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이라는 단어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말한다. 모방은 해서는 안될 짓이며 다른 사람의 창조적 사고와 그 결과물을 훔치는 짓이라고.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불린다. 사실 우리가 학교수업에서 지식을 쌓기 위해 하는 많은 실험과 실습은 모방의 과정이다. 그러니까 모방은 명백히 뒤져있는 사람이 앞선 사람의 경험과 지식을 배울 때 가장 유용한 수단이라는 뜻이다.



차고창업(사진출처: 애플포럼)


삼성이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취했던 실리콘 밸리식 차고 창업룸을 만들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우선 기사를 한번 보자(출처) 



2066 Crist Drive Los Altos, CA 94024. 


고(故)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창업한 미국 실리콘밸리 차고(車庫) 주소다. 


애플은 세계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꿔 놓은 혁신의 발상지를 ’애플 개라지(Apple Garage)’로 이름 붙여 보존해 놓았다. 자유분방하고 도전적인 실리콘밸리의 창고식 연구공간이 삼성전자 서울 서초동 본사에 마련됐다. 


매출 200조원의 세계 1위 전자기업 삼성전자가 스티브 잡스 사후 혁신 동력을 잃은 애플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실리콘밸리식 혁신 문화 이식에 나선 것이다. 


매일경제가 단독 취재한 삼성의 ’크리에이티브 랩(C-lab)’은 160㎡(약 50평) 크기에 드릴, 톱 등 공구가 쌓여 있고 컨테이너박스와 시멘트 벽, 파이프기둥이 그대로 노출돼 마치 젊은 발명가의 연구실 같다. 애플과 HP, 구글 등 세계적 IT기업들이 차고에서 창업했다. 삼성전자 사장단은 지난해 6월 최지성 부회장 지시로 실리콘밸리에 벤치마킹 출장을 다녀온 후 실리콘밸리식 혁신공간을 통해 조직 내 창조 정신을 전파하기로 결정했다. 권오현 대표이사 부회장도 이 아이디어에 흔쾌히 동의했다. C랩은 다음달 중순 정식 오픈하며 삼성 직원과 외부인이 함께 어울려 창의적 아이디어를 발산하는 개방형 공간으로 활용된다.


한편 삼성은 인문학과 IT기술을 접목한 통섭형 인재 양성을 위해 ’삼성 컨버전스 소프트웨어 아카데미(SCSA)’를 올해 상반기 대졸 신입사원 공채부터 도입한다고 13일 밝혔다.



차고창업


기사 자체로 보아서는 그저 간단한 시도로 보인다. 예전에 벤처기업 붐이 일어날 때 각 대기업들이 사내벤처 기업이라는 형식을 시도했던 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실리콘 밸리식의 차고창업이 새로운 혁신요소로 떠오르자 삼성이 미래역량 강화를 위해서 차고라는 형식을 도입했다. 


삼성의 잡스식 창업룸, 어떻게 보아야할까?


매일경제에서는 굳이 여기에 '잡스식 창업룸' 이란 이름을 붙였다. 삼성과 애플의 대립구도를 최대한 이용하려는 작명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창업용 차고는 휴렛팩커드와 페이스북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많아서 굳이 애플이나 스티브 잡스만의 것이 아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삼성이 애플의 차고마저 모방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애플이 삼성의 이런 창업룸도 고소할 지 모른다는 비웃음도 아니다.



차고창업


삼성이 왜 이런 방을 만들었을까? 기사의 마지막 부분에 해답이 있다. '삼성직원이 외부인과 어울려 창의적 아이디어를 발산하는 개방형 공간으로 활용된다.'는 부분이다. 딱딱한 삼성 사무실의 분위기에서는 그저 삼성 사원만 편하게 일할 뿐인데 그걸 벗어나서 보다 개방적인 분위기를 주어 창의적 사고를 준다는 것이다.


효과는 있을까? 어느 정도는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사무실 같은 딱딱한 공간에 계속 앉아있는 사람에게서 사무적 능률은 기대할 수 있어도 창의적 아이디어는 기대하기 힘들다. 공간 자체를 좀더 창의성 있게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삼성의 이런 시도는 모방이라는 논란을 떠나서 재빨리 시도한 유연성과 용기를 칭찬할 만 하다.



차고창업


다만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점은 따로 있다. 삼성이라는 대기업 조직의 특성상 저런 창업룸에서 나온 조직내의 창조정신과 아이디어가 얼마나 수용될 수 있겠는가? 라는 점이다. 


좀더 냉정히 말하자면 차고 창업룸의 정신은 '지금은 고생하지만 성공해서 돈도 많이 벌고 혁신을 이루자!' 이다. 삼성 안에 설치된 창업룸에서 고생해서 낸 결과물이 과연 그 사람에게 많은 돈과 혁신의 주인공이라는 명예를 가져다줄까? 아니면 삼성이라는 조직내부에서 가로막혀서 변형되고 좌절할 것인가?

 


차고창업


정말 좋은 아이디어와 결과물이 결국은 삼성이라는 조직에 소화되고 막상 열정을 쏟은 구성원에게 제대로 보답이 돌아가지 않는다면? 저런 창업룸은 그저 껍데기가 되어 버리고 만다. 창업룸의 시도는 분명 좋은 모방이다. 하지만 기왕이라면 저런 창업룸을 통해 세계최고의 회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열어주는 시스템도 갖춰주는 것이 어떨까? 그것이 진정으로 실리콘 밸리의 창업정신을 도입하는 행동이 될 것이다.