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도요타의 혁신경영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아마도 텔레비젼에서 였을 거다. 도요타의 노조가 한국기업과는 달리 임금투쟁을 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회사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논의하는 모습을 인상깊게 보여주었다. 이후 미국 시장에서의 선전과 함께 도요타야말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회사가 되었다. 물론 그때도 일본 네티즌이 많이 쓰는 2ch에서는 도요타가 전형적으로 하청업체를 착취한다는 부정적 여론이 있긴 했지만 묻혀버렸다.

그런데 미국 시장에서 도요타 자동차의 치명적 결함을 회사가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삽시간에 도요타는 사상 최대규모의 리콜과 함께 신뢰도가 무너지며 최악의 기업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아무도 도요타의 장점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서점가에 그득했던 도요타 경영학 책도 전부 없어졌다. 도요타는 몰락했다.


핸드폰에서 모토롤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때 얇고 멋진 휴대폰 <레이저> 시리즈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모토롤라의 기세는 대단했다. 이때 한 신문기사에서는 얇은 숫자패드를 개발한 한국중소기업이 삼성등 한국 대기업에게 외면당하고는 모토롤라에 가져가서 채택되어 수출하고 있다는 말과 함께 한국 기업들의 비전없음을 꼬집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토롤라도 이후 몰락에 가까운 추락을 거듭했다. <레이저>에 안주한 나머지 새로운 기술개발에 소홀한 것이 원인으로 꼽혔다. 지금 모토롤라는 뒤늦게 <모토로이>란 안드로이드폰을 내놓으며 재기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이렇듯 요즘 기업들은 한시라도 안심할 수 없다. 내가 1등이라고, 혹은 현재 잘나가고 있다고 잠시라도 안주하거나 태만하면 안된다. 그러다 약간이라도 혁신에 뒤쳐지면 그야말로 <한방에 훅가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휴대폰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1위인 핀란드 굴지의 기업 노키아가 그렇게 된 것 같다. 관련 기사를 보자.

6월 7일,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에 따르면 노키아는 올해 실적을 대폭 하향 조정했다. 2분기 매출을 67억 유로 이하로 잡았으며 영업이익률은 9%이하일 것이라 예상했다. 노키아는 지난 4월 올해 영업이익률을 기존의 11∼13%에서 9∼12%로 하향 조정한 바 있어 충격을 줬다. 이날 노키아의 주가는 헬싱키시장에서 8.4% 떨어진 주당 8.91달러를 기록했으며 시가총액은 블랙베리의 리서치인모션(RIM) 보다도 떨어졌다.

결론은 1위 기업 노키아가 계속 순이익이 감소하고 있으며,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어서 블랙베리라는 특화 스마트폰 하나에 기대는 기업보다 가치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한때 삼성이 휴대폰 시장에서 프리미엄 이미지로 무섭게 치고 올라가던 때조차도 유럽과 북미 시장에서 노키아의 아성은 굳건했다. 나는 이 무렵 텔레비전에서 작고도 강한 나라 핀란드의 저력을 소개하는 다큐에서 노키아의 모습을 보았다. 다큐에서 본 노키아는 연구인력의 관리라든가, 여러가지 면에서 훌륭한 기업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전부 결과론일 뿐이다. 노키아가 갖춘 만큼 다른 기업도 시설은 다 갖추고 있다. 노키아가 노력하는 만큼 다른 기업도 노력한다. 중요한 건 노력의 장기적 방향이 얼마나 비전이 있는가 하는 경우다. 기사에서는 노키아의 이런 추락원인을 이렇게 분석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노키아의 몰락이 안전한 중저가형 시장에만 안주해 스마트폰 경쟁에 대처할 프리미엄급 스마트폰을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아이폰과 안드로이드가 오픈마켓을 장악하고 증강현실 등 문화트렌드를 바꿀만한 막강한 애플리케이션들을 내놓는 동안 노키아의 심비안OS를 내세워 오직 음악 기능에만 몰두했다. 프리미엄급으로 내세운 N8모델조차 디스플레이가 3.5인치에 지나지 않아 멀티미디어 기기로 충분히 활용하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달 올리-페카 칼라스부오 노키아CEO "경쟁을 하기엔 해야할 일이 너무 많았다"며 스마트폰 전략 부재를 시인하기도 했다.

말이 쓸데없이 긴데 한마디로 노키아의 추락원인은 <좋은 스마트폰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재도 못만들고 앞으로도 별로 가망이 없다. 그러니 실적도 안좋고 미래전망을 반영하는 주가도 곤두박질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굳이 노키아에만 해당되는 일인가?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2010년 세계 휴대폰 시장점유율은 노키아가 35.0%의 점유율로 1위이다. 그 뒤로 삼성이 20.6%, LG가 8.6%의 점유율로 각각 2위와 3위다. 블랙베리 제조사 리서치인모션(RIM)이 3.4% 점유율로 4위가 소니에릭슨 (3.1%)과 모토로라(3.0%)로 각각 5위와 6위를 차지했다. 애플은 지난해 1분기 1.5%에서 올해 1분기 112.2%나 상승한 2.6% 점유율 세계 휴대폰 시장 점유율 7위에 있다.

현재 1위 기업이기에 노키아가 가장 충격을 많이 받고 있을 뿐이다. 그 뒤를 따르고 있는 삼성과 LG 역시 노키아에 이어서 직격탄을 맞을 것이다.

IT와 휴대폰에 대해 잘 모르는 누군가는 좀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아무리 추락한다고 해도 지금 35퍼센트나 차지한 노키아와 삼성, LG를 합치면 60프로가 넘는 점유율의 기업들이다. 어떻게 이제 겨우 7프로 차지한 애플에게 밀리며 위기와 몰락이라는 말이 나올까?

답은 스마트폰이라는 특수성에 있다. 스마트폰은 단순한 휴대폰이 아닌 컴퓨터에 가까운 기능을 넣은 첨단 단말기다. 이 스마트폰을 사는 사람이야 말로 가장 돈이 많고 소비가 왕성한 계층이다. 공짜폰이나 저가폰을 사서는 꼭 필요한 통화나 하는 외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저개발국이나 저소득계층의 점유율은 자본주의 시장특성상 의미가 없다.


가장 돈이 되는 계층이 사고 있는 것이 스마트폰이다.
이 계층은 이전에는 그냥 프라다폰 같이 외견만 좋은 프리미엄폰 시장에 머물렀다가 대거 스마트폰으로 이동하고 있다. 더구나 일단 스마트폰이 유행을 타기 시작하자 약간이라도 여유가 있는 계층이 전부 이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러니 노키아든 삼성이든 기존의 점유율로는 도저히 안심할 수가 없다. 최악의 경우는 가난한 계층만 제외한 전부가 스마트폰으로 갈아타면서 애플 등으로 몰려갈 수도 있다. 통화품질을 기존의 이통사가 대부분 책임지고 보증해준다면 휴대폰에서 단순한 기업 브랜드는 별 의미가 없다.


노키아의 몰락에서 삼성이 얻어야할 교훈은?

이가 없으면 잇몸이 시리다는 속담이 있다. 1위 기업이던 노키아가 몰락하면서 삼성만 안전할 수는 없다. 전세계에서 일제히 외면당하고 싶지 않다면 차별화된 길을 걸어야 한다. 노키아는 지금 안드로이드폰 등으로의 순조로운 이행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경쟁을 하기엔 해야할 일이 너무 많았다.>는 노키아 CEO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모든 창의력과 여력을 오로지 하나의 플랫폼에 집중시킨 <선택과 집중>의 애플 아이폰에 비해 이미 둔해진 몸집의 공룡 노키아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했으며 아무것도 집중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삼성 역시 세계시장을 상대로 너무도 다양한 플랫폼과 다양한 기능을 내놓으면서 기업역량이 낭비되고 있다. 현지화라든가 다양성은 좋은 것이지만 삼성도 애플처럼 때로는 하나의 주력제품에 <선택과 집중>을 할 필요가 있다. 공격적인 혁신이란 때로는 선택과 집중에서 나온다. 노키아의 CEO가 한 저 말은 현재 삼성이 처한 위기상황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삼성도 전체적 역량에서는 결코 애플에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는다. 소프트웨어적인 면이 부족하고 혁신기업이 아니라는 약점이 있지만, 가전제품에서 반도체, 항공기 분야까지 다방면의 소재기술과 전자기술을 보유했다는 장점도 있다.

좀 과장하면 소비자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항공기 티타늄으로 케이스를 만들고, 잠수함용 방음기술을 장착한 휴대폰도 만들수 있다. 그렇지만 현재로서는 선택과 집중이 없기에 이들 기술이 유기적으로 결합하지 못하고 그저 관련분야에서 갇혀있다. 그것을 자유롭게 해방시키면서 한 가지 플랫폼에 창의적으로 기술력을 집중하지 않으면 결코 애플을 따라잡을 수 없다.

부디 삼성이 노키아의 몰락에서 교훈을 얻어 더욱 발전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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