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애플 홈페이지]



몇 년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애플은 제품 우수성과 별개로 사후 서비스가 좋지 않기로 유명했다. 바로 옆 나라인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시장규모가 큰 편이 아닌 점도 있고 아이폰 이전에는 애플 제품이 널리 보급된 적도 없다는 이유도 있었다. 또한 정식 애플 지사가 아니라 국내 유통사가 따로 중개하다보니 이윤을 위해 제품 가격만 비싸게 올리고 사후 서비스를 부실하게 한 측면도 있었다.

그렇지만 애플은 이런 서비스가 문제가 될 때마다 '애플은 각국의 법을 준수합니다'는 말로 빠져나갔다. 법적으로 해줘야 하는 건 정확히 해주고 있으며 나머지는 의무가 아니라는 다소 차가운 대답이다. 사실 이런 부분은 애플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구글 등 다른 글로벌 IT기업도 한국에서 그렇게 감동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이들은 한국에 대해 사회적 공헌이나 기부도 적극적으로 하는데 애플은 그것조차 인색하다. 그러다 보니 최소한의 법만 지키고 나머지는 안 하겠다는 태도로 비쳐질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다소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사후 서비스 가운데 제품 수리나 교환 등의 항목은 다소 나아진 상태다. 그런데 오히려 그동안 방패로 내세웠던 '법을 준수한다'는 측면에서 문제가 생기고 있다. 바로 애플을 포함한 글로벌 플랫폼 기업이 인앱결제를 강제하는 조항에 대해 한국이 세계 최초로 불법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난 9월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하면서 글로벌 플랫폼이 인앱결제를 강제하지 못하도록 했다. 개정된 법에 따라 구글은 12월 18일부터 한국에서 제3자 결제 시스템을 허용했다. 속으로는 불만이 있었겠지만 어쨌든 한국법을 지킨 것이다. 그러나 애플은 아직 뚜렷한 입장 변화가 없다. 

그뿐이 아니다. 전자신문의 지난달 보도에 따르면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한국의 인앱결제 강제금지법에 대해 수용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팀 쿡이 애플 이사회에서 한국의 인앱결제법에 밀리면 안 된다고 언급했다는 정보를 미국 시민단체 제보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한 애플 본사는 한국지사 등과 조율한 일부 개선안도 거부했다. 갈수록 조여들어오는 인앱결제 강제금지에 대한 국제적 흐름과 관련해 팀 쿡이 한국시장에서 밀리면 안 된다는 지시를 한 것을 전해 들었다는 대목도 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애플은 각국의 법을 준수한다는 방침조차 그저 자사 이익을 위한 면피성 대사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은 중국이나 미국, EU처럼 거대한 시장을 가진 나라가 아닌 한국이 첫 상대라는 점에서 버틸만 하다는 계산이다. 두번째는 한국에서 쉽게 외부결제를 허용하면 다른 나라 제도 개선에도 명분을 주게 되는 상황을 우려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상황은 점점 애플에 불리해지고 있다. 네덜란드 공정거래 당국이 한국에 이어 전 세계 두 번째로 애플의 인앱 결제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지난 2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네덜란드 소비자·시장당국(ACM)이 애플이 반독점법을 위반했다고 지적하며 데이팅앱 개발자에게 불합리한 조건을 시정하도록 명령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이번 명령에 따라 애플은 내년 1월 15일까지 네덜란드에서 데이팅앱 개발자에 다른 결제 시스템을 허용해야 한다. 준수하지 않으면 최대 5000만 유로(약 673억원)의 과징금이 기다리고 있다.  애플은 네덜란드 ACM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으며 이의제기를 제출한 상태다. 

이번 사태가 어떻게 흘러갈지 예상하는 것은 비교적 쉽다. 네덜란드에서도 애플은 일단은 시간을 벌기 위해 법정에서 싸우고 과징금을 내더라도 이행을 미루며 버틸 것으로 예상되지만 EU전체가 인앱결제 강제를 금지하게 된다면 더는 버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미국이나 중국이 같은 조치를 취하게 된다면 전면적으로 수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때 쯤이면 당연히 한국에서도 인앱결제 강제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예상을 하면서도 씁쓸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과연 애플은 한국에서 말해온 대로 각국의 법을 존중하고 있을까. 말을 글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애플은 한국에서 법이 통과된 시점에서 그걸 지켜야 한다. 그렇지만 그러지 않았다. 네덜란드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면서도 애플의 지나치게 엄격한 AS기준이나 매출에 비해 너무 적게 내는 세금, 부족한 기부금을 지적할 때마다 '법을 준수'한다는 말로 넘어간다. 

이건 법을 정말로 존중하고 지키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저 법에 규정된 것 말고는 각국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밖에 없다. 과연 그런가? 애플에게 한국이나 네덜란드 같은 비교적 시장이 작은 나라는 그저 그런 의미 밖에 되지 않는 걸까? 만일 그렇다면 우리가 애플을 단지 장사꾼 이상으로 생각해야 할 의미가 없지 않을까. 애플의 감성적이고 인류애를 강조하는 광고 이미지를 받아들일 호소력도 없지 않을까. 애플은 이 점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