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다소 옛날로 돌아가 <잡스이론>을 이야기해 보자.

사물을 이야기하는 관점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나는 앞선 <스티브 잡스가 빌게이츠에게 패한 이유는?> 이란 포스팅에서 비지니스 모델의 차이가 두 사람이 이끄는 회사의 운명을 갈랐다고 결론내렸다. 이것은 상당히 넓게 거시적인 관점에서 본 원인이다. 그런데 조금 범위를 좁혀서 인물을 제외한 제품 자체만으로 한번 놓고 보자. 

MS 윈도우가 애플 매킨토시를 이긴 이유는? 그 원인이 무엇일까?

엄밀히 말해서 매킨토시와 윈도우의 가장 큰 모티브인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는 애플에서 창안해낸 것이 아니었다. 실리콘 밸리의 한쪽에 있는 제록스의 팔로알토 연구소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주로 고가 워크스테이션을 만들던 제록스가 세운 이 연구소에서는 당시 바깥세상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개인용 PC 싸움과는 상관없이, 마치 파티를 하듯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서 놀던 중이었다. 바로 마우스라는 참신한 하드웨어(마우스 자체는 이 연구소에서 개발한게 아니다.)와 이것을 이용한 GUI기술이었다. 너무도 획기적인 기술이지만 당시로서는 고가의 워크스테이션에서나 가능할 만큼 무거웠고, 또한 상업성도 검증되지 않았다. 제록스 경영진도 이 기술에 관심이 없었다.

이대로라면 실험실 기술로 썩어갈 뿐 전혀 빛을 보기 힘들던 이 기술이 우연히 연구소를 견학왔던 스티브 잡스의 눈에 들었다. 당시 스티브 잡스는 애플 컴퓨터를 통해 엄청난 성공을 맛보고 있을 때였다.

<이것이 바로 미래다!> 라고 직감한 스티브 잡스는 이 기술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로 작정한다. 결과적으로 제록스의 많은 연구원들이 사직하고 애플에 이직했다. 또한 스티브 잡스는 제록스의 기술인 이 GUI를 거의 통째로 베끼다시피하며 새로운 운영체제를 만들었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새로운 운영체제를 제대로 구동시키기 위해서는 고가의 하드웨어가 필요했다. 또한 운영체제 개발비도 적지 않게 소요됐다. 하지만 잡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미래의 표준이 될 이 기술을 일단 제품에 실어 내보내기만 하면 소비자는 무조건 구입하고자 안달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이 운영체제는 애플3- 공식적으로는 리사(Lisa)라 이름붙은 하드웨어와 결합되어 선보였다. 무려 1만달러라는 높은 가격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대단한 일을 해냈다. 마치 신들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준 프로메테우스처럼 제록스 연구소에 잠들어있던 GUI란 혁신기술을 꺼내 대중에게 전해준 것이었다. 다만 스티브 잡스란 이름의 프로메테우스는 자선사업가가 아니었다. 그는 문명이란 불을 얻고자 모여든 사람들에게 1대당 겨우 1만달러를 요구했을 뿐이다.

이게 뭐 대단한 가격이라고? 이런 놀라운 혁신을 위해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이 정도는 기꺼이 내야 해!

잡스는 내심 이렇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당시 컴퓨터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은 이 혁신기술의 가치를 그렇게 높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비싼 값을 지불하고 문명을 손에 넣느니 차라리 파란 화면에 글자를 찍어서 조작하는 원시인으로 남길 원했다. 때마치 터진 하드웨어 결함문제와 겹치며 리사는 처절하게 실패했다.

물론 리사의 실패가 곧 GUI의 실패를 뜻하지는 않았다. 다만 대중은 좀 더 싼 값을 원했을 뿐이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좀더 싸고 간략한 하드웨어로 GUI를 구현하는 매킨토시 프로젝트가 시작됐고, 잡스는 그 중간에 그 프로젝트의 총책임자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천달러의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매킨토시를 발표했다.


당시 시장을 지배하던 IBM-PC의 가격보다는 비쌌지만 이 정도면 감내할 수 있는 가격이었다. 1984년을 패러디한 슈퍼볼 타임의 유명한 맥광고를 시작으로 매킨토시는 성공적으로 시장에 데뷔했으며 돌풍을 일으켰다. 리사의 실패에 주춤했던 잡스의 기세가 다시 거침없이 살아났다. 그러나 이때 잡스는 두 가지 사건에 의해 결국 인생 최고의 위기를 맞는다.

첫번째는 그동안 애플 컴퓨터에 베이직 언어와 오피스 프로그램을 공급하던 하청업체(?)인 마이크로 소프트(MS)사장 빌 게이츠가 만들었다. 빌 게이츠는 매킨토시의 GUI를 모방한 운영체제 윈도우를 내놓았다. 처음 나온 1.0 은 조잡하고 엉성한 짜임으로 비웃음속에 실패했지만 굽히지 않고 점점 버전업 한 뒤 나온 윈도우 3.1은 대성공을 거뒀다.

두번째는 잡스가 애플 경영을 위해 외부에서 영입한 존스컬리 회장이 이사들과 짜고 잡스를 쫓아낸 일이었다. 지나치게 모험적인 연구개발과 도박적인 운영이 회사의 존립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였다. 스티브 잡스는 자기가 만든 회사에 쫓겨나는 수모를 당하게 된다.

이 두 가지 사건으로 인해 애플은 갑자기 방향을 잃고 표류한다. 짝퉁인 MS 윈도우가 시장을 석권하는 동안, 오리지널인 매킨토시는 점점 점유율을 잃어갔다. 잡스가 나간 뒤 별반 새로운 제품을 내놓지 못한 애플은 매킨토시 하나만을 적당히 변형시켜 내놓으며 고가정책으로 남아있는 애플 팬보이와 DTP등 전문직 사용자의 주머니를 털며 연명했다.

여기서 잠시 생각해보자. 윈도우와 매킨토시라는 양쪽 운영체제 혹은 시스템의 승부를 결정지은 주체는 누구였을까? 빌 게이츠? 아니면 스티브 잡스?

아니다. 둘은 그저 상품을 만들어서 시장에 내놓은 사람일 뿐이다. 최종 결정은 누가 했을까. 바로 소비자다. 즉 소비자가 이 승부를 결정지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제록스가 방치하다가 빼앗긴 아이디어는 애플이 고급명품으로 만들었고, 그 명품의 짝퉁을 팔던 MS가 이겼다.



무엇때문일까? 왜 소비자는 원본이 아닌 짝퉁을 선택했던 것일까?

간단하게 생각해보자. 대중이 정말 가지고 싶어하던 미래기술인 GUI는 제록스에서 잠자고 있었다. 그걸 본 스티브 잡스는 꾀를 내어 그것을 훔쳐냈다. 그리고는 애플에서 독점한 다음 비싼 값으로 돈 많은 사용자에게 팔아 부자가 될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이것을 유심히 지켜보던 빌 게이츠는 다시 애플에게서 이걸 훔쳐서는 싼 가격을 매겨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용자와 돈 있는 기업에게 팔았다. 애플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단단히 결합시켜 단 한 카피라도 누군가 돈 안 내고 가져가지 못하게 불법복사에 대한 빗장을 걸었다. 반면에 MS는 의도적으로 돈없는 사람에게 불법복사를 통해서라도 가져가도록 놓아두었다.

상식적으로 보자면 애플 것을 MS가 모방했으니 MS가 나쁜 놈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애플도 제록스를 모방한 것이 아니었던가?

역사에 만일은 없다지만 만일이란 가정을 한번 해 보자.

애플이 계속 저 GUI를 독점하고 놓아주지 않았다면 지금 컴퓨터 산업이 더 발전했을까?

아마 돈 있는 자는 지금의 OSX보다 더 좋은 걸 쓰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3차원 아이콘이 날아다니는 그야 말로 눈이 튀어나올 혁신기술을 경험하고 있을 지 모른다. 다만 대당 1만 달러쯤 하는 가격에 말이다.
돈 없는 자는 마치 슬럼가처럼 도스의 확장판같이 칙칙하고 원시적인 인터페이스, 터미널 리눅스를 연상케하는 운영체제를 쓰고 있을 것이다.

애플은 마음놓고 고가 정책을 밀고 나갔을 테고, 더욱 많은 돈을 벌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돈 없는 컴퓨터 사용자를 쳐다보며 외칠 것이다.

더 편해지고 싶다고? 그럼 돈을 내! 혁신에는 돈이 든다고! 난 절대로 강요하지 않았어. 네가 선택한 거야!

이것이 좋은 미래일지, 아니면 안 좋은 미래인지는 각자 알아서 판단하기 바란다. 다만 어느 시대든 돈 많은 사람이 살기 힘든 세상이란 없다.

어쨌든 미래는 스티브 잡스와 애플이 원하는 대로 나아가지 않았다.


MS는 애플이 매킨토시란 하드웨어에 단단이 고정시켜놓은 GUI를 훔쳐 빼냈다. 그리고는 아무 PC 호환기종에든 쓸 수 있는 윈도우란 유사품을 만들어냈다. 또한 이렇게 빼내진 GUI를 개인 대중은 불법복사라는 방법으로 훔쳐갔다. 결말로 보자면 대중은 애플 것을 직접 훔칠 수 없으니 MS에게 중간 역활을 시킨 것이다. 대중은 MS에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로 그 공로를 보상했다.

MS가 사람들을 이용한 걸까, 아니면 사람들이 MS를 이용한 걸까?
나는 시장의 매커니즘을 볼 때, 대중의 욕구가 MS를 움직였다고 본다. 사실 이때 아미가나 다른 동시기 컴퓨터들도 슬쩍 매킨토시의 GUI를 베끼고 있었다. 최종적으로 성공한 것이 윈도우 였을 뿐이다. 애플 팬보이만 빼고 대중은 이미 애플의 독점 고가 정책에 저항하며 <의적>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었던 셈이다. 마침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의적>이 MS였다. 아마도 MS가 하지 않았다면 아미가나 다른 컴퓨터가 선택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모방이나 불법복사가 자본주의나 경제 정의상으로 옳은 것인지는 잠시 접어두자. 모순적인 말이지만 설령 불법일지라도 사람들 대부분이 해당 불법을 저지르게 된다면 더이상 그것은 불법이 아니게 된다. 또한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대중은 그렇게 움직인다.

MS 윈도우는 결국 사과를 훔친 의적 <로빈훗> 이었던걸까? 아니면 빌 게이츠는 대중에 강요에 못이겨 스티브 잡스 머리위의 사과를 쏘아 맞춘 사냥꾼 <윌리암 텔>이었던 걸까?

스마트폰 시장도 마찬가지다. 이익에 너무 집착하는 이통사의 지나친 간섭과 지배가 싫은 대중은 그것을 타파해줄 누군가를 원했다. 따라서 때마침 아이폰을 들고 나서준 애플을 잠시 지배자로 만들어준 것이다. 그러나 최종 승리자가 과연 애플일지는 미지수다. 애플 역시 대중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 버림받을 수 있다.

MS 윈도우가 애플 매킨토시를 이긴 이유는? 높은 가격의 운영체제를 싸게 쓰고자 하는 대중의 요구 때문이었다. 분명 매킨토시는 더 좋고 편하다. MS 윈도우는 불법복사로도 쓸 수 있지만 수준도 떨어지고 불편하다. 하지만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스스로 대중을 이끌었다고 생각하는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조차도 어쩌면 단지 대중의 이용물이었는지 모른다. 경주마처럼 어느 한쪽이 대중이 원하는 것을 내놓으면 성공하지만 내놓지 못하면 실패하는 그런 이용물 말이다. 윈도우가 매킨토시보다 보다 원하는 물건에 가까웠기에 대부분의 사용자는 윈도우를 선택했다. 그것이 끼워팔기니 어쩌니 하는 논란은 의미가 없다.

마지막으로 빌게이츠와 스티브 잡스를 다룬 영화 <실리콘 밸리의 해적들> 한 장면을 소개한다.


스티브 : 우리 직원들이 일본에서 가져온 NEC야. 마이크로소프트 프로그램이 깔려 있더군. 우리 것과 거의 똑같은 프로그램 말야.
빌 : 세상엔 유사한 게 많아, 스티브.
스티브 : 유사? 이건 도둑질이야.
빌 : 모든 자동차엔 핸들이 있지만, 아무도 자기 발명품이라곤 안 해.
스티브 : 우린 계약서에 서명했어.
빌 : 좀더 주의깊게 읽었어야지.
스티브 : 어떻게 된 거야? 동업자인 줄 알았더니 사마귀였군. 먹이를 유혹해 산 채로 잡아먹는 사마귀 말야.
빌 : 좀 솔직해질 수 없나? 우린 둘 다 부잣집 바로 옆에 살고 있어. 제록스 말야. 그 부잣집 대문은 항상 열려있지. TV든 뭐든 맘대로 훔쳐가라고 말야. 자네가 그 집에 들어갔을 땐 내가 선수를 친 뒤였어. TV는 내 손에 있다고, 스티브! 그래서 화가 난 거지? 불공평해! 내가 먼저 훔칠 생각이었단 말야. 한발 늦었어.
스티브 : 우린 너희보다 나아! 제품이 더 뛰어나다고!
빌 : 이해를 못하는군, 스티브. 그런 건 상관없어!

적어도 나는 이 때 빌 게이츠가 좀 더 대중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읽어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오로지 대중인 소비자의 요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때 대중은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부담없는 가격의 GUI 운영체제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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