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인텔]


요즘 개인용 컴퓨터(PC) 가운데 가장 핫한 부품은 전통적인 핵심부품인 CPU가 아니다. 그래픽 카드가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단일 부품으로서 가장 비싼 부품의 위치도 차지한다. 이에 따라 시장판도도 변했다. 지난 2020년 9월 중순에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은 3198억달러로서 인텔의 2145억달러를 1.5배로 앞질렀다. 미래 가치와 기대를 반영한 평가가 이렇게 다르다.

그래픽 카드는 최초에 윈도우 운영체제의 그래픽 처리를 가속시켜주는 용도로 고안됐다. 문자 위주에서 2D 그래픽 처리가 많아진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이후 3D 게임과 그래픽 툴의 처리를 도와주는 역할로 발전하더니 이제는 가상화폐의 채굴을 위한 필수장비로 각광받기에 이르렀다. 가상화폐는 현금으로 교환이 가능하며 가치가 폭등하는 재화이므로 고성능 그래픽 카드는 곧 돈을 찍어내는 장치나 다름없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돈을 버는(?) 가상화폐 채굴 업자 이외에 실질적인 사용처인 게임 용도 등으로 그래픽 카드를 구입하려는 소비자가 피해를 입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나온 그래픽카드는 시장에 나오기도 전에 팔려서 가상화폐 채굴장으로 갔다. 일반 소매시장에 물량이 사라졌고, 이는 엄청난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예를 들어 RTX 3080는 엔비디아가 처음 출시할 때 정가가 699달러였으나, 수요폭증과 공급 불균형이 이어지자 가격이 배 이상 상승했다. 또한 몇 년전에 산 구형 그래픽 카드를 구입가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중고시장에서 팔 수 있었다는 이야기까지 돌고 있다.

[출처:인텔]


이런 상황에서 인텔이 그래픽 카드를 내놓겠다고 발표해서 주목받고 있다. 인텔은 CES 2022에서 주요 PC 제조사들에 PC용 그래픽카드 ‘아크(Arc) 알케미스트’를 공급했다고 공개했다. 제조사들이 이 칩을 완제품으로 만들어 1분기 정도에 출시될 것으로 보인다.

인텔측에서는 수차례나 성능 뿐만 아니라 가격에서도 이점이 있을 것이라 설명했다. 엔비디아나 AMD보다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정할 것이 분명하다. IT매체 톰스가이드는 인텔 고급형 제품이 650~850달러 수준에서 판매될 것으로 전망했다. 보급형 모델은 200달러 안팎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엔비디아 RTX 3080는 한국 판매 가격이 200만원, 최상위 모델인 RTX 3090은 350만원 안팎이다. 비교적 낮은 사양인 RTX 3060도 100만원 가량인 것에 비하면 매력있는 가격이다. 최신 게임을 위한 성능좋고 저렴한 그래픽 카드에 목마른 게이머들에게는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 

과연 인텔의 이번 도전이 치솟는 그래픽 카드 가격을 잡고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을까? 시장에 대형 경쟁자가 들어온 점은 고무적이지만 나머지 상황은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우선 전세계적으로 초미세공정 반도체 대량 생산이 쉽지 않다는 점이 걸린다.  인텔 아크는 TSMC 6나노 공정으로 만드는데 전 세계 파운드리를 양분하는 삼성전자와 TSMC는 다른 반도체 주문도 빡빡해 갑자기 생산량을 높일 수 없다는 예측이다. 

또한 여전한 가상화폐 채굴 수요가 새로 나온 인텔 그래픽 카드만 내버려둘 리 없다는 점도 큰 문제다. 물론 업체들이 그래픽카드가 채굴시장에 차출되지 않도록 노력을 보이고는 있다. 엔비디아는 그래픽카드에 채굴성능 제한을 건 LHR 제품을 내놓았다. 인텔은 곧 가상화폐 채굴 전용 칩셋인 ‘보난자 마인’을 공개할 예정이다. 아크 그래픽 카드는 일반 소비자용으로 내버려두라는 신호다. 

[출처:인텔]


인텔의 새로운 아크 그래픽 카드가 게이머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안겨주려면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 전력대비 성능이 뛰어나고, 채굴효율은 상당히 떨어져야만 한다는 세가지 조건을 전부 만족시켜야 한다. 어떤 방법으로 이런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어려운 문제라는 점은 확실하다. 일반적으로는 채굴효율이 안나오면 게임 성능도 떨어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인텔 아크 그래픽 카드가 전력대비 성능이 좋다면 편법으로도 가상화폐 채굴에 동원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래도 여전히 기대를 걸게 하는 점은 있다.  애플이 맥을 위해 개발한 M1 칩은 우수한 연산능력에도 불구하고 유독 가상화폐 채굴 성능이 약해서 업자들이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업체의 노력보다는 실질적인 채굴효율이 시장을 움직인다는 의미다. 기술적으로 애플이 했던 것을 인텔은 하지 못할 리는 없다. 인텔 아크 그래픽 카드가 가상화폐 채굴 붐으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는 게이머에게 경쟁의 혜택을 주는 존재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