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아닌 이상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살아가면서 크든 작든 수많은 실수를 저지르며 사는 게 바로 사람이다. 다만
자기가 어떤 실수를 했는지 깨닫지 못하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어리석은 사람이고, 제대로 파악해서 고쳐나가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난 후에 만든 NEXT 컴퓨터는 단지 복수심에 불타서 만든 조잡한 물건이 아니었다. 또한 애플에 남기고 간 매킨토시 역시 만만한 제품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분명히 말해보자. 이후 NEXT 컴퓨터는 실패했고 매킨토시는 부진했다. 그것도 단 한 명의 상대에게 패한 결과였다. 윈도우라는 운영체제를 앞세운 MS의 빌게이츠였다.

“그 질문에는 대답하고 싶지 않습니다. 정말로 대답하고 싶지 않아요.”
 

잡스의 이야기를 다룬 ‘아이콘’에 적힌 한 장면이다. NEXT의 실패가 결정적으로 굳어지고 가지고 있던 돈도 떨어진 잡스는 인터뷰를 위해 찾아온 기자 앞에서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힘없이 대답했다. 늘 당당하고 자신감에 넘치던 잡스가 드디어 스스로의 실패를 인정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물론 실패했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건 아니다. 잡스는 미래를 보았고 의미가 있는 노력을 했다. 하지만 그때로서는 분명한 실패였다. 그렇기에 스스로 실패를 인정하기 괴로웠을 것이다.

더구나 잡스를 패배시킨 사람은 애플2 시절에 베이직 언어를 공급하고, 매킨토시 시절에는 찾아와서 오피스 프로그램을 넣어달라고 부탁하던 빌 게이츠였다. 일거리를 부탁하러 오던 하청업체 수준으로 생각하던 회사 사장이 어느 날 초거대기업 회장님이 되어 자기를 짓눌러버렸을 때의 심정과 비슷할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왜 빌게이츠에게 패했는가?

  나중에 자세히 말하겠지만 NEXT 컴퓨터는 정말 미래지향적인 고급 기술을 집결시킨 작품이었다. 비록 세월이 지나자 기술의 진보에 의해 하드웨어는 점점 잊혀졌지만 핵심이 되는 운영체제와 근간이 되는 목적지향 프로그램 같은 개념들은 건재했다.

 


이후 애플로 돌아온 잡스는 바로 이 NEXT의 운영체제를 매킨토시 차기 운영체제로 이식했다. 그것이 바로 지금 많은 사람들이 감탄하는 맥의 OSX 운영체제이다. 그리고 이것을 다시 간략화해서 모바일환경에 맞춘 것이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운영체제이다.

 잡스의 제품에서 모자란 것은 디자인도 아니고 혁신도 아니다. 비싼 가격은 약간의 문제가 있지만 근본 원인은 아니다.

잡스의 홍보능력이 부족했을 리도 없다. 당시 잡스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NEXT를 시연하고 ‘이것이 미래입니다!’ 하고 말했을 때마다 기업 관계자와 소비자들은 들떠서 어쩔 줄 몰랐다. 잡스에게 감명받은 고객들이 NEXT를 사려고 할 때마다 MS와 컴팩 같은 윈도우 연합 업체 홍보담당자는 그걸 진정시키는 데만 일주일이 넘게 매달려야 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고객들은 NEXT를 사지 않았다.

 이때 잡스에게 부족했던 건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압도적인 디자인과 혁신기술을 갖춰 내놓았지만 그것만으로 이런 고가제품을 살 동기가 부족했다. 잡스는 단지 최종 소비자에게 찾아가서 직접 이것을 사 달라는 이야기 밖에 하지 못했다. 근본적으로 이걸 사서 무엇을 할 수 있으며 그것이 당신에게 가격 이상의 이익을 어떻게 가져다 줄 것인지에 대한 설득에 실패했다.



이때 애플의 매킨토시는 전자출판과 그래픽 작업 같이 특화된 분야에서 가격 이상의 효율과 이익을 낼 수 있다는 비즈니스 모델로 수요자를 만들었기에 그나마 팔릴 수 있었다. NEXT는? 어떤 분야에서도 그 가격에 맞는 효과를 보장하지 못했다.

 빌 게이츠는 정말 대조적으로 점진적인 모방과 개량 위주의 제품 밖에는 내놓지 못했다. 더구나 그가 세운 MS는 하드웨어는 전혀 만들지 못했다. 그렇지만 게이츠는 기가 막힌 비즈니스 모델 하나로 모든 IT 업계를 평정해버렸다.

거대기업 IBM이 개인용 컴퓨터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하고 하드웨어를 만들고 있을 때였다. 빌 게이츠는 급하게 운영체제를 구하고 있는 이 회사에 찾아갔다. 당시 IBM은 중대형 컴퓨터 시장에 엄청난 위상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었다.
하지만
게이츠는 이 공룡기업을 상대로 자기에게 있지도 않은 운영체제를 있다고 해서 공급 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그 후 필요한 운영체제는 다른 회사에서 사와서 조금 고쳐 공급했다. 그것이 바로 MS-DOS다.

빌 게이츠는 시애틀 컴퓨터 시스템사에서 소스를 포함한 모든 권리를 일시금 약간으로 사들였다. 그리고는 IBM에 공급할 때는 운영체제가 팔리는 양만큼 로열티 형식으로 대금을 받기로 한다. 또한 순진한 IBM을 상대로 이 운영체제 계약을 독점적이 아닌 방식으로 맺는 데 성공한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IBM 컴퓨터 한 대가 팔릴 때마다 팔려나간 MS-DOS(IBM에 공급된 버전은 PC-DOS란 이름이었다)는 마치 달러를 찍어내듯 엄청난 돈을 벌어주었다. 뿐만 아니라 이 운영체제를 호환기종에도 MS-DOS라는 상표로 따로 공급할 수도 있었다.


그러자 특정 회사의 하드웨어에 종속되지 않는 이 운영체제를 채택하는 회사들이 늘어났다. 궁극적으로는 하드웨어 업체인 IBM보다 소프트웨어 업체인 MS의 순이익과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늘어나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빌 게이츠가 판 것은 제품이 아니었다. 본래 MS-DOS는 자기가 만든 제품도 아니니까 말이다. 그럼 그는 단순히 IBM이 필요로 하던 물건을 어딘가에서 사서 제공해준 유통업자였을까? 아니다. 그가 판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IBM에게는 운영체제를 새로 만드는 비용과 시간을 절약한다는 이익을 주었다. 규모가 작은 호환기종 업체에게는 독자적인 운영체제를 만드는 노력을 할 필요없이 하드웨어만 만들면 된다고 유혹했다. 최종 소비자들은 돈 주고 산다는 자각도 못하면서 MS운영체제를 사게 된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어느 소비자든지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는 당장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서 지갑을 쉽게 열지만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에는 인색하다. 더구나 하드웨어는 공짜로 복사할 수 없지만 소프트웨어는 가능하다. 그렇지만 부가가치세를 걷듯 이렇게 하드웨어에 붙어가면 원래 제품값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지만 저항이 굉장히 약해진다.


너무도 쉽게 돈을 버는 이것을 비꼬는 말로 ‘MS세금’이라고도 한다. 지금도 우리가 노트북을 살 때 거기에 대부분 끼어있는 윈도우는 당연히 이런 식으로 제품 가격에 포함되어 있다. 다만 MS는 그것을 우리에게 직접 받아내는 게 아니라 노트북 업체에게 받아왔을 뿐이다. MS-DOS부터 이어져온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이다. 

스티브 잡스가 빌 게이츠에게 패한 이유는 명확하다. 혁신제품에 걸맞는 비즈니스 모델이 없었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가 압도적으로 PC시장을 석권한 이유도 간단하다. 경쟁자들이 생각도 하지 못한 비지니스 모델을 고안해 냈기 때문이다.

 


그나마 애플 매킨토시는 남아있는 존 스컬리가 세워놓은 비즈니스 모델에 의해 간신히 연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가정책을 비롯한 맥 호환기종 허용 등 얼마가지 못할 한시적 모델에 불과했다. 다시 애플로 복귀한 잡스는 단단히 마음을 먹게 된다. 

이번에야 말로 실패할 수 없다. 절대로 실패하지 않겠다. 이렇게 결심한 잡스는 바로 이 때문에 스스로의 자유주의적 성향까지 어겨가며 소니로 대표되는 일본 가전업계의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한다. 잡스는 그만큼 절박하게 비즈니스 모델을 원하게 되었다.

 이어지는 후속편에서는 과연 왜 잡스가 고른 소니식(혹은 일본식) 비즈니스 모델에 폐쇄성이 필요했는가 근본이유를 짚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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