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전세계적인 관심사는 기후변화다. 북극의 빙하가 녹는 모습을 봐도 아무런 감흥이 없던 사람조차도 뉴욕에 대홍수가 나고 호주에 거대한 산불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예전에는 찾아볼 수 없던 기상이변이 자주 일어나는 중이다. 탄소를 적게 배출하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는 기술은 눈 앞의 이익을 넘어 전인류를 살리는 길이 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이동통신기술에서 e심이 각광 받는 건 아주 당연하다. 이제까지 사용자는 이통사를 바꿀 때 당연하게 플라스틱 가운데 작은 칩이 들어있는 유심(USIM)을 구입해서 장착했다. 이 물리적인 칩은 길게는 몇년을 쓰기도 하지만 짧게는 겨우 일주일이나 한달 정도를 쓰고 버려진다. 새로운 이통사를 쓰기 위해서 도 새 유심을 구입해야 했기 때문이다.

e심은 단말기에 끼워서 쓰는 유심과 다르다. 단말기 자체에 내장된 e심 모듈에 번호를 등록하는 가입자 식별 방식이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e심을 활용하면 번호이동, 가입, 해지 등 업무를 처리할 때 직접 방문하지 않고 비대면으로도 가능하다. 유심을 변경하지 않고 이용자 정보를 단말기에 내려받기만 하면 번호, 통신사 변경 등이 손쉽게 가능하다. 

모든 게 데이터 전송으로 처리되기에 플라스틱이나 칩을 생산하고 버리는 일련의 과정이 전혀 필요없다. 그러기에 사용자는 비싼 비용을 낼 이유도 없고 코로나 시대에 비대면도 지킬 수 있다. 나아가서 이런 과정의 탄소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e심은 이미 2018년에 나온 기술이다. 3년 정도가 되도록 아직 국내에서 활성화 되지 않았으며 내년 7월에야 국내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업계에 따르면 과기정통부는 최근 사업자들과 e심 협의체를 구성해 이 같은 내용을 논의 중이다.

기술적으로만 보았을 때 e심은 실시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엄청난 데이터 전송량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기존 이통사의 인프라만 이용해도 충분하다. 구현이 어려운 기술이 들어간 것도 아니고 인체에 위험을 주는 어떤 요소가 있는 것도 아니다. 

[출처: 티플러스]


환경보호와 자원낭비 방지, 사용자 이익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이런 기술도입이 왜 이렇게 늦어지는 걸까? 이유는 결국 돈이다. 국내 이동통신사가 e심 도입에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다. 현재 국내에서는 알뜰폰 사업자 티플러스만 e심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동통신 3사 중 e심을 지원하는 곳은 전혀 없다. 

이통3사가 e심을 꺼리는 이유는 매출 감소다. 물리적인 유심은 7천원에서 8천원 사이에 판매되며 실제 원가는 1천원 정도로 알려진다. 사용자 숫자를 생각하면 매우 큰 이익이다. 여기에 더해 이용자의 번호이동이 자유로워져 가입자 유지가 어려워지고, 저렴한 요금제를 선택할 가능성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아주 짧은 데이터 전송 서비스에 불과한 e심에 요금을 부과하는 방안이 추진되는 건 바로 이런 이유다. 이통사 입장에서는 환경보호나 사용자 이익보다 눈앞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는 걸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요구다. 하지만 사용자가 물리적인 형태가 있는 걸 사는 데는 돈을 쓰기 쉽지만 아무것도 없는 걸 사기 위해 지갑을 여는 데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유심과 e심을 동시 지원하는 단말기에서는 두 개의 번호를 사용할 수 있는 듀얼심 기능도 지원한다. 별도로 세컨드 단말기를 들고 다니지 않고도  알뜰폰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와 이통사의 저렴한 요금제로 회선을 유지하는 등 다양한 요금조합을 이용할 수 있다.

[출처: 도이치 텔레콤]


이미 글로벌 통신 시장에서는 e심이 대세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호주 등 69개 국가 175개 사업자가 상업용 e심 서비스를 제공한다. 중국에서는 차이나유니콤이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며, 일본의 도코모는 오는 8일 e심 지원을 예고했다. 이동통신 강국이라는 국내에서만 철저히 외면 당했던 셈이다.

민간기업인 이통사의 이익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전세계적인 추세를 전부 외면하고 사용자 편의까지 배척하면서 추구해야할 이익이란 없다. 국내 이통 3사가 e심을 더 빨리 더 넓게 지원해줄 것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