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잡스이론을 계속 해보자.

애플로 복귀한 잡스는 실패 없는 성공을 위해 소니식(일본식) 비지니스 모델을 도입했다. 그런데 이 소니식 모델은 폐쇄성을 근본으로 한다.




왜 소니를 비롯한 일본의 가전업계는 폐쇄적일까? 어째서 자사제품의 부품이나 각종 콘텐츠의 표준화, 호환성을 허용하는 개방노선을 걷지 않았을까?


단지 일본이 나쁜 놈들이라서? 혼자서 모든 이익을 독차지하기 위한 욕심만으로 무턱대고 만들다보니?

아니다. 일본 가전회사의 폐쇄성은 특수한 유래를 가지고 있다. 그 유래는 일본 회사들이 본격적인 대량 생산체제를 갖추고 제품을 쏟아내야 했던 2차 세계대전 때 산업구조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가간의 전면적 전쟁이 나면 모든 산업은 군수생산체제로 전환한다. 2차대전부터는 전쟁이 매우 기계화된다. 단순히 사람이 전쟁터에서 잘 싸우는 것으론 부족하다. 뒤에서 무기와 각종 군수물자를 얼마나 저렴하게 대량으로 빨리 생산할 수 있는 지가 승패를 좌우한다.

연합국은 유럽의  영국과 프랑스부터 아메리카의 미국, 아시아의 중국과 소비에트 연방에 걸쳐 길고도 넓게 펼쳐져 있다. 이들은 때로 공동 작전을 수행하며 병참물자도 상호 지원해야 했다.

때문에 연합군 진영은 일찌감치 무기를 비롯한 제품의 표준화, 기술 개방의 중요성을 알았다. 영국이 개발한 소나와 레이더는 즉각 미국에 도입되었으며, 미국이 만든 무기는 영국에 지원되었다. 그 과정에서 각 국가의 회사들이 대등한 협력관계로  부품과 기술을 서로 교환하며 싸웠다. 전쟁중 같은 진영을 견제하거나 저작권을 지키거나 하는 일 같은 게 있을 수가 없다.


반면 일본이 처한 상황은 특수했다. 섬이라서 육지로 연결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동맹국인 독일이나 이탈리아는 너무 멀다. 원활한 기술이나 부품 교류를 바랄 수 없는 입장에서 독일을 거쳐 들어온 원천기술만을 바탕으로 자국 내에서 모든 무기와 부품을 만들고 싸워야 했다.
 




때문에 일본이 택한 것은 산업의 수직계열화였다. 완제품을 취급하는 거대한 대기업 휘하에 그 기업만을 위해 부품을 만드는 계열사를 둔다. 대기업은 계열사와 협력관계가 아니다. 위에서 지휘하면서 감독하는 수직관계다. 오늘날 일본 자동차의 도요타와 하청업계 관계와 비슷하다.
 
어차피 자국 기업끼리 경쟁할 필요도 없고, 타국 기업과 교류할 일도 없는 상황에서 이 수직계열화는 가장 이상적이다. 보안도 잘 이루어지고 다른 국가에서 함부로 제품을 카피생산하기도 힘들다. 효율도 높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이렇게 한 덩어리로 뭉쳐진 계열 집단은 공동운명체가 되기에 다른 집단에 배타성을 보이게 된다는 점이다. 구 일본은 육군과 해군이 사이가 좋지 않아서 각자 비행기까지 독자 모델을 만들었을 정도다.

일본 가전회사의 폐쇄성은 이런 산업구조의 수직계열화를 택했다는 점에서 나온다. 중간에 완제품에 아무리 좋은 부품이 타국에서 개발된다고 해도 함부로 채택할 수 없다. 이미 계열화된 하부회사들은 내 식구이기 때문이다. 하부회사 역시 외국 완제품 업체가 부품을 공급해달라고 해도 소극적이 된다. 일단은 내 머리 위의 대기업이 중요하고 그 대기업의 의사가 중요하다.


흔히 일본은 원료만 들어가면 완제품이 나오는 산업구조라고 한다. 중간의 부품을 다른 곳에 의존하는 일은 거의 없다. 전 산업의 수직계열화 때문이다.





한 때 소니는 트랜지스터 라디오나 워크맨 등의 파괴적 이노베이션에 의해서 서구의 전자 메이커를 타도했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소니를 방문했을 때 소니 창업자인 모리타로부터 받은 초대의 워크맨을 그 자리에서 분해하여 개개의 부품을 보고 있었다. 그 시기 소니는 잡스가 경의를 보일 정도의 이노베이터였던 것이다.


잡스는 과연 저때 부품을 보면서 무엇을 느꼈을까? 엔지니어가 아닌 잡스가 부품 개개의 기계적 원리나 전자적 이론을 떠올렸을 리 없다. 아마도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각 부품에 찍힌 상표와 회사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그것이 대부분 일제 부품만으로 이뤄졌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일본식의 폐쇄적 산업구조를 몸으로 느끼는 자리가 아니었을까.

애플이란 소형 컴퓨터를 개발하고 매킨토시를 만들어 성공했어도 마이크로 소프트의 개방형 운영체제에 실패를 맛을 보았던 그다. 이런 스티브잡스가 소니 방문을 계기로 일본 소니와 같은 비니지스 모델, 폐쇄적 산업구조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봐도 이상할 것은 없다. 내가 잡스가 소니를 모방했다고 말하는 이유다.
 
스티브 잡스는 소니의 비지니스 모델을 비롯해 이런 일본식 폐쇄적 구조에 매혹되고 만다. 왜냐하면 스스로가 그 계열의 가장 위에 우뚝 선다면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지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협력관계일 때는 의견을 들어주며 방향을 수정해야 하지만 소니식 구조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오로지 맨 상층부의 의견만이 계열사 전부의 방향을 결정한다.


애플 시절 잦은 의견충돌에 시달리던 잡스에게 그런 구조는 수직 계열화는 폐쇄적 비지니스 모델과 함께 그야 말로 신이 내려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 스스로의 자유주의 신념을 깨뜨려야 하지만 말이다. 잡스는 성공을 위해서라면 신념의 일부를 버릴 각오도 되어 있었을 것이다.


현재의 애플을 보자.

한동안 아이맥에는 애플이 IBM, 모토롤라와 합작해서 만든 특유의 파워PC가 쓰였다. 자기만을 위한 폐쇄적 칩을 채용한 것이다. 이후 다시 인텔맥으로 전환했지만 루머에 의하면 최근 AMD와 접촉하고 있으며 매킨토시만을 위한 칩을 제조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아이폰에는 그동안 ARM코어를 수정한 개방형 칩을 썼다. 하지만 최근 칩 회사를 인수한 이후로 새로 내놓고 아이패드에 채용한 A4칩은 애플만을 위한 폐쇄적 칩이다. 삼성이 파운드리 생산을 맡았다고 해서 개방적인 칩이 아니다. 이 칩의 핵심 라이센스는 애플이 쥐고 있다.

아이튠즈를 비롯한 각종 음악, 동영상 코덱에서도 애플은 개방된 표준을 모두 지원하지는 않는다. 선별적인 지원과 함께 스스로가 개발한 퀵타임쪽으로 은근히 유도한다. 플래시를 배제하면서도 스스로가 참여하는 HTML5 표준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아이팟부터는 이후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전부 자사에서 설계하며 그 안에서는 특유의 기술을 걸어 다른 업체에서 자유롭게 접근할 수 없게 한다. 범용 USB단자를 지원하지 않는 것도 그 이유다.

폐쇄적 비지니스 모델과 산업구조는 양날의 칼이다. 제품이 시장에 성공적으로 받아들여지면 성공할 수록 이익이 커지면서 다른 기업의 모방과 추격을 비교적 어렵게 만든다. 반면에 시장에서 부진하거나 새로운 기술로 패러다임이 급격히 이동할 때 제품을 개량해서 적응하기가 어렵다. 실패했을 때의 타격이 치명적이라는 뜻이다. 도한 기술발전을 가로막아 스스로 도태될 위험도 있다.


결론적으로 잡스의 이런 선택은 성공했다.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어떤 호환기종도 허용하지 않았고, 아이튠즈는 저작권을 보호하면서 사용자를 애플 제품에 묶어두었다. 덕분에 애플은 점유율에 비해 경이적인 순이익을 내게 된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그럼 어째서 잡스가 따라서 배운 소니는 몰락했는지 그 이유를 짚어보겠다.







이 글이 오늘자 다음뷰 메인에 올랐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