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엔비디아]


IT업계와 게임업계에는 다른 산업계와 다른 흥미로운 특징이 있다. CEO가 직접 공식적인 발표 자리에서 어떤 성능을 약속한다. 그러나 그걸 못지킨다고 해서 특별히 격렬한 비난을 받거나 시장의 신뢰를 잃는 상황은 거의 벌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업체 대표가 다음 신차에 8기통 엔진을 장착하겠다고 말하고는 실제로는 6기통만 장착한다면 엄청난 비난에 직면할 것이다. 그런데 그래픽카드 업체가 다음 제품은 기존 제품의 2배 성능을 낼 거라고 말했는데 실제로 1.5배만 나온다고 해서 많은 비판을 받지는 않는다. 실망은 하겠지만 혁신은 원래 어려운 것이고 노력했는데 뭔가 잘 안됐나보다 하는 정도로 넘어가는 게 보통이다.

그래픽카드(GPU)시장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엔비디아의 최근 행보가 재미있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지포스나우(GeForce NOW)에서 곧 수십억대의 장치에 지포스 RTX 4080급 게임을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지포스나우는 엔비디아에서 제공하는 스트리밍게임 서비스이며 사용자가 각자 구매한 PC 게임을 클라우드에 설치해 실행하게 된다. 

엔비디아는 여기서 월정액 19.99달러로 사용하는 지포스 나우 얼티밋 멤버십은 사용자를 대상으로 이런 빠른 서비스를 할 예정이라 밝혔다. 클라우드 게임의 기준을 높여 집에 설치된 게임을 직접 즐기는 로컬 게임 경험에 가까워지는 게 목표다. 

얼티밋 회원은 지포스 RTX 4080 성능을 통해 포탈 위드 RTX(Portal With RTX)같은 인기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엔비디아 리플렉스가 추가된 지포스나우는 클릭 투 픽셀 대기 시간을 40밀리초 미만으로 단축할 수 있다. 현재 지포스나우 RTX 3080 회원은 얼티밋 멤버십으로 즉시 업그레이드되며, 이달 말 서버 출시가 시작될 때 클라우드에서 지포스 RTX 4080의 모든 성능을 쓸 수 있을 거라는 설명이다.

엔비디아의 발표 대로 모든 게 잘 구현된다면 확실히 게이머들에게는 매우 좋은 서비스 하나가 탄생하게 된다. 지포스 나우는 최근 지원하는 게임 숫자가 1,500개를 넘어섰다. 질적으로도 일렉트로닉 아츠, 유비소프트 같은 상위 퍼블리셔의 히트작 등을 포함하며 포트나이트, 원신 같은 100개 이상의 무료 게임도 포함된다. 이들을 매우 빠른 처리속도로 고화질 옵션으로 처리해 고속 스트리밍해 줄 수 있다면 아직 초기단계인 스트리밍 게임 시장이 대확장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런데 과연 엔비디아가 발표대로 지포스나우에 RTX4080급 성능을 제대로 제공할 수 있을까? 필자의 예상으로는 반드시 그렇게 되지는 않을 거라 본다. 엔비디아가 담대한 구상을 가지고 투자를 할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까지 스트리밍 게임시장을 보면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는 무한정의 투자가 이뤄진 적은 없기 때문이다.

지포스나우는 기본적으로 구독형 서비스이며 규모의 경제에 크게 좌우되는 구조다. 엔비디아는 게임 구입이나 그 안의 아이템 등에 대한 어떤 이익도 가져가지 않는다. 미리 설비를 갖춰 놓고 사용자의 월정액에 의지해 수익모델을 구축한다. 그런데 처리능력을 비롯한 서버 장비를 사용자 기기 수십억대 용량으로 확대하려면 막대한 투자와 시스템적 시행착오가 요구된다. 

사용자의 호응을 얻으면 이 과정이 잘 굴러가며 선순환으로 해결될 것이다. 반면에 가입자 확보나 반응이 부진하면 동력을 잃기 쉽다. 투자가 충분하지 않으면 사용자가 잘 안 모이지만 반대로 사용자가 잘 안 모이는데 투자만 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일까. 엔비디아는 플랫폼 라이벌이 될 수도 있는 밸브와도 협력하려 하고 있다. 엔비디아 관계자에 따르면 엔비디아와 밸브 모두 크로미움 브라우저에서 실행하는 지포스나우 성능 향상에 관심이 있다고 한다. 스팀 덱용으로 전용 앱을 내놓을 계획은 없지만 리눅스를 쓰는 스팀덱에서의 스트리밍 게임 성능을 향상하려면 불가피하게 엔비디아가 리눅스 관련 드라이버 개량에도 나서야 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리눅스 드라이버에 무관심했던 엔비디아가 갑자기 관련역량을 끌어올리기도 쉽지 않다. 

어쨌든 엔비디아는 자사의 미래 비즈니스 모델을 위해 과감히 스트리밍 게임 시장을 크게 열어가려 노력하고 있다. 일단 큰소리는 쳤지만 실제로는 기대에 좀 못미칠 수도 있다. 다만 서두에 밝혔듯 IT와 게임 시장에서는 약속을 못지켰다는 사실보다는 크게 시도했다는 점을 더 중시한다. 지포스나우가 아직은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스트리밍 게임 시장에 큰 혁신을 만들어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