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서 친한 사람들을 잘 만나지 못하고 있다. 바쁜 직장일에 시달리느라 그랬다고 변명하지만 실은 내 마음의 여유가 그만큼 없는 탓이리라.





소설가 시절에 나는 짧은 여행을 즐겼다. 그 가운데 지하철로 갈 수 있게 된 춘천도 들어있었다.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나서 가방 하나만 들쳐메고 지하철에 올랐다. 카메라와 노트북 하나만 들고 떠난 즉석 여행이었다.


거대한 소양강 처녀상과 소양호를 구경 한 뒤에 다른 사람과 똑같이 명물인 춘천 닭갈비를 먹고 싶었다. 그렇지만 정신없이 구경하느라 날이 저물고 있는 상황에서 결국 나는 춘천닭갈비를 포기하고 돌아가는 지하철에 올라야 했다. 상당히 아쉬웠던 경험이다.


그래서 그럴까. 친하게 지내는 지인이 방배역 근처에서 춘천닭갈비를 먹자고 했을 때 오히려 기뻤다. 비록 춘천에 가서 먹지는 못하더라도 그때의 아쉬움을 삭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찾아간 곳은 춘천닭갈비 방배 직영점이었다. 여기저기 서 있는 간판 전부가 춘천 닭갈비여서 몰랐는데 ‘정통 춘천닭갈비’라는  상호를 쓰면서 전국에 지점을 운영하고 있는 곳이었다. 구리, 양평, 홍대와 함께 방배에서 낸 직영점 가운데 하나였다.



다른 곳은 대부분 큰 길에 면해 있었지만 방배점은 약간 달랐다. 여기는 역 근처 번화가에서 약간 안쪽 주택가로 들어간 곳에 있었다. 또한 인테리어와 분위기가 닭갈비집보다는 카페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녁 시간에는 손님이 테이블을 꽉 채우고 있기에 약간 기다려서 조금 한산해진 후에 들어갔다. 사실 닭갈비가 다 비슷한 거겠지라고 음식 그 자체에는 별로 지식이 없었다. 그런데 들어가는 입구부터 심상치 않은 문구가 들어왔다.



주물로 만든 무쇠판. 고기를 구울 때 불판이 중요하듯이 이곳 닭갈비에 쓰는 불판이 어떤 특색을 가지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글이었다. 맛집 특유의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닭갈비 집에 왔으니 당연히 메뉴는 닭갈비였다. 잘 달궈진 무쇠판이 달아오르는 동안 주위를 살짝 둘러보았다. 먼저 온 손님들이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시장기가 돌아 침이 넘어갔다.



기다리는 동안 간단히 먹을 수 있도록 계란 프라이를 먼저 해주었다. 이 곳 음식의 특징은 재료 단계에서 상당히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특별히 선정된 싱싱한 계란을 쓰는데 일반 프라이팬이 아닌 무쇠판에 굽자 맛이 좀 더 좋았다.




그 뒤에 나온 닭갈비도 재료에서 정성이 느껴진다. 국산닭에다가 최상급 부위를 아낌없이 쓰는 이유인지 고기의 부드러움과 맛이 상당하다. 화학조미료를 일체 쓰지 않고 조리한다고 하는데 이럴 경우에 강렬한 맛이 떨어지기 쉽다. 하지만 원 식재료를 좋은 것으로 쓰면서 그 부분을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고 한다.





주물 무쇠판에서 고기가 익는 향기가 풍성하게 퍼져나왔다. 이색적인 할인정책이 눈에 들어왔는데 국가유공자와 군인에게 특별히 할인해준다는 부분이 이채로웠다. 요즘 음식점 가운데 이런 할인정책이 있는 곳은 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닭갈비가 다 익었다. 사실 미리 익혀나오기에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는다. 고기보다 빨리 익는 떡을 먼저 천천히 먹고 있는 게 보다 맛있게 즐길 수 있는 팁이다. 떡을 어느 정도 먹다보면 고기도 전부 익는다. 



여기는 세 단계의 매운맛으로 주문을 받는다. 순한 맛, 중간 맛, 매운 맛이다. 중간맛으로 시켜봤는데 달착지근한 매운 맛이 적당했다. 중간 맛이라서 그런지 이 정도면 한국 사람 기준으로는 그다지 취향타지 않고 무난하게 좋아할 수 있는 매운 맛이다.



닭갈비의 육질이 매우 부드러웠다. 씹는 기분이 좋을 정도로 연한 고기에서는 육즙과 매운 양념이 함께 흘러나와 혀를 자극했다. 뜨거울 때 먹으면 입 속에서 술술 넘어간다.


너무 맛있어서 2인분을 추가로 시켰다. 이번에는 매운 맛으로 시켜봤는데 약간 더 매워졌을 뿐 그렇게 심각하게 자극적이지는 않았다. 톡 쏘는 매운 맛이 아니라 부드럽게 매운 맛이 증가했는데 식욕을 더 돋우는 효과를 주었다.



이제 닭갈비의 최종 완성을 해야할 시간이다. 밥을 한 공기 볶아달라고 요청했다. 숙련된 솜씨의 아주머니가 여유있게 볶아가며 하트모양까지 완성해주었다. 이미 닭갈비로 배가 불러있었는데도 볶은 밥을 전부 먹었다.



바쁘게 살아가다보면 가끔은 휴식을 가지고 싶다. 삶 속에서 잃어버린 부분을 다시 찾고 싶어진다. 나에게는 춘천닭갈비에 얽힌 아쉬움을 채우는 것이 소중한 경험이었다. 오랫만에 만난 지인과 함께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즐긴 닭갈비에서 정겨운 맛을 느낀 것은 그 때문이리라.



유쾌한 식사를 마치며 나오면서 이 가게를 기억해놓았다.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좋은 기억과 경험을 제공했기에 조만간 다시 한번 찾아올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