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랑하는 자식일수록 과감히 회초리를 들라고 한다. 또한 친한 친구일 수록 바른 말을 해주라고 한다.

이 말의 의미를 파악하기까지 나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단순히 책상에서 배운 지식으로는 모자라다. 삶의 경험을 통해 지혜가 되어 돌아와야 진정으로 내 것이 된다.





스티브 잡스가 돌아온 이후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로 대성공을 거두고 있는 애플은 그야말로 무서울 것이 없어 보인다. 아이폰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점유율 이상으로 애플이 끼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잡스와 애플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모든 IT회사가 애플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애플이 만든 혁신이 시장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나태한 다른 기업을 몰아냈다는 것에 쾌감을 느낀다. 애플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때마다 환호하는 사람들은 잡스의 한 마디마다 미래를 이끄는 의미있는 말이라 평가한다. 반면 애플에 맞서 경쟁하는 회사들의 움직임은 멍청하고 어리석은 것이라 혹평한다.

잡스와 애플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MS는 존재할 필요가 없는 회사고, HP나 델은 싸구려 중국제 저가품이나 만들어야 한다. 삼성은 망해야 하고, 구글이나 소니도 같은 길을 걸어야 한다.


과연 이것이 바람직할까. 이렇게 되면 더 좋은 IT세상이 올까? 그리고 잡스와 애플은 하이파이브를 치며 승승장구하게 될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잡스의 대성공은 애플의 위기일 수 있다.



잡스가 이끄는 애플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혁신기업이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농담을 능숙하게 하고 환호를 받으며 멋진 무대를 연출하는 락스타와 마찬가지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락스타는 인기를 얻는 데 익숙하지만 책임을 지는 데는 서투르다.

애플은 누군가 시장에 지배자가 있을 때 그 지배자를 놀리며 자기 재능을 뽐낸다. 지배자를 끌어내리기 위해서 다른 협력자와 악수를 하는 데도 익숙하다. 하지만 막상 자기가 그 지배자의 위치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는다. 엄밀하게 말하면 지배자가 되고 싶지도 않다. 왜냐하면 지배자는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PC시장을 지배한 MS는 그나마 지배자의 풍모를 가지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운영체제만 만들뿐 하드웨어를 만들려 하지 않았다. 협력사에게 괜한 공포를 주지 않기 위해서다. 칩을 만들려고도 하지 않았고, 다른 소프트웨어 개발사들에게 비교적 관대했다. 심지어는 개인 사용자에게는 불법적인 복사까지도 용인해주었다.

MS가 과도한 대응을 했을 때는 단 한가지, 그들의 운영체제의 지배권이 흔들릴 위험에 처해서였다. 그 외에는 어떤 곳에서 도전을 해오든 온건했다. MS의 운영체제 하에서 부자가 된 기업을 꼽아보자. 인텔, 델, HP 등 꽤 많다. 협력은 아니지만 구글도 있다.

그래도 우리는 MS를 비난한다. 지배자가 된 순간부터 MS의 모든 행동은 정치적으로 평가되었다.  잘하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고 못하면 참을 수 없는 행동이 된다.

잡스의 애플은 어떤가. 그런 노력은 전혀 하지 않는다.
잡스는 하드웨어 호환기종을 용납하지 않는다. 또한 자기가 발명해낸 혁신제품을 통해 다른 기업이 부자가 되는 걸 두고 보지 않는다. 싹을 자르기 위해서는 비난이나 오해까지도 기꺼이 감수한다.


최근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들어가는 칩을 자체 생산하는 것부터, 플래시를 배제하기 위해 약관을 고쳐서 프로그래밍 언어까지 제한하는 점, 앱 스토어에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특정 앱을 삭제하고는 만족스러운 답변도 해주지 않는 비밀주의 등... 마음에 걸리는 것이 너무도 많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은 애플이 시장에서 미미한 점유율을 자랑할 때는 별 상관없는 일이다. 그냥 잡스와 애플은 원래 그렇다. 라고 웃어 넘기고 싫으면 다른 제품을 고르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애플이 만일 MS의 PC 운영체제 점유율 같은 시장 지배적 위치에 오르게 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자유로운 시장의 경쟁이든 뭐든 결과적으로 시장에서 애플 제품 외에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을 때가 되면? 그냥 가볍게 볼 수 있던 애플의 행태는 어느새 참을 수 없는 지배자의 횡포가 되어 버린다. 비록 애플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러 이유로 옹호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근본적으로 잡스와 애플이 스스로 지배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든가, 아니면 시장에서 철수해야 한다. 그러기 전에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만일 전세계, 혹은 미국 스마트폰 시장의 점유율 90퍼센트 이상이 아이폰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마치 지금 우리가 개인용 컴퓨터에서 윈도우 대신 선택할 수 있는 운영체제가 점유율 한자리 숫자에 불과한 고가의 맥OS 이거나 소수점 자리도 안되는 리눅스 뿐이듯이 말이다.

우리가 그렇게 비난했던 MS에 비해 애플은 전혀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정말로?
갑자기 특정 앱이 애플에 의해 돌연 삭제되고는 해명조차 제대로 없을 때가 오면? 특정한 기술이 잡스 한 명의 의사에 따라 갑자기 거부되어 시장에서 쫓겨날 수 있다면? 그때도 우리는 계속 애플과 잡스를 찬양할 수 있을까.



그 유명했던 매킨토시의 슈퍼볼 CF속에 나오는 빅브라더가 바로 잡스가 되어버리는 데도?


적어도 아마 미국인들은 그러지 않을 것 같다.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신처럼 받드는 미국에는 강력한 ‘독점 금지법’ 이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대성공해서 세계의 지배자가 된 애플은 그 달콤함을 맛보기도 전에 회사 전체가 미국법에 의해 갈갈이 찢어질 수 있다. 하드웨어와 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를 전부 만들어서 최적화하며, 마우스와 키보드를 만들고, 하다못해 그 안의 칩셋까지 자체생산하려는 애플이 최소한 3개 회사 이상으로 찢어져 버릴 지 모른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애플의 위기라고 말하는 의미다.





잡스와 애플은 스스로가 이제 어떤 시장의 지배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그에 따른 책임과 관용을 보여줄 준비를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공했더니 오히려 망했더라 라는 가장 역설적인 상황을 불러올 수 있다.
그것은 한국인인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든 아무런 상관도 없다. 오로지 미국법에 의해 벌어질 비극이다.






이 글이 오늘 자 다음뷰 메인에 올랐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