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인텔]


이제까지 전세계 CPU 시장의 최고 강자는 IBM 호환 PC에 탑재되는 칩을 생산하는 인텔이었다. 한때 모토롤라가 매킨토시 컴퓨터에 들어가는 68계열 칩을 통해 경쟁하다가 IBM과 협력해 파워PC까지 개발하며 경쟁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저전력을 내세운 트랜스메타의 크루소 칩이 잠시 주목받기도 했고 사이릭스와 AMD 등은 인텔과 호환되는 칩을 생산하며 경쟁하기도 했다.

이 가운데 이제 인텔의 확고한 경쟁자는 AMD만 남았다. 그런데 인텔이 CPU시장에서 확고하게 강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시기에도 가끔은 AMD칩이 일부 벤치마크 테스트에서 더 높은 성능을 보여주기도 했다. 언더독 효과 때문인지 사람들은 그런 결과에 주목하면서 인텔의 시대도 곧 끝날 거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때는 인텔의 우위가 뒤집어진 판매 결과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 시기의 인텔을 뒷받침해주는 건 AMD 보다 적은 발열과 전력소모로 안정적으로 동작하면서도 높은 성능이 나온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오버클럭 등으로 순간 성능이 높게 나오는 건 실험실에서나 의미있는 행동이다. 실제 사용자는 매일 집에서 오랜 시간 동안 사용한다. 그런데 잠시 고성능이 나오다가 곧 작동이 멈추고 오류가 나거나 부품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런 위험한 고성능에 열광하며 구매할 이유는 없다.

인텔은 현재 AMD에게 성능에서 밀리고 큰 폭의 매출과 순이익 감소라는 위기상황을 맞고 있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가 직접 지금 인텔이 바닥을 치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필자는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몇 년 뒤를 위한 연구개발과 고성능 신제품 발표 밖에 없다고 주장했었다. 그리고 인텔도 확실히 그 방향으로 집중하고 있다.

인텔은 지난 21일에서 23일까지 미국에서 열린 반도체 학술행사 핫칩스 34에서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프로그래머블반도체(FPGA) 등 집적도를 높인 신제품을 발표했다. 

특히 이 자리에서 첨단 기술을 통해 트렌지스터 집적도를 현재 10배 수준으로 강화한다는 로드맵을 발표한 점이 눈길을 끈다. CPU의 성능을 근본적으로 끌어 올리는 기술이 바로 트랜지스터 갯수를 늘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팻 겔싱어는 “인텔은 리본펫, 파워비아, 하이NA 등 첨단 기술을 통해 패키지 당 트랜지스터 집적도를 현재 1000억개에서 2030년까지 1조개까지 늘리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인텔이 발표한 데이터센터용 GPU 폰테 베키오는 고성능컴퓨팅과 인공지능(AI) 슈퍼컴퓨팅에 특화된 모델이다. 차세대 패키징 기술인 EMIB와 포베로스 기술을 조합해 단일패키지에 트랜지스터 1000억개 이상을 집적할 수 있다.

인텔 CPU 제온 D-2700과 1700 시리즈는 최신 트렌드인 5G,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환경에서 적합하게 설계됐다. 실제 사용 환경에서 발생하는 전력과 공간 제약을 해결한 점이 강조됐는데 인텔은 FPGA에 프로세스 노드와 칩렛을 통합해 개발 시간을 단축했다고 설명했다. 

 

[출처: 인텔]


근본적인 설계 발상도 바꿨다. 인텔은 그동안 한 다이 안에 CPU와 내장 그래픽칩셋, 입출력 관련 다이를 한 데 넣은 모놀리식 방식으로만 프로세서를 만들었다. 그런데 내년부터 출시할 메테오레이크는 서로 다른 공정에서 생산된 타일 단위 반도체를 그릇 역할을 하는 베이스 타일 위에 얹는 방식으로 만든다. 또한 핵심 제품인 CPU 타일은 내부에서 만들지만 일부 제품은 외부 파운드리도 활용해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일련의 기술적 흐름을 보면 확실히 인텔이 방향을 제대로 잡고 있는 건 맞다. 그렇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우려가 제기된다. 과연 인텔이 이런 대폭의 성능 강화를 이뤄내면서도 예전 강자 때처럼 발열과 전력소모를 적게 유지할 수 있을까?

클럭속도와 트랜지스터 집적도는 미세공정의 발달과 함께 간다. 미세공정이 충분히 발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성능을 위해 집적도만 높이거나 고전압을 걸어 클럭속도만 높이면 높은 전력이 소모되며 연산에 쓰이지 못한 나머지 전력이 열이 되어 방출된다. 냉각 성능을 넘어서는 고발열은 해당 부품을 포함해서 컴퓨터 전체를 고장낼 수 있다. 

최근 인텔이 겪고 있는 문제점은 좋은 공정을 가진 파운드리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AMD에 맞서 빨리 좋은 제품을 내놓으려 하지만 공정이 따라주지 않다보니 최근 인텔 CPU는 성능은 그런대로 나오는 데 전력을 엄청나게 먹고 열도 많이 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예전 전성기 때 AMD가 어떻게든 순간 성능으로 도전하면 품위있게 안정성과 저전력으로 응수하던 상황과 정반대다.

인텔이 진정으로 현재 상황을 극복하고 다시 바닥에서 올라가려면 성능향상은 물론이고 발열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인텔칩을 탈출한 애플이 독자적인 M1, M2칩을 선보이면서 가장 각광받은 부분은 냉각팬조차 필요 없던 저발열로 고성능을 냈던 부분이었다. 인텔이 전력소모와 발열까지 잡으면서 과연 압도적인 성능 강화를 이뤄낼 수 있을 지 주목해서 지켜볼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