가지는 마치 극약과도 같아서 엄청난 장점과 대단한 단점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마치 도박에서 올인 을 걸듯이 성공하면 초대박이지만 실패하면 그대로 쪽박이다. 중간이란 게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애플의 모바일 운영체제인 iOS는 사용자나 다른 업체가 절대 변형시킬 수 없다. 내부에서 어떤 가상머신을 돌릴 수도 없고 겉으로 나타난 조작이나 터치 방식에 자사의 방식을 첨가할 수도 없다. 기능향상을 위한 변형도 물론 안된다. 이러다보니 애플의 플랫폼은 편안하다. 일관된 방식으로 애플 혼자가 만든 방식이 관철되고 그 방식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변형의 여지를 안 주니 바이러스나 백신도 활동할 여지가 줄어든다(물론 점유율이 낮아서 그다지 안만드는 면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통제는 기술발전에 있어 애플 혼자의 역량에만 의존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애플이 채택한 방식이 표준에서 벗어나거나 도태되어 버릴 경우에는 사용자가 고립되어 버린다. 한때 애플은 파이어와이어를 USB대신 독점적으로 고집하다가 뒤늦게 라이센스를 풀고, 그것도 모자라 완전히 사장시켜버리기도 했다.
 
애플은 대신에 이런 통제와 운영체제의 폐쇄성 속에서 사용자를 즐겁게 해주려고 엄청나게 노력한다. 그것은 마치 잘 가꿔지고 관리된 거대한 테마파크와도 같다. 기본적으로 애플 소비자는 모두 그 테마파크에 돈을 내고 들어온 고객이다. 외부에 비해 너무도 잘 운영되고 깔끔하고 아름다운 모습과 기능에 모두 감탄한다. 그러나 이 테마파크가 실은 외부와 격리된 채 교류와 연락도 잘 안되며, 외부의 변화요소가 들어올 수 없는 갇힌 공간이라는 사실이 어둠처럼 존재한다. 결국 좋게 보면 천국 같은 테마파크지만, 나쁘게 보면 돈 받고 입장시키는 거대한 감옥이다. 마치 해골바가지의 썩은물도 어두울 때 마시면 감로수와 같듯, 천국과 감옥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애플은 혁신을 위해 소비자에게 자유를 버리라고 요구한다. 선택의 여지도 버릴 것을 요구한다. 우선 호환기종이 없기에 애플 제품만을 사서 써야 하고, 일단 사더라도 애플이 정한 방법 외에는 다르게 쓰지 말 것을 요구한다. 통제된 기능을 온 역량을 다해 개발하는 것이 애플의 성공비결이다. 그래서 그 경쟁회사들을 전부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애플의 전략이다.

KBS 스페셜은 이런 점들을 모두 놓치고 단지 피상적인 면만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그나마 오늘날 애플의 대성공 뒤에 있는 건 이전에 비해 획기적으로 낮아진 제품 가격이 있다는 것도 놓쳤다. 애플의 리사와 넥스트는 전부 시대를 앞선 혁신 제품이 이었지만 둘다 1만달러에 달하는 높은 가격으로 실패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서 멜 깁슨은 죽기 직전에도 오로지 <자유!>라고 외치고 죽었다. 그에게는 안락한 생활이라는 너무도 현실적인 행복보다 그저 이상에 불과한 자유가 중요했던 것이다. 반면에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 일행을 배신한 어떤 동료는 매트릭스 속에서 허상에 불과한 스테이크를 먹으며 <이게 가짜인거 알아요. 하지만 무슨 상관이에요. 이게 더 행복한데.> 이런 뉘앙스로 말했다. 사람이 사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고 애플의 혁신이 만든 빛과 그림자는 오늘도 많은 논란을 낳고 있다. 결국 선택은 소비자 개인이 하는 법이다.

애플의 혁신은 위대한 것이지만 그것에는 대가 역시 따른다는 것도 잊지 말자.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P.S: 제가 출간계약한 웅진갤리온 블로그에 새로운 포스팅으로 <아이패드는 최고의 게임플랫폼이 될 것인가?> 를 올렸습니다. 관심있으신 분은 클릭해서 봐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애플 비판만 하는 블로거 아닙니다. 이렇게 때로는 찬양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