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이론>을 이어서 이야기해 보자.

앞선 글에서 나는 다시 애플로 복귀한 스티브 잡스가 성공을 위해 과감히 소니식 비지니스 모델을 도입했다고 말했다. 그런 소니식(혹은 일본식) 비지니스 모델은 또한 폐쇄적인 구조를 동반한다. 이 때문에 잡스는 스스로의 자유주의, 개방주의 신념조차도 일정부분 버렸다.

말하자면 현재 애플의 스승은 바로 90년대의 소니였던 셈이다. 그런데 현재 소니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다른 의견이 없을 만큼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반면에 비니지스 모델을 따라서 배운 잡스의 애플은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이건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스승이 몰락하고 제자만 급성장을 한 이유가 무엇일까?




비지니스 모델로 본 소니와 애플의 공통점을 들겠다.

1. 특정 제품만이 아닌 브랜드 전체 이미지를 고급화시킨다.
2. 주력 분야에 있어서 주변기기 전체의 라인업을 갖춘다. 음악기기가 있으면 이어폰부터 시작해 주변 악세사리를 늘려나간다. 
3. 특유의 독점적 표준이나 독점 기술을 이용해서 타사 제품과의 호환은 어렵게, 자사제품사이의 편의성은 극도로 좋도록 만든다.
4. 혁신적 기술이나 대담한 아이디어를 빠르게 제품에 적용한다. 그것을 통해 업계전체를 리드하는 제품을 쓰고 있다는 우월감을 소비자에게 심어준다. 


이 외에도 상당한 분야에서 둘은 공통점이 있다. 이런 모습은 지금에 와서도 그리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차이점은? 소니와 애플, 두 회사의 운명을 가른 선택은 대체 무엇이었던 걸까?  두 회사의 빠르고도 현명한 선택을 요구했던 상황을 비교하면서 말해보겠다.
 
첫번째로 90년대의 소니는 당시로는 가장 앞선 기술인 트리니트론 브라운관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통상 유리 구체를 잘라서 만드는 당시 브라운관 디스플레이는 일명 <뽈록이>라 불릴 만큼 화면이 평평하지 않았다. 때문에 일종의 렌즈 원리에 의해 실제 화면이 부풀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는 등 왜곡이 있었다.
트리니트론 방식은 구체가 아닌 원통을 잘라서 만드는 방식인데다 주사방식을 비롯해 몇 가지 분야에서 독특한 기술이다. 때문에 화면 전체가 매우 선명하고도 덜 왜곡된 평면으로 보일 수 있었다. 소니는 이 기술을 바탕으로 모니터와 텔레비전 시장에서 압도적인 기술력을 자랑하며 명품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어 미국의 제니스를 인수한 LG에서 완전히 평평한 유리판을 이용한 플래트론 방식이 나왔다. 그것만으로도 소니는 평면 경쟁에서 밀렸다. 게다가 쉴새도 없이 LCD라는 저전력, 고효율에 디지털로 구동되는 디스플레이 기술이 대두됐다.
누가 봐도 아날로그 브라운관으로는 미래경쟁에 가망이 없었다.




여기서 소니는 결정적으로 나쁜 선택을 한다.
자사의 트리니트론 기술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LCD쪽 기술연구와 양산에 소홀했다. 한편으로는 단숨에 미래기술을 휘어잡겠다는 결심으로 AMOLED 연구에 집중했다. 아마도 트리니트론의 수명을 최대한 길게 끌면서 벌어낸 시간동안 AMOLED를 실용화시켜 보겠다는 계산인 듯 했다.


결과는 완전히 실패했다. 아날로그인 트리니트론 기술은 어느순간 완전히 외면받았다. 게다가 AMOLED는 지금도 채산성이 맞는 정도로 상업적인 대형 스크린은 만들지 못하고 있다. 결국 소니는 관련기술이 전혀 없는 상태로 LCD시대를 맞고 말았다. 할 수 없이 소니는 처음엔 일본 내 디스플레이 업체에게, 나중에는 한국의 삼성에게 패널을 공급받으면서 독자적 패널은 전혀 생산하지 못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은 애플도 겪었다. 나올 때는 정말 첨단 운영체제였던 매킨토시의 시스템7이 점차 노후화된 것이다. 시스템9까지 개량되긴 했지만 16비트 커널을 베이스로 한 이 운영체제는 잦은 충돌과 오류도 인해 도저히 새로 나오는 하드웨어에 적합한 성능을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 수도 없었다. 그나마 맥을 사는 유저나 업체는 이 운영체제에 기반한 전자출판이나 각종 프로그램의 호환성을 믿고 있다. 이들에게 호환성을 보장해주지 못하면 아무도 사지 않는 컴퓨터가 된다. 하지만 호환성의 근본이 되는 커널을 바꾸지 않고 미봉책으로 개량해서 대응하면 완전히 쓰레기 운영체제가 되어 버린다.

여러가지 32비트 운영체제와 심지어 윈도우NT의 라이센스까지 고려하던 애플이 내린 결단은 유닉스에서 갈라져나온 <넥스트스텝>이었다. 이것은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떠나있는 동안 천문학적인 자금을 들여서 만든 운영체제다. 완전히 32비트로 잘 코딩된 커널을 가진 이것을 맥 용으로 옮겨서 차세대 운영체제로 삼는다는 선택을 했다.

당연히 이전 소프트웨어의 호환성 문제가 대두됐다. 커널이 완전히 다른 이질적인 운영체제이니까 완벽한 호환이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애플은 기존 구입자의 반발을 무릅쓰고 부분적인 호환만을 제공했다. 일종의 애뮬레이션 API를 통해 느리고 불완전한 호환성을 제공하는 것만으로 하고, 완전히 새로운 운영체제와 하드웨어로의 변신을 선택했다.




이것은 자사의 기존기술에 대한 집착과 미련을 버리지 못한 소니와 대조적인 선택이다. 위험은 매우 크지만 앉아서 천천히 말라죽느니, 크게 한번 뛰어보겠다는 의도였고 이것은 성공했다. 애플의 OSX는 안정성과 UI의 미려함, 쾌적한 성능이란 세마리 토끼를 잡았다. 기존 운영체제와의 호환성 하나만을 희생한 보상이었다.
 
두번째로 소니는 음악시장의 패러다임이 점점 인터넷을 통한 파일교환이 쉬운 MP3 방식으로 가고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스스로가 가진 MD기술을 포기하지 못하고는 ATRAC란 독자 표준을 고집하면서 MP3플레이어를 만들지 않았다. 일본 가전업체 전체가 그랬다. 결국 일제 음향기기가 대중적인 모든 사용자에게 외면당하자 그제야 뒤늦게 만들었지만 때는 늦었다.




반면 애플은 따로 음악포맷을 만들지 않고, MP3파일을 재생할 수 있는 아이팟을 내놓아 크게 성공했다.

세번째로 소니는 명백히 가격대 성능비와 전송률이 떨어지는 스스로의 메모리스틱을 포기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SD나 CF와의 동시지원도 하지 않았다. 덕분에 소니제품에 끌리던 사람도 순전히 플래시메모리 때문에 구입을 주저하고 포기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애플도 독자기술은 있었다. 파이어와이어라 불리는 IEEE1394 인터페이스다. 하지만 애플은 대세가 USB로 기울자 미련없이 이 단자만 지원하는 것을 포기하고 동시지원했다. 나중에는 공식적으로 이 단자를 포기했다.

대표적인 이 세 가지 경우에 있어 공통점은 무엇일까?

스스로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건 좋지만 패러다임이 변하거나 대중이 이것을 외면할 때는 과감히 기존 기술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소니는 스스로가 만든 기술을 어째서 받아들이지 않는지 이유를 연구하지도 않았고, 변화를 수용하려 하지 않았다. 반면에 애플은 결정적인 타이밍에는 대중이 원하는 것을 수용했다.

두 회사 모두가 혁신을 추구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의 소니는 엔지니어들의 자기만족을 위한 혁신을 추구했다.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 지보다는 엔지니어들이 소비자에게 무엇을 팔고 싶은지를 더 중시했다.
애플은 철저히 소비자가 중심이다. 독자표준이나 폐쇄적 구조를 유지하지만 그게 제품의 판매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 같으면 미련없이 그 부분은 포기한다. 그 어떤 혁신도 소비자가 받아들여야만 계속 적용했다.


잡스가 마우스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키보드의 커서키를 없애려다가 심한 반발이 오자 뜻을 접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집불통처럼 보이는 잡스도 소비자의 생각은 받아들인다.

이 외에도 소니의 결정적 선택미스는 더 있다. 하지만 결국 두 회사의 운명을 가른 선택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말한 셈이다.

가전제품에 있어서 아날로그적 자사 기술에 대한 집착과 엔지니어만의 혁신으로 인해 소니는 스스로의 철옹성인 휴대음향기기 시장과 안방의 핵심 가전제품 텔레비전, IT제품의 중요규격인 플래시메모리에서 잇달아 몰락했다. 그것은 애써 이룩한 소니란 브랜드가치의 하락으로 이어지며 삼성과 LG, 애플에게 추월당하고 만다.




그것이 소니와 애플 두 회사의 운명을 가른 선택이었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니에게 정말 엄청난 기회였던 하나의 가능성을 논해보고자 하겠다. 내가 일본인이거나 혹은 소니 관계자였으면 정말로 땅을 치고 통곡할 만큼 아까운 기회가 소니에게 있었다. <잡스이론> 의 다음편에서 써보도록 하겠다.





이 글이 오늘자 다음뷰 메인에 올랐습니다. 감사합니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