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라이언 블록체인]

 
요즘 주요 커뮤니티에서 많이 사용되는 밈 가운데 '생태계 교란종'이란 단어가 있다. 원래 생태계에 없던 외래종인데, 들어와서 해당 생태계를 완전히 파괴해서 원래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만드는 품종을 일컫는 말이다. 이런 품종을 당국에서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하면 그 품종에 대해서는 누구든 잡을 수 있고 어떻게 처리해도 상관없다. 오히려 권장되는 수준이다.

전통이 오래된 PC시장을 하나의 생태계에 비유한다면 최근 이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최고 원흉은 바로 '암호화폐 채굴' 이다. PC시장이 철저하게 주요 소비자의 개인적인 업무, 게임 등을 위해 존재해 온 걸 생각하면 '고성능 PC를 계속 가동시키면 그 자체로 다시 돈을 버는' 이런 구조는 매우 낯설다. 바로 외부에서 온 외래종 같은 행태다.

새로운 수요는 주로 고성능 그래픽 카드에 몰려있다. 암호화폐 채굴을 위한 연산은 비교적 단순한 반복이 많은 데다가 갈수록 더 많은 연산과 전력소모를 요구한다. 고성능 그래픽 카드를 써야만 그 연산에 소요되는 전력을 최소화하면서 많은 암호화폐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암호화폐가 비싸질수록 더 하위 성능 부품조차도 채산성이 맞아들어가기에 점점 시장에서 사라진다. 일반 게이머가 최신 게임을 위해서 구입해야할 부품이 나오기도 전에 매진되고 중고시장에서 몇 배의 웃돈을 얹어서 거래된다. 

이제는 이런 현상조차 당연한 풍조라 여기게 되었다. 여기에다가 암호화폐 가격과 신형 그래픽 카드 출시에 맞춰 일명 '광부버전' 이라 불리는 중고 그래픽 카드가 대거 유통시장에 풀리는 폐단까지 벌어진다. 온오프라인에서 새 그래픽 카드를 구입하고도 중고가 아닌가 의심하고, 개인이 썼다가 깔끔한 중고를 구입하고도 오랫동안 가혹한 환경에서 작동해 수명이 얼마남지 않은 '광부버전' 이 아닌가 의심하는 사용자가 늘고 있다.

 

 


더구나 이제 암호화폐의 악영향은 그래픽 카드 범주를 넘어섰다. 일부 암호화폐가 그래픽 연산능력 대신 저장장치 용량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나오고 있다. 그러자 SSD 시장마저 암호화폐로 인해 교란되고 있다. 예를 들면 치아코인(Chia Coin) 보다 친환경적인 솔루션이라 홍보하면서 새로운 공간 증명(PoS) 마이닝 기술을 통해 현금을 버는 대안을 제시했다. 간단히 말해서 저장용량이 많이 있다는 걸 계속 증명하면 암호화폐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화폐가치가  초기 고점의 약 15%까지 떨어지자 채굴업자들은 현재 드라이브를 버리고 '갱신된' 중고 SSD를 새 제품으로 재판매하고 있다. 처음에는 채굴을 위해 대량의 스토리지를 구입하여 SSD 및 HDD 부족을 유발했다. 그 이후로 가치가 떨어지자 다른 일을 하려고 돈을 벌기 위해 채굴에 사용했던 기존 하드웨어를 판매하는 것이다. 

문제는 치아코인을 위한 채굴이 엄청난 양의 새로운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쓰기 때문에 SSD 수명을 엄청나게 단축시킨다는 점이다. SSD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모되어 고장 지점에 가까워진다. 따라서 혹사당한 부품은 겉만 멀쩡할 뿐 실제로는 고장 직전에 있는 부품이다. 이런 부품이 대량으로 쏟아져나와서 시장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것이다.

이제는 각국 정부 당국이 나서야 할 차례다. PC부품은 그 특성상 관세가 거의 없고 아마존 등을 통해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유통된다. 거대한 한 곳이 교란되면 다른 작은 곳도 연쇄적으로 피해를 입는다. 그래픽 카드에만 한정되고 않고 SSD까지 번져가는 중이다. 이대로라면 CPU, 메모리 등도 언제 이런 식으로 교란될 지 모른다.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PC부품회사가 출하할 때부터 일종의 하드웨어 락을 걸어 채굴에 이용할 수 없게 한다든가, 유통과정에서 채굴에 쓰일 대량구매를 추적 단속할 수 있다. 중고시장에서 채굴버전이 아닌 증명인증을 하게 하는 방식도 있다. 중요한 건 어떤 방식이든 자유시장에만 맡기지 말고 제대로 된 규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PC시장 생태계를 다시 되돌려 선량한 PC시장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상황은 이제 끝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