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행하는 게임으로 <시드마이어의 문명>이란 게임이 있다.
벌써 5탄까지 나온 이 게임은 턴방식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탄탄한 구성과 역사적 재미를 자랑한다. 석기시대부터 시작해 자원을 모으고 정치제도를 선택하여 문명을 발전시키고 전쟁을 한다. 이웃나라를 정복하거나 외교적으로 굴복시키면서 힘을 키우다가 달로 이주하거나 모든 나라를 정복하는 등으로 게임의 끝을 볼 수 있다. 나도 한때 이 문명 시리즈를 열심히 했다.


문명 시리즈에서 가장 웃기고도 진기한 광경이 있다. 어떤 나라가 매우 빠르고 효율적인 운영으로 재빨리 문명을 발전시켜 근대화되는데, 어떤 나라는 비효율과 무능으로 인해 문명 발전이 느릴 경우다. 이렇게 되서 나중에 전쟁이 벌어질 경우에 한쪽에서는 탱크와 전투기를 몰고 나오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말에 탄 기사가 용감하게 창을 들고 달려드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이게 전쟁이 될 리가 없다. 그냥 학살이다.

오늘의 주제가 문명 게임이야기냐고? 아니 그건 아니다. 그냥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뜻으로 말한 서론이다. 그럼 본 뉴스를 우선 소개하겠다.

일본의 휴대폰 업체인 소니에릭슨이 10월 8일, 신제품을 발표했다. (출처: 포켓나우) / 번역: 클리앙 최완기님.




소니 에릭슨은 안드로이드 1.6을 장착한 XPERIA X8을 출하했다. X8은 3 인치 HVGA 디스플레이, 600MHz 프로세서, 3.1 메가픽셀 카메라, 블루투스, WiFi 등을 제공한다. 소니 에릭슨은 X8에 안드로이드 2.1 업그레이드를 제공할 것으로 알려졌다.

아주 짧은 뉴스다. 하지만 뭔가 느껴지는 게 있지 않은가? 지금 애플의 iOS가 4.2 베타까지 나오고, 모바일7이 발표되었으며, 안드로이드가 2.2 프로요를 넘어 이제 3.0 발표를 앞둔 시점에서 신제품의 운영체제가 무려 1.6이다. 국내에서 가장 늦은 편에 속하는 LG의 옵티머스조차도 이제 2.1 업그레이드가 완료된 시점에서 말이다. 결코 이게 2009년 뉴스가 아니다. 2010년 뉴스다!

이유는 있다. 소니에서 적용하고 있는 레이첼 UI라는 인터페이스 때문이다. 이 인터페이스 적용이 상위 버전에 원활하게 포팅되지 못한 것이 이유일 듯 하다. 어쨌든 이건 문제가 심각하다. 안드로이드 1.6이라면 지금으로부터 1년전에 탑재되었어야 할 버전이다. 이젠 해상도를 비롯해 스마트폰 사양이 점점 고급화되고 앱이 다기능화되면서 호환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소니 에릭슨, 시대에 뒤진 새 스마트폰 출시?

흔히 <형용모순>이라는 말이 있다. 본질과 정반대의 형용을 붙여서 결국 모순적인 단어를 만들어내는 경우다. 예를 들어 <느린 준마>라고 해보자. 준마 자체가 빠른 말이란 뜻인데 그 앞에 느린을 붙이면 이게 느린 말인지 빠른 말인지 모르게 된다. 따뜻한 엄동설한 이라고 해도 말이 안된다. 엄동설한이란 말 자체가 매우 추운 겨울인데 거기에 따뜻한이라고 붙이면 안되기 때문이다.
 
소니 에릭슨의 이번 새 스마트폰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첨단기기>라는 형용모순에 직면한다. 첨단기기라는 자체가 시대를 앞서가는 기기란 뜻인데 운영체제 때문에 그 앞에다 시대에 뒤떨어진 이란 형용사를 붙여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문명에서 모든 나라가 기관총을 가지고 전쟁하는데 느닷없이 돌도끼와 활을 들고 나온 용맹한 바바리언을 보는 듯하다. 웃음과 함께 서글픔이 느껴진다.
 

소니는 결코 누구를 뒤에서 따라가는 회사가 아니었다. 예전에 미국에서 PDA인 팜파일럿이 붐을 일으켰을 때, 2002년, 소니는 마그네슘 보디에 스위블 폴더 방식에 컬러스크린과 카메라까지 내장된 클리에NR70이란 엄청난 제품을 내놓은 적이 있다. 마치 스티브잡스가 맥북에어나 아이패드를 발표할 때만큼이나 대단한 개량이고 발전이었다. 운영체제도 독자적으로 팜OS를 라이센스 받아 일본식으로 개량하기도 했다. 그런 저력이 있는 것이 소니였다.

그런데 지금 소니에릭슨이 보여주는 이 시대에 맞지 않는 신제품은 그런 옛날과는 너무도 다르다. 격세지감을 느끼게 할 정도이다. 기업이 한번 뒤쳐지기 시작하면 얼마나 초라해질 수 있는지를 드러내는 것만 같다.


먹느냐, 먹히느냐. 한때 지구를 뒤덮은 식민주의 열풍 속에서는 단  두개의 선택밖에 없었다. 산업혁명과 기계문명을 흡수해 열강이 되든가, 아니면 그 아래서 신음하는 식민지가 되어야했다. 중간은 없었다.
마찬가지로 지금 IT를 휩쓰는 스마트폰 열풍속에서는 앞서나가느냐, 뒤떨어져 망하느냐의 선택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운영체제가 자리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소니에릭슨의 이 시대에 뒤진 스마트폰 출시를 보자. 어쩐지 독일 전차부대에 용감히 돌격하는 폴란드 기병대의 모습처럼 시대착오적인 어떤 슬픔을 느끼게 한다. 로망은 있을 지언정 그 결과가 너무도 뻔하기 때문이다. 부디 소니의 각성과 분발을 바라며, 국내업체는 이런 처지가 되지 않도록 정신 차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