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특정 회사나 특정 공모전만을 지칭한 글이 아닙니다. 공공의 문제를 지적해서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고자 하는 시사비평의 글입니다.)

세상을 날카롭게 지켜보고 그 안에서 문제점을 찾아서 지적하는 건 피곤한 일이다.

사람들 대부분이 좋은 소리만 듣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쓴소리를 해주는 친구가 진짜 친구라지만 대부분 쓴소리를 하게 되면 관계만 서먹서먹해진다. 언론의 비평은 도움이 된다고 강조하는 정부는 대체로 호된 비판이 나오면 도리어 언론이 너무 문제점만 썼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 '긍정적 마인드가 세상을 바꾼다.' 등등 긍정적으로 살자고 말하는 자기개발서도 많지만 사실 그 이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모른다. 우리 사회는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의 긍정에너지를 도리어 이용해 사기를 치고, 착취를 하는 사람이 더 잘 사는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준다. 어쩌면 긍정을 강조하는 시대흐름조차 사기꾼들이 자꾸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장사가 안되니까 일으킨 음모(?)가 아닐까 하는 시니컬한 의문까지 든다.

나는 한때 게임기획자를 꿈꿨다. 또한 실제로 게임업계에서 총합 1년 남짓을 기획자로 일하기도 했다. 나는 게임을 즐기고 사랑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도리어 게임업계에 만연된 여러가지 부조리와 횡포를 더 싫어한다. 이런 내가 어떤 뉴스를 들었을 때 다소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는 건 당연하다.


얼마전 나는 게임에 관련된 한 가지 평범한 뉴스를 접했다.

NHN㈜은 한국 게임 산업의 경쟁력을 드높이고자 'NHN 게임 문학상'을 신설하고, 오는 9월 17일까지 게임 시나리오 작품을 공모한다고 밝혔다.

NHN 게임 문학상은 게임이라는 친숙하고 즐거운 표현방식을 통해 잠재된 상상력을 계발하고 나아가 인문학적인 소양을 발굴하고자 기획된 공모전으로, 이번에는 게임 시나리오 창작 부분에 한해 작품을 공모한다.

제1회 NHN 게임문학상 심사위원 이인화 디지털스토리텔링학회장은 "영화 시나리오의 경우 매년 2000편 이상의 작품이 새로 만들어져 DB로 구축되고, 이 중 10여 편이 영화로 제작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게임 시나리오는 제대로 된 등용문조차 전무한 형편"이라며 "문화의 핵심 콘텐츠가 되고 있는 게임이 이번 공모전을 통해 탄탄한 창작 기반을 갖추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NHN 정욱 한게임 대표 대행은 "창의적인 게임 컨텐츠 생산과 유통 활로 개척을 통해 게임이 문화콘텐츠로 성장, 발전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기획한 이번 공모전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한다"고 밝혔다.

( 출처: 아이컬처뉴스 )

본래라면 게임에 관심이 많은 나는 이런 뉴스를 들었을 때 기대에 부풀어서 '재미있겠는데?' 라고 생각했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내가 이 뉴스를 보고 느낀 첫 감상은 아주 간단했다.

'해봤자 별 소용도 없을 공모전, 또 하네?'

주최측에는 다소 미안하지만 <제 1 회> 라고 멋지게 달려있고 새로운 <게임문학 공모전>이라고 되어 있지만 이건 해묵은 20년도 더 된 <게임 시나리오 공모전>과 별 차이가 없다. 게임문학상이라고 되어 있어 뭔가 신선한 느낌을 주지만 그럼 예전의 게임 시나리오는 문학이 아니었단 말인가?


영화 시나리오는 특별히 영화문학 공모전이라고 하지 않는다. 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이라고 한다. 당연히 문학이니까 그렇다. 게임 시나리오만 이제와서 문학으로 봐주겠다는 뜻인지, 아니면 뭐든 신선하게 보이려고 1회로 만들려다 보니 저리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예전부터 가끔 잊을 만하면 있어왔던 게임 관련 공모전이 주최측과 국가가 바라는 효과를 내 준적은 거의 없었다. 공모전에 입상한 작품은 항상 뭔가 재미도 없고, 수준도 그다지 높아보이지 않았다. 시나리오 부문은 실제 게임으로 구현할 가능성은 별로 없고 겉치레만 요란했다. 완성품인 게임 역시 상업성을 기대하며 약간 손봐서 시중에 내놓을 수준은 없었다. 전부가 그저 상금만 타고 조용히 끝났을 뿐이다.

유명 문학상이나 영화,TV 시나리오 공모전은 가끔씩 제대로 상업성과 문학성을 겸비한 작품이 나오곤 한다.  <XX문학상 수상작> 이란 타이틀을 달고 출간된 소설은 비교적 서점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반면에 내가 알기로 게임공모전 수상작들은 제대로 그 타이틀을 달고 시장에 나와서 히트친 예가 없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게임 공모전은 실효성이 없는 것일까. 여기에는 모든 공모전의 공통적 문제점과 한국 게임 특유의 문제점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실효성 없는 게임 공모전, 무엇이 문제인가?

1. 출품작의 저작권 보호대책이 미흡하다.

저런 공모전의 주최측은 정부나 공공기관인 경우가 드물다. 대개는 실제 게임 기업측이 대부분이다. 그 자체는 장점이지만 이 기업들의 공모전 출품작을 보는 태도가 문제다.

내가 문학계에서 들은 뒷이야기로 모 원로 작가는 신선한 아이디어가 고갈되면 문하생을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문하생들에게 수업을 시켜준다는 명분으로 습작을 써오게 한다. 습작이니까 당연히 문장도 떨어지고 구성도 엉성하다. 그러나 개인의 삶에서 나온 특유의 아이디어만은 살아있다.
그러면 그 작가는 이것도 작품이냐고 호통을 쳐서 꾸짖고는 나중에 그 작품에서 아이디어만 골라 자기가 따로 작품을 써서 발표한다. 당연히 그 작가의 필력과 기본기가 우수한 만큼 습작과는 비교할 수 없는 좋은 작품이 된다. 문하생은 스승이니까 이 사실을 알아도 항의하지 못하고, 작가는 마치 흡혈귀처럼 모자라는 아이디어를 신선한 피처럼 문하생에게 빨아 연명한다.

이번 게임 <문학> 상 을 생각해 보자. 출품작은 수상작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며 상도 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심사를 받기 위해 보여줘야 하며 반환은 당연히 안된다. 더구나 그 과정에서 일부 아이디어가 도용당한다 한들 어디 가서 항의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런 공모전에는 수상작 외 출품작의 저작권에 대해 아무런 보장도 규정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정말 실력있고 똑똑한 사람들은 이런 공모전에 응모자체를 하지 않는다. 정말 좋은 작품과 시나리오가 있다면 따로 출간하거나 다른 경로로 팔거나, 스스로 회사를 차려 게임화한다. 그러니 애당초 공모전에 좋은 작품이 모일 수가 없다.

2. 심사위원의 구성과 심사기준에 문제가 있다.

특별히 무슨 이런 공모전에서 뇌물이나 비리가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분명 비리도 있을 수는 있겠지만 내가 제기하고 싶은 건 특성을 무시한 심사다.

게임 시나리오는 엄밀히 말해 문학과 엔터테이먼트의 양쪽 특성을 다 가지고 있다. 두 요소 가운데 오히려 엔터테이먼트- 오락성의 요소가 더 강하다. 문학성 없이 오락성만 있는 게임은 팔릴 수 있지만, 오락성 없이 문학성만 있는 게임은 이미 게임도 아니다.

그런데 죄송한 말이지만 이런 공모전의 심사위원으로 게임에 대해 그다지 현장경험이나 조예도 부족한 분들이 선정된다. 단지 문학성만 풍부하게 있는 분을 명성만 봐서 심사위원에 앉히면 어쩌자는 말인가? 육회 품평회를 하겠다며 생선회 전문가를 불러놓고 심사를 맡기면 우수한 심사가 이뤄질 수 있겠는가?

특정한 예를 들긴 미안하지만 위에서처럼 아예 게임 문학이라고 하며 심사위원으로 소설가 출신을 앉히면 도저히 게임의 오락성에 대한 좋은 안목과 심사를 기대할 수 없다. 솔직히 이 글을 쓰는 나도 15년 출간 경력의 소설가다. 게임도 많이 해봤고 잘 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게임회사에서 오래전에 일도 해봤다. 그러나 내가 지금 일선에 있는 게임기획자나 현업 게임시나리오 작가, 혹은 현장 마케팅 전문가 들보다 더 오락성을 잘 심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상하건대 이런 방식의 심사위원 구성에서 뽑힌 작품은 오락성과는 거리가 먼 작품이 될 것이다. 문학성, 그것도 순수문학에 가까운 유려한 문장과 기본기는 충실한 작품이 뽑힐 가능성이 높다. <게임문학상>이라고 해놓고는 게임요소가 바나나우유속 바나나향 함량정도 들어간 <순수문학>에 상을 주게 될 확률이 크다. 그런 작품이 막상 게임으로 제작되어 시장에 나올 가능성도 적거니와 나와봤자 큰 기대는 할 수 없다.

3. 단순 1회성 행사로는 한계가 있다.

매번 이런 행사가 열릴 때마다 '이번 공모전을 계기로 발전이 이뤄지고...' 등등 거창한 명분이 내세워진다. 그러나 이런 부정기적이고 시스템화되지 않는 행사로는 진정한 발전은 없다.

예를 들어 한국 유소년 축구를 발전시키기 위해 어느 날 상금을 내걸고 전국 유소년 축구팀을 모집해 토너먼트 경기를 벌인다고 치자. 참가팀도 있을 것이고 우승팀도 있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나름 안 한것보다는 나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실효성으로 보았을 때 단기 행사는 별 도움이 안된다. 오히려 그 돈을 가지고 정기적으로 시스템화된 리그를 만들기 위해 세세한 각 유소년팀의 조직화를 하고 정기적인 체제를 구축하는 편이 훨씬 났다.

게임 공모전도 마찬가지다. 타이틀만 바꿔서 요란하게 상금 액수를 홍보하며 대회를 여는 것보다는 티는 안 나겠지만 그 돈으로 아마추어의 게임 시나리오 유통채널을 만들고 업체와 작가 사이의 정당한 거래 채널을 만들어주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


해결책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예를 들어 내가 쓴 게임 시나리오를 아이디어를 도용당할 위험없이 직접 NC소프트나 넥슨의 현업 기획자에게 보일 수 있고, 정당한 심사를 통해 상업성을 인정받으면 바로 협상을 하고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유통채널이 마련된다면 어떨까? 입상 상금  외에는 아무 것도 보장되지 않는 공모전에 비해 훨씬 메리트가 있지 않겠는가?

위의 공모전을 포함한 모든 게임 공모전은 나름 좋은 의도로 만들어지고 개최됐을 것이다. 그러나 여태까지 실효성을 얻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 원인이 무엇이고 개선점은 무엇인지 파악해서 변화를 줬으면 한다. 이대로라면 슬프게도 또 하나의 공모전이 조용히 입상자와 상금만을 내놓고 사라질 뿐, 정작 한국 게임계에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할 것 같다.

 관련된 주최측과 우리 모두의 인식전환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