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4가 드디어 국내에 발매되어 많은 소비자의 손에 들어갔다. 발매 행사도 좋았고, 손에 들어온 아이폰4의 성능에도 대부분이 만족했다. 파란 멍이 찍히는 카메라 불량이라든가, 약간의 데스그립 현상이 있었다는 사용자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한국에서 아이폰4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모 IT블로그에 올라온 댓글 가운데 이런 댓글이 있었다. 아이폰4의 안테나 설계결함인 데스그립 문제를 논한 내 포스팅을 본 사람 같다. 사실상 아이폰4의 데스그립은 어느 폰에나 있는 현상이고, 절대로 결함이 아니며, 단지 삼성에 놀아난 언론플레이라고 굳게 믿고 계시는 분이다. <과연 한국에서 아이폰4가 발매되면 자칭 IT전문블로거라는 니XX 는 어떻게 말할 지 궁금하군요.> 라고 말이다.


뭐, 세상에는 여러가지 관점이 있는 법이니까 굳이 그런 분에게 직접 뭐라고 반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런 열성적인 아이폰4 팬분들에 대한  대한 따뜻한 KT-애플의 메시지일까. 이번에 스티브 잡스가 공식 발표회를 열어 전세계 아이폰4 구입자에게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범퍼에 대해서, 한국 소비자만 특별취급해주겠다는 발표가 나왔다.

유언비어 통신은 아닌것 같다. 바로 아이폰4 국내 제휴 이통사인 KT의 공식 트위터이기 때문이다. (출처 : 한국 KT)


내가 알기로는 세계에서 유일한 조치다. 스티브 잡스가 원래 세계에서 가장 얇은 노트북이니, 세계에서 최초로 어떤 디스플레이를 채택했느니 하는 걸 좋아한다지만 한국에서 이런 세계 최초의 소비자지향형(?) 케이스 지급정책을 펼친다는 건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다.

며칠전에 일본에서 전용기를 통해 닌자표창을 가지고 가려다 세관에 제지당해 <다시는 일본에 오지 않겠다!>며 화를 냈다는데 (추가: 일단 애플의 공식해명에 의하면 이 헤프닝은 사실이 아니다) 혹시 돌아간 뒤에 일본과 한국을 헛갈린 건 아닐까? 아니면 <일본에 아이폰4 케이스 주지마!> 라고 말한걸 애플 직원이 헛갈려서 <한국에 아이폰4 케이스 주지마!> 라고 말한 게 아닐까? 별별 코미디 같은 생각이 다 드는 게 오히려 착잡하다.

사실 어차피 아이폰4를 사지 않은 사람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일이다. 고작해야 아직 20차 예약자 정도만 있는 한국 일부 소비자의 문제니 나같이 아이폰도 없고 아이패드나 사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의미도 없는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어쩐지 이 사태를 겪은 여러 소비자의 반응을 보니 인간 코미디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이 메시지를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네 가지가 있다.

1. 비록 KT의 발표라지만 공식이 아니고 그저 트위터 발표니 믿을 수 없다거나, 오보에 가까우니 곧 정정될 거라며 아예 믿지 않는 사람.

2. 저건 아무리 애플팬이라지만 말도 안된다며 화를 내는 사람.

3. 애플은 아무 죄가 없지만 중간에 있는 KT가 무성의하거나 교섭력이 떨어져 삽질을 하는 것이며, KT가 범퍼를 주기 싫어 애플과 상관없이 막고 있다는 사람.

4. 어차피 AS주체가 애플 코리아로 옮겨진 만큼 애플 코리아의 잘못이다. 보따리상 정도의 마인드인 애플 코리아 지사의 문제일뿐 애플 본사나 잡스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는 사람.

1번과 2번은 그런대로 이해가 가지만 3, 4번 반응은 참 쓴웃음을 짓게 했다.

나는 문득 군대 조직을 생각한다.
갓 들어온 이등병을 겁주고 어르며 온갖 욕을 다 하는 바로 위 일등병이 있다. 그리고 그 일등병을 실질적으로 지휘하는 상병이 있으며 최고 위치에 있는 병장이 있다.
 
이등병은 힘든 얼차려나 구타를 당하면 당연히 직접 자기를 때리고 욕하는 일등병을 욕한다. 좀 생각이 잇는 사람은 나직한 목소리로 <야! 애들 군기 좀 잡아!>라고 일등병에게 지시하는 상병을 탓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작 이등병이 맞고 있을 때 뒤에서 모른척 장난치고 있다가 끝나면 와서 초코파이도 주고, 담배도 주며, 상병과 일등병을 <그 놈! 원래 그래.>라며 욕도 해주는 병장에게는 눈물을 쏟으며 고마워한다. 실은 그 병장이 뒤에서 실실 웃으며 <저 이등병 놈 빠졌으니 한 딱가리시켜.> 라고 상병에게 말하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한국의 아이폰4 발매 연기사태, 아이패드 발매 미정, 이번의 범퍼 정책은 도저히 애플코리아와 KT단독으로 취할 수 없는 정책이다. 아파트 전세사는 사람에게 부동산이 전화걸어 계약기간 끝났으니 방 빼라고 했으면. 그게 집주인은 전혀 그런 생각이 없는 착한 사람이고, 부동산이 교섭력이 부족하고 성의가 없어 그런 것일까?

어찌됐든 애플 팬보이 대부분은 애플이나 잡스를 직접 욕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직접 욕하는 순간 그들은 팬보이를 그만 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떤 사태가 벌어져도 애플이 아닌 다른 목표를 찾는다. 애플만 아니라면 어디든 좋다. 그러니 애궂은 KT와 애플 코리아가 그 대상이 된 것이다. 이번 건으로 삼성을 공격할 순 없으니 말이다.

더구나 그들 대부분은 모순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지난 안테나게이트 때 전부 <아이폰4의 결함은 없다! 전부 언플이며, 설령 있다고 해도 다른 스마트폰에도 있는 현상이며 통화는 문제없이 된다. 따라서 결함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해왔다. 그런데 이번에 그런 그들이 무료 범퍼를 받으려면 애플 AS센터로 직접 가서 <내 아이폰4는 심각한 결함이 있어 범퍼가 없으면 안되요!>라는 증명을 해야 한다.

쿨하게 <내 아이폰4 결함 없으니 무료 케이스도 필요없어!> 라고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나머지 전세계 아이폰4 구입자들이 받은 혹은 받게될  공짜 범퍼를 굳이 받지 못하거나 돈주고 사려고 하니 어쩐지 억울하다.


아이폰4의 한국소비자 우롱? 슬픈 코미디인가.

이 얼마나 모순적인 상황인가? 그렇게 애플을 믿고 아이폰4를 신뢰해온 사람에게 오히려 무슨 사은품이라도 하나 더 챙겨주지 못할 망정! 자기 주장을 뒤집고 구차하게 직접 가서 사랑하는 제품의 결함증명을 몸소 하라? 그러면 겨우 생산원가 1달러짜리의 범퍼를 공짜로 드리겠다?


물론 이번 발표가 그냥 헤프닝이나 오해로 판명될 수도 있다. 그러나 본질이 무슨 변화가 있을까.

아마 이번 발표에서 물의가 일고 다시 애플이 정책수정을 해서 모두 범퍼를 주겠다고 하면 또다시 고마운 애플과 잡스, 몹쓸 KT와 애플 코리아가 될 것이다. 다 안다. 그래, 다 아는 수법이지만 늘 군대에서도 병장은 좋은 고참이었지 않는가? 애플은 언제나 좋은 친구일 것이고 악역은 그 아래의 두 회사가 다 해줄 것이다.


세상은 어차피 자기가 원하는 만큼만 보기 마련이다. 슬픈 코미디를 앞에 두며 나는 문득 찰리 채플린의 기묘한 미소를 떠올려본다.


P.S : 그저께와 어제 이틀 동안 제주도 여행을 갔다왔습니다. 관심주시고 달아주신 댓글에 답을 못해드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