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배우다보면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된다. 어려운 시기에 어떤 초월적인 영웅이 나타나서 한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런 건 판타지에나 있는 거라고 웃어넘기기는 쉽다. 그런데 이런 희망은 역사의 격변기에 흔히 있다. 니체의 초인사상을 비롯해 영웅을 바라는 서양철학이나, 현명한 군주가 나타나서 모든 것을 해결해 줄거란 동양사상의 공통점이 바로 그것이다.



레티나 맥북프로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설령 상당한 능력과 추진력을 갖춘 영웅이 나타나고 그를 따르는 집단이 생겼다고 치자. 세상의 나머지 사람들이 협력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싸워서 굴복시키든가, 이익을 가지고 설득해야 한다. 아니면 결국 변화는 제한적으로만 올 뿐 세상을 바꾸는 혁신은 일어나지 않는다.


거창하게 역사까지 논했지만 사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간단하다. 레티나 맥북프로를 한달 간 써본 감상을 말하기 위해서다. 사진을 나열하고 글을 조금씩 써놓는 식의 리뷰보다는 보다 진지하게 생각해봤으면 하는 점이 있기에 그렇다.


15인치 레티나 맥북프로. 나온 지도 상당한 시간이 지난 이 제품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리뷰어들이 제품스펙 중심으로 좋은 글을 써놓았다. 또한 많은 블로거들이 개인적인 감상에 대해서 말한 바 있다. 그러기에 나는 무엇인가 더 진보된 글을 써보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레티나 맥북프로가 가져와야할 고해상도 혁신에 대한 생각이다.



레티나 맥북프로


15인치 레티나 맥북 프로는 고해상도 디스플레이를 제외하면 보통 맥북 프로가 가진 모든 장단점을 충실하게 계승했다


알루미늄 유니바디로 만든 외관은 아름답고, 키보드는 비교적 키감이 좋다. 얇고 가벼운 편이며 썬더볼트와 USB 3.0이란 좋은 연결단자도 갖췄다. 반면에 내부 확장성이나 업그레이드의 용이성은 0점에 가깝고 일체형 배터리는 전원공급에 대한 불안감을 준다. 그렇지만 이런 건 이 제품을 이야기하면서 핵심으로 삼을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애플의 최근 맥북은 이랬고 아마도 앞으로도 이럴 것이다. 문제는 레티나란 단어를 앞세운 고해상도 디스플레이다.



레티나 맥북프로


2880*1800이란 해상도가 15인치 화면에 밀집되었다는 대단한 일이다. 이것은 단순한 숫자로 말해서는 별로 와닿지 않는다. 가장 좋은 것은 레티나 맥북프로의 화면을 한번이라도 보는 것이다. 마치 아이폰5의 화면을 15인치에 걸쳐 쭉 늘어놓은 듯 입자가 곱고 놀랍도록 선명한 글자와 미려한 인터페이스 화면을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너무도 선명한 것이 도리어 눈에 부자연스럽게 보일 정도이다.

 

레티나 맥북프로를 경험한 사람들은 크게 세 단계의 느낌을 거친다.



레티나 맥북프로


1. 기존의 노트북 화면과는 비교도 안되는 선명한 글자와 화면의 선명함에 놀란다. 그리고는 웹서핑과 각종 문서작성에서 놀랍도록 눈이 편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2. 상당한 시간동안 레티나 화면에 익숙해진 다음, 다른 노트북과 모니터 화면을 보게 된다. 그러면 오히려 다른 노트북 화면이 무엇인가 거칠고 픽셀이 보이는 듯 거슬리는 느낌을 받게 된다. 윈도우PC는 물론이고 레티나가 적용되지 않는 맥북 화면은 더욱 그렇게 느끼게 된다. 상대적으로 레티나가 아닌 맥북에서 한글 폰트가 그다지 미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3. 레티나 맥북 화면을 일상적으로 쓰게 되어 놀라움이 좀 사라지게 되면 반대로 아쉬움을 강하게 느낀다.    같은 레티나 화면이지만 사파리 안에서도 굉장히 선명한 폰트와 상대적으로 흐릿한 그래픽이 섞여서 한 눈에 비교되며 보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직 레티나 지원이 덜 되는 소프트웨어에서는 레티나가 아닌 화면보다 글자와 그림 해상도가 떨어져 보이기도 한다.



레티나 맥북프로, 고해상도 혁신은 가능할까?



레티나 맥북프로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길까? 그것은 애플이 앞장서서 고해상도를 작은 화면에 밀집시키는 시도를 했지만 주위 환경이 받쳐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서는 애플이 플랫폼 지배자로서 강하게 통제하기에 레티나 화면을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맥은 아이폰보다 훨씬 개방된 플랫폼이며 여러 회사들이 그 안에서 입지를 굳히고 있다. 또한 웹은 애플이 모든 것을 지시하거나 바꿀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웹표준이나 렌더링 방식 같은 요소들이 레티나를 위해서 일제히 바뀌지 않는 한 애플 혼자만의 힘으로 완벽한 레티나 웹서핑을 지원할 수 없는 것이다.



레티나 맥북프로


결과적으로 우리는 아주 선명한 폰트와 가끔 덜 선명한 인터페이스 화면, 웹에서는 대부분 흐릿한 사진과 아이콘 속에서 레티나 맥북프로를 쓸 수 밖에 없다. 때문에 레티나로 인해 눈이 시원해지는 체험을 하다가도 그 안에서 일치되지 못하는 선명함에 강한 아쉬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 맥북 안에서는 어떻게든 업데이트등을 통해서 단계적으로 레티나 화면의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맥용 오피스도 새로 업데이트를 거치면 레티나를 보기좋게 지원한다. 그러나 윈도우를 쓰기 위해 부트캠프를 쓰면 윈도우는 아직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지원하지 못한다. 애플의 혁신은 결국 애플 안에서만 구현되는 마법인 셈이다.



레티나 맥북프로


레티나 맥북프로를 통해 애플이 추진하는 고해상도 혁신은 그래서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지금도 물론 레티나 맥북이 제공하는 고해상도는 훌륭하다. 혁신적인 시도이며 분명 구입해서 쓸 가치가 있다. 하지만 파급효과가 아직 부족하다. 스마트폰의 개념을 다시 만든 아이폰처럼 모든 웹브라우저와 소프트웨어 전반에 걸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아직 되지 않는 것이다.


이대로 고해상도와 저해상도가 공존하는 상황이 오래간다면 그만큼 레티나의 매력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맥북 혼자가 아니라 웹상의 모든 컨텐츠가 받쳐주고, 나아가서 윈도PC까지도 이런 혁신에 합류하게 만들때 진정으로 의미가 있다. 레티나 맥북프로를 통해 완벽한 고해상도를 경험할 수 있는 진정한 혁신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