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를 좋아한다. 그의 성공스토리를 좋아하고, 과감한 도전의식을 좋아한다. 미래를 내다보는 식견과 그것을 과감히 실천하는 행동력을 존경한다. 그가 만들어낸 제품 가운데 실질적으로 내가 구입해서 써본 건 하나도 없었음에도 나는 그를 동경했다.



그러나 나는 잡스를 신봉하지는 않는다. 마치 종교교주처럼 그가 말하는 것이나 행동 하나마다 '저기엔 분명 내가 모르는 깊은 뜻이 있을거야.' 라든가 이해안 되는 행동까지도 '보통사람이 저걸 쉽게 이해할 수 있겠어? 하지만 분명 우리를 위한 행동일거야. 우리는 어리석고 그는 위대하니까.' 라고 찬미하지는 않는다.

최근 들어서 아이팟과 아이폰, 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정말로 소비자가 쓰기 좋은 물건을 만들어내고 혁신을 외치는 잡스에 대해 한국사회 전체가 호의적이 되었다. 아니 세계 전체가 그렇다고 봐도 좋다. 잡스와 애플의 <제품>이 답답한 틀을 만든 기존업계를 부수고 소비자의 이익을 향상시켰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에 대한 호감이 지나쳐 잡스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잡스가 공익을 위해, 혹은 소비자를 위해, 나아가 인류발전을 위해서 제품을 만들어 원가로 혹은 무상으로 제공하기라도 했을까?



전혀 아니다. 잡스는 냉정하게 말하면 미국의 발명왕 에디슨과 같다. 에디슨은 천재적 발명가이고 많은 발명과 특허를 냈다. 인류발전에 크게 이바지 했다. 그렇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돈을 벌고 유명해지기 위해서 했다. 때문에 우리는 공적은 인정하되 에디슨을 숭배하지는 않는다.

에디슨이 전류송전에서 끝까지 직류를 고집했지만 결국 세계는 교류방식을 채택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교류방식을 개발한 테슬라는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음에도 대부분의 특허를 <인류를 위해> 무상, 혹은 아주 싼 값에 내놓았다. 그래서 테슬라는 부자가 되지도 유명해지지도 못했지만 조용히 존경받는 과학자가 되었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그동안 애플의 잡스는 플래시를 배제하면서 그것이 성능이 떨어지고 웹표준이 아니며 특정회사가 독점한 공개되지 않은 규격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웠다. 그 명분은 속내야 어쨌든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특히 잡스의 이런 공개정책에 순수하게 감명받은 공개소프트웨어 운동측의 한 명은 예전에 잡스에게 직접 공개편지를 보냈다. 거기서 잡스가 플래시 대용으로 밝힌 H264는 순수한 공개표준이 아니며 특허로 로열티를 받는 코덱임을 지적했다. 그리고는 소스까지 공개된 완전 공개 코덱인 테오라를 애플이 권장해 주기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잡스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
 
모든 비디오 코덱은 특허가 걸려 있으며, 특허 당사자들(patent pool)은 Theora 나 (위에 언급된)"공개 표준" 코덱들에 대해 소송 준비중(go after) 입니다.

불행하게도, 어떤것이 "오픈소스" 라고 해서 그것이 다른 특허들을 위반하지 않음을 보증하는것은 아니며, 공개표준 이라는 단어가 로열티가 없다거나 오픈소스 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것도 맞는 말이긴 하다. 요약하면 나도 정말 오픈소스를 채택하고 싶지만 애플이 채택하면 사방에서 특허권소송을 걸어서 돈을 뜯어내려고 할 테니 못하겠다. 라는 것이다.

이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이유다. 그리고 잡스가 공개표준을 좋아한다는 사실에는 아무런 의문점도 주지 않는 훌륭한 답변이다.



그런데 구글이 지난 19일 인터넷 등을 위한 오픈소스 비디오 규격인 웹 M을 내놓았다. 구글은 여기서 이 규격을 후원하면서 소스를 공개하고, 누구든 완전히 무료로 쓸 수 있게 해줄 것임을 공식선언했다.

유튜브를 비롯해, 모질라의 오페라와 파이어폭스 등이 이 규격을 환영하고 적극 채택하겠다고 약속했다. 애플의 사파리만 동의하면 원래부터 표준따위에 관심없는 MS의 IE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공개진영 브라우저가 채택하게 되는 셈이다.

잡스의 이제까지의 대의명분에 의하면 당연히 애플은 이 웹M 규격을 환영하고 적극 도입해야 한다. 특허당사자인 구글 스스로가 공식적으로 공개이며 무료라고 했다. 이에 많은 회사들이 이 규격을 지원할 것을 약속했다. 애플이 지원한다면 웹표준으로 지정되는 것도 어렵지 않다. 다만 문제점이라면 구글이 애플과 라이벌이 되어있는 상태라는 것 빼고 말이다.

그렇다고 구글이 잡스더러 너희는 이거 쓰지마. 라고 한 건 아니다. 오히려 써주길 원하고 있다. 애플은 스스로가 참여한 H264에 더 정이 가겠지만 그건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유료코덱이고, 구글은 소비자든 업체든 완전히 무료다. 게다가 테스트 결과에 의하면 성능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잡스의 대응은 다음과 같다.

 비디오스트리밍은 특허에 복잡하게 얽혀있지만 모질라의 최고변호사는 오그테오라(Ogg Theora)는 특허와 관련해 안전하다고 말했다.그러나 MS는 이에 의문을 던지고 있고 스티브잡스 애플 CEO는 오픈소스 비디오 코덱에 대한 특허공격을 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MS야 원래 그런 놈들이라 치고 잡스는 지금 개그 콘서트하나? 위에서 오픈소스 코덱을 채용해달라는 사람에게 나도 쓰고는 싶지만 다른 놈들의 특허공격이 있을 수 있으므로 못쓴다.는 뉘앙스의 답장을 보냈던 잡스다. 그런데 그냥 가만히 있는 것도 아니라 이 완전 무료에 오픈소스인 이 코덱에 대해서 특허공격을 하겠다고? 그럼 위에서 말한 특허공격을 할 지 모를 놈은 바로 잡스 스스로였나?

여기서 유일하게 그나마 편을 들어줄 수 있는 건 만일 구글이 공개한 웹M이 전면적으로 애플의 특허를 대놓고 베겼다든가 하는 경우다. 그런데 그건 아닐 것 같다. 대놓고 베낀 코덱을 천하의 구글이 소스까지 완전히 공개하며 내놓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랬다면 아이큐가 의심된다. 소스만 살펴봐도 그게 표절인지 아닌지는 금방 안다.

그냥 사소한 몇가지가 걸린 정도로 잡스가 특허공격하겠다면 그건 한마디로 그동안 잡스가 플래시를 쫓아내면서 소비자를 위하느니, 공개니, 표준이니 외쳤던 것은 죄다 거짓말이란 소리다. 그냥 잡스는 기분나쁘니까, 내 이익을 위해서 그렇게 한다. 고 떳떳히 말하기 부끄러워서 그랬을 뿐이다.

아직 전모는 밝혀지지 않았다.  혹시 잡스부분이 단순 루머일까 싶어서 출처를 확인했는데 지디넷 코리아에 관련기사가 올라와있다. 자세한 정보를 원하면 그곳에서 <웹M>이란 검색어로 찾아보면 된다.
도 이게 잘못된 기사이기를 바란다. 하지만 아직은 오보라고 누가 지디넷에 항의도 하지 않았고 지디넷이 해명보도를 내지도 않았으니 사실인 것 같다.

알고 있겠지만 오늘날 기업간 특허공격은 단순히 누가 내 특허를 훔쳤으니 배상해라. 이런 문제가 아니다. 기업간에 서로를 견제하는 제스춰이자 협상수단이다.

썬의 회장이 밝힌바에 따르는  잡스는 썬 운영체제가 맥의 UI 특허를 마구 침해했으니 사용료를 내지 않으면 고소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썬의 회장은 맥의 OSX가 유닉스에서 나왔으며 결과적으로 썬의 유닉스 커널 특허를 침범했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잡스는 침묵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특허공격이란 협상수단이다.
아직 성급하게 잡스의 모든 것을 욕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이 건에 대해서은 언급할 것은 해야겠다. 잡스는 자기가 돈을 벌기 위해 혁신을 하고 제품을 만든다. 물론 기업가로서 그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간 우리는 잡스가 소비자를 생각하지 않는 기존업계를 조롱하며 산산이 부숴버린 것에 환호했다. 그런데 소비자의 이익과 잡스의 이익이 충돌할 때 우리는 잡스가 어느 편에 서는지를  지금부터 보게 될 것 같다.


애플이 특허권의 일부를 쥐고 로열티를 받는 H264와 구글이 소스를 완전히 공개해서 향후 발전가능성도 훨씬 큰 데다 한푼도 안받겠다고(광고는 삽입할지 모르지만) 한 웹M 가운데 성능에 큰 차이가 없다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어느 쪽이 이득일까? 잡스는 어떻게든 자사가 참여해서 돈을 받는 쪽을 편들려고 하는 것 같다.




스티브 잡스는 과연 소비자의 편일까? 아니다. 그냥 스스로의 만족과 이익을 위해 일했던 가운데 소비자의 이익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다. 딱 그것 뿐이다.

이것이 뭐가 이상하냐? 잡스는 기업가고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게 당연한데.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말해둔다. 나는 지금 잡스가 범죄자라든가, 나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그저 그가 최근 밝힌 웹이 오픈된 공간이 되어야 한다느니, 공개표준이 승리해야 한다는 주장과 지금 이 행동의 괴리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아냐. 이건 스티브 잡스를 음해하려는 세력의 음모이거나 악의에 찬 해석에 불과해. 이렇게 믿고 싶은 사람은 그래도 좋을 것이다. 어차피 나는 개인의 신념에 간섭할 생각이 없다. 단지 세상을 현명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의 판단을 도와주고 싶을 뿐이다.

판단은 각자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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