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뵙습니다”


약속장소에 도착한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과 악수를  하면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표정이 밝아보인다는 점이었다. 2015년 6월에 장관을 블로거로서 만난 이후 1년 후에 다시 블로거 모임에서 만났다.





다소 긴 부처 이름이 상징하듯 최장관은  대한민국의 미래산업, 창조경제, 과학기술을 다 함께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다. 가계통신비가 어째서 내려가지 않느냐고 ‘단통법’을 탓하고, 창조경제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다고 묻고, 해외 우수인력을 왜 우리나라에 끌어들이지 못하냐고 호통치는 각계의 목소리는 분명 커다한 짐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 날은 전날에 터진 큰 안보이슈까지 겹쳐서 분명 마음은 편하지 못했을 것이다.



“요즘 기상청 일기예보가 잘 안맞아서 시민분들의 불편이 있습니다. 예전에 기상청이 과학기술처에 소속되어 있다가 지금은 환경부로 넘어갔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후로 잘 맞추지 못하고 있네요” 


그럼에도 선뜻 블로거 간담회 자리에 나온 장관의 목소리는 경쾌했고 대화에는 유머가 있었다. 작은 사안 하나하나에 매몰되지 않고 커다란 흐름을 보면서 전체를 콘트롤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사실 슈퍼컴퓨터는 미국제고 소프트웨어는 영국제인데 예보관만 한국 사람입니다. 결국 무엇이든지 운영하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의미가 되겠지요.”





이 날 간담회는 다양한 부분에서 활동하는 파워블로거와 최양희 장관이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자리였다. 주제는 정부의 연구개발(R&D)혁신전략과 국가전략프로젝트였다. 식사를 하면서 진행되는 간담회였지만 상당히 진지한 내용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정부는 8월 10일 청와대에서 과학기술전략회의를 열고  9개 국가전략프로젝트 추진을 논의했다. 구체적인 분야로는  성장동력 확보 분야로 인공지능, 가상증강현실, 자율주행자동차, 경량소재, 스마트시티 등 5개를 뽑고 또한 국민행복과 삶의 질 제고 분야로 정밀의료, 탄소자원화, 미세먼지, 바이오 신약 등 4개를 선정했다. 




이 가운데 인공지능은 특히 미래 사회의 핵심경쟁력이 될 분야였다. 얼마전 구글이 인공지능 ‘알파고’를 통해 이세돌 9단과  세기의 바둑대국을 펼쳐 4:1로 승리를 거둬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뛰어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미래에는 상당수의 단순 지식노동자가 인공지능에 밀려 직업을 잃게 될 거란 공포섞인 예측도 나왔다. 



따라서 최 장관과의 대화에서 중심 의제가 인공지능이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정부가 추진하는 인공지능 (AI) 프로젝트는 알파고 플랫폼이 가진 머신러닝 분야를 포함해서 사람처럼 언어, 영상을 이해하고, 전문분야 지식을 학습해 사람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공통기술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문제는 이것이 비판적인 네티즌에게 구글 알파고가 뜨니까 한국형 알파고를 만들겠다는 전시행정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바둑을 두는 알파고가 목적이 아니라 그 핵심이 되는 ‘딥마인드’를 통해 난치병 치료와 기후변화 대처법을 연구하겠다는 것이 구글의 목적이다. 이에 비교한 한국 인공지능의 목표는 무엇이 될까? 이런 질문을 최양희 미래부 장관에게 던져보았다.


“알파고 대국 자리에서 구글 딥마인드 CEO인 히사비스에게 물어본 결과 우선 의료를 할 거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인공지능기술이 할 수 있는 분야는 여러가지지만 그 뒤에는 사회적 파급효과가 크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분야로 하겠지요. 우리나라에서도 공공서비스, 의료, 금융, 국방 등에 골고루 쓰일 수 있을 거라 봅니다”

 

이렇게 일단 대답한 장관은 그 뒤에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쏟아냈다.


“그럼 이걸 어떻게 공급할 거냐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합니다. 현재 인공지능에서 앞서 가는 쪽은 구글, 페이스북, IBM, 바이두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구글의 히사비스는 결국 연구하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약간 뒤져 있는 건 긴 안목에서 큰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 정부의 인공지능 관련 연구계획이 공개되었을 때부터 한국은 아예 상대가 안된다는 식의 논리도 많이 제기되었다. 관련 연구예산이 큰 격차를 보이고 개발 착수시기도 늦었으며 지속적인 연구인력도 없다는 것이다.  


미래부에서도 지능정보기술 전반에서 선진국 대비 기술격차가 존재하고, 인적‧산업적 기반도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IITP 자료에 따르면 인공지능과 인지컴퓨팅 분야에서 미국이 100이라면 우리는  70.5 수준으로 약 2.4년의 기술격차가 있다. 그렇지만 미래부 장관은 자신감을 보이며 당부했다.


“크게 보면 모든 국가가 출발선상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제와서 미국을 따라잡자는 식이 아니라 글로벌하게 한 몫을 차지하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형이라는 단어를 머리에서 싹 지워버려야 합니다. 한국형 전철, 한국형 스마트시티, 한국형 슈퍼컴퓨터 등 많지만 이런 단어를 쓰지 말아야 해요. 한국형이라는 건 글로벌이 아니라는 것이기에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우리도 바둑두는 알파고가 목표가 아니며 큰 목표를 두고 나아가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보여주기를 위해 외국의 성공한 케이스를 뒤따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히 한 축을 이루는 플레이어로서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미래를 위한 발전 정책을 담당하는 장관으로서 적극적인 자세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의 너무 빠른 변화가 가져올 부작용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드론이 택배원을 몰라내고, 자율주행차가 대리기사를 없애고, 신문기사까지도 알고리즘을 가진 로봇이 쓰는 세상에 공포를 느끼는 사람도 있다. 이러다가 소수를 제외한 모두는 인공지능에 밀려 일자리를 잃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역사적으로 보면 산업혁명 때문에 일자리 자체가 대폭 줄어드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자동차가 나오면 마부는 직업을 잃겠지만 옆에 자동차 운전수가 생기고 부품가게가 생기며 도로건설 노동자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종합적으로 볼 때 인공지능이 없애는 양보다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길 수 있습니다. 또한 한 가지로 점점 일하는 시간이 줄어듭니다. 점점 스마트기기에 의해 적게 일하면서 같은 월급을 받아 삶의 질이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


상당히 희망적인 관측이지만 여기서도 최양희 장관이 상당히 긴 흐름을 보려고 한다는 점을 느꼈다. 일시적으로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실업 등 부작용이 커지더라도 거시적으로는 좀 더 경제가 스마트하게 변한다는 논리였다. 미래부 장관은 이런 지능정보사회가 왔을 때 무엇을 생각하고 선제적으로 준비해야 하느냐는 ‘지능정보사회 종합대책’을 지금 만들고 있다는 점을 알려주기도 했다. 초안이 나온 이 대책에서는 현재 교육에 대해 보다 깊은 고민과 변화 모색이 필요하다는 것도 강조했다.






외국에서 보는 한국은 고도로 산업화된 선진국에 속한다. 반도체와 스마트폰 등 첨단 기술이 들어가는 제조업과 자동차등 중화학 공업이 주력산업이며 평균학력이 높고 매우 잘 도시화되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는 몇몇 대기업에 편중된 산업구조, 창조적인 역량이 필요한 소프트웨어 같은 분야에서 모자란 점을 느끼고 있다. 최양희 미래부 장관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창조적 국가전략프로젝트를 명확히 설명해주었다. 미래창조과학부의 이런 노력이 얼마나 성과를 만들어낼지 주목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